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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中반도체 고사작전 돌입…발끈한 中 "美 이성 잃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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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주 포킵시의 IBM 시설에서 양자컴퓨터를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주 포킵시의 IBM 시설에서 양자컴퓨터를 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한 초강력 대중(對中) 수출 통제 조치를 현실화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 상무부가 발표한 반도체 관련 신규 수출통제 조치는 중국을 정조준했다. 인공지능(AI), 수퍼컴퓨터 등에 활용되는 고성능 컴퓨팅(연산) 반도체 뿐 아니라, D램·낸드플래시(낸드)처럼 중국이 수출 경쟁력을 키워 온 메모리 분야에서도 첨단 제조장비기술 판매를 사실상 금지했다. 미국이 일개 기업이나 장비가 아닌 한 국가의 특정 산업 전반에 대해 수출 통제 조치를 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통제 조치는 투트랙으로 전개된다. 상무부는 “두 건의 규칙으로 발표된 이번 수출 통제는 중국이 첨단 컴퓨팅 칩을 확보하고, 슈퍼컴퓨터와 첨단 반도체를 개발·유지하기 위한 능력을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내 中 생산시설에 판매 불가 

지난 5월 중국 장쑤성 쓰훙의 한 반도체 기업 생산시설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지난 5월 중국 장쑤성 쓰훙의 한 반도체 기업 생산시설의 모습. 신화=연합뉴스

우선 미국 기업이 특정 수준 이상 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를 판매할 경우 별도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1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14㎚ 이하의 비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 경우 중국 기업이 소유한 중국 내 생산시설에 판매할 경우 이른바 ‘거부 추정 원칙’이 적용돼 수출이 사실상 전면 금지된다. 특히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31개 중국 기업에 대해선 미국 기술·장비를 쓰지 않고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관심 대상인 ‘미검증명단’(unverified list)에 올렸다. 이들도 여차하면 수출 통제명단에 오를 수 있어 사실상의 수출 규제 명단으로 여겨진다. 다만 중국 내 생산시설을 가진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개별적 심사로 결정하기로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 상무부는 두번째로 중국의 슈퍼컴퓨터 및 AI에 들어가는 모든 첨단 반도체에 대해 중국 수출을 통제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고성능 AI 학습용 칩, 슈퍼컴퓨터용 특정 반도체 칩 등이 통제 대상이다. 연산 능력 100PFLOPS(페타플롭스·1초당 1000조 번의 연산 처리가 가능한 컴퓨터 성능 단위) 이상의 슈퍼컴퓨터에 최종 사용되는 모든 제품 등을 수출하려면 미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 또 28개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이 ‘우려 기업’으로 등재돼 수출이 어렵게 된다.

여기엔 미 상무부의 ‘해외직접생산규칙(FDPR)’이 적용됐다. 미국이 아닌 제3국 기업이 만든 반도체라도 미국의 기술장비를 쓸 경우 중국으로의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다. 지난 2020년 미 상무부가 중국 IT 기업 화웨이에 이 규칙을 적용해 ‘화웨이식 제재’라고도 불린다. 화웨이에 적용한 FDPR을 이번에 중국 AI·슈퍼컴퓨터 반도체 산업 전체에 적용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조치는 화웨이에 적용됐던 수출 통제보다 더 폭이 넓은 것”이라며 “FDPR을 적용하면 세계 어디에 있든 미국 기술을 이용하는 기업이라면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특정 최첨단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기술과 장비를 이용하지 않고 최첨단 반도체를 개발·생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제재 범위에 따라서는 전 세계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통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中 반도체 굴기 꺽겠다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베이징 하이테크 엑스포에 중국 반도체 기업 칭화유니그룹의 부스 앞을 한 관람객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베이징 하이테크 엑스포에 중국 반도체 기업 칭화유니그룹의 부스 앞을 한 관람객이 지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조치를 두고 “냉전 이후 특정 기술과 기업에 집중했던 미국 수출 통제 방식에 근본적 변화가 이뤄졌다(NYT)”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그간 특정 기업(화웨이), 특정 장비(극자외선·EUV 장비)를 중심으로 제재를 했지만, 슈퍼컴 산업 전반, 메모리 반도체까지 포함한 반도체 장비 전반에서 수출 통제를 선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치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테아 로즈먼 켄들러 미국 상무부 수출관리 담당 차관보는 보도자료에서 “중국은 슈퍼컴퓨팅 분야에 자원을 쏟아붓고 있고, 2030년 AI 분야 세계 리더가 되려 한다”며 “이번 조치로 미국의 국가 안보와 외교 정책적 이해 관계를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韓, 당장 타격 없어도 안심 못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이 웨이퍼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 예정인 3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공정 웨이퍼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5월 20일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만나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이 웨이퍼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 예정인 3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공정 웨이퍼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번 수출 통제 조치에 한국 반도체 업계는 일단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메모리 관련 대중 수출 규제에서 별도 심사를 적용받는 중국 내 생산공장을 가진 해외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이다. 사실상 두 한국 기업에 대한 예외를 허용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공장 등은 중국 기업과는 달리 사안별 검토 대상으로 분류돼 장비 공급에 큰 지장은 없을 전망”이라며 “수출 규제 대상인 첨단 컴퓨팅칩도 국내 생산이 없어 단기적 영향은 없고 슈퍼컴퓨터 사용 제품도 규제 대상이 되는 슈퍼컴퓨터가 극소수라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지만 당장 타격이 크지는 않더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심사를 받아 수출통제 예외를 적용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예전보다 절차가 까다롭게 적용될 수 있어서다. 당장 중국 공장의 반도체 장비를 교체하고 공장 규모를 증설하는 것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각각 2014년, 2006년 준공된 중국 시안 삼성전자 낸드 공장과 우시 SK하이닉스 D램 공장은 최근까지 설비 증설 및 노후 장비 교체 등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는데, 추가 투자가 이뤄지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국 압박에 공동 전선으로 나서자고 요구할 가능성도 변수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에서 “다른 국가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우리가 단독으로 도입한 통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며 “외국 경쟁기업이 같은 통제를 받지 않으면 미국의 기술 리더십이 타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로펌 아킨 검프의 파트너인 케빈 울프 변호사도 “규제 효과의 성공은 동맹국의 동의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AI·슈퍼컴퓨터 반도체 분야도 중장기적으로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가져야 할 미래 먹거리란 점을 고려하면, 이번 통제 조치가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발끈한 中 "중국 시장 단절은 상업적 자살"

9일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는 비(非)미국 기업으로 제한범위를 대폭 확대해 중국과의 정상적인 협력과 무역을 막으려는 의도”라며 “자유무역에 대한 야만적 일격으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이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사진 환구망 홈페이지 캡처

9일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는 비(非)미국 기업으로 제한범위를 대폭 확대해 중국과의 정상적인 협력과 무역을 막으려는 의도”라며 “자유무역에 대한 야만적 일격으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이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사진 환구망 홈페이지 캡처

중국은 발끈하고 있다. 류펑위(劉鵬宇) 주미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통제조치가 발표된 당일인 지난 7일 “미국이 자국의 기술력을 이점으로 삼아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저해하고 억제하려 한다. 미국은 중국과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영원히 공급망의 최하단에 머물기를 희망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9일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는 비(非)미국 기업으로 제한범위를 대폭 확대해 중국과의 정상적인 협력과 무역을 막으려는 의도”라며 “자유무역에 대한 야만적 일격으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이 이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시장으로 “중국 시장과의 단절은 ‘상업적 자살’(商業自殺)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번 미국의 통제 조치를 놓고 역효과를 우려하는 쪽도 있다. JP모건의 알렉산더 트레버스는 미 CNBC에 “중국이 노동력에 의지하지 않고 기술 증진에도 관심을 갖는 단계에 진입한 가운데 미·중 냉전이 발생했다”며 “미·중 냉전은 중국의 기술 자립과 고도화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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