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맞아 이혼했는데 비자가 사라졌다…쫓겨나는 이주여성 [가족의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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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자격

가족의 자격을 새로이 법원에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연(緣)을 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법원은 어떤 해답을 줄까요. 또 법의 공백은 어떻게 채워야 할까요. 중앙일보가 새로운 가족의 자격을 묻습니다.

"남편 잘못만 있었겠어?"…비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중국 국적의 여성 미연(가명)씨는 지난 2005년 인터넷 채팅을 통해 지훈씨를 알게됐다. 지훈씨 역시 중국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상태였다. 전화와 채팅으로 인연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2008년 결혼했다.  

혼인신고부터 마친 뒤 한국에 들어온 미연씨는 기대를 안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훈씨의 모습은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미연씨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경제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미연씨는 지훈씨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시작했다. "지훈씨의 귀책사유에 의해 이혼한다"는 내용으로 조정이 성립됐다.

중앙포토·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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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씨는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생활하고 싶었다. 이혼했더라도 결혼 이민 비자(F-6)로 체류할 방법이 있었다.혼인파탄의 책임이 배우자에게 있을 경우, 외국인에게 혼인 단절 비자(F-6-3)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미연씨의 결혼 생활은 지훈씨의 책임에 의해 끝났기 때문에, 이 비자로 한국에 머무를 수 있었다. 다만 1~3년마다 심사를 받고 연장을 해야한다.

미연씨는 2010년부터 약 5년간 4번에 걸쳐 이 비자를 연장했다. 그사이 한국은 미연씨의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됐다. 어머니에게는 영주 체류 자격이 있어 같이 살고 있는데다 동생 역시 방문 취업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왔다.

2015년 1월, 5번째로 비자 연장을 신청한 미연씨는 출입국·외국인청으로부터 거부를 당했다. 지훈씨와의 과거 결혼 생활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다. "과거 혼인의 진정성이 결여돼 있고, 배우자의 귀책사유로 이혼한 것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미연씨는 이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다. 앞서 네 차례나 체류 자격이 연장된 바 있고, 그때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왜 5번 연장은 안 되냐는 것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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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에 가서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016년 1심 재판부는 미연씨의 결혼 생활을 다시 끄집어냈다. 지훈씨의 귀책사유로 이혼 조정이 성립되긴 했지만, 이는 합의 사항을 나타낼 뿐이라고 했다. 미연씨의 귀책 사유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연씨가 결혼 초기에 가출한 적이 있는 점, 둘 사이에 자녀가 없는 점 등도 근거가 됐다. 앞서 비자가 네 차례 연장된 것의 의미도 축소했다. 앞으로도 계속 연장해주겠다는 뜻을 공적으로 나타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2심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재판부는 "헌법상 외국인은 우리나라에 입국할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고, 체류할 권리나 계속 체류 요구를 할 권리가 보장돼 있지 않다"라고 못 박았다. 출입국 사안의 성질상, 외국인의 체류 기간을 연장할 것인지는 법무부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판결은 지난 2016년 확정됐다.

한국에 체류하면서 미연씨가 수도 없이 맞닥뜨려야 했던 질문은 '혼인의 진정성'이었다. 두 사람이 진짜 부부 사이가 맞았고, 결혼 생활 과정에서 지훈씨의 책임이 얼마나 컸는지 계속해서 입증해야만 비자가 연장됐다. 출입국관리법에서 규정했듯,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본 결혼은…"한쪽만 전적 책임? 그런 경우 드물어"

이 같은 엄격한 판단은 지난 2019년에야 조금이나마 완화됐다. 베트남 국적의 A씨가 미연씨처럼 혼인 단절 비자(F-6-3)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했는데, 대법원이 A씨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바로잡으면서다.

지난 2015년 국제결혼 중매업체를 통해 한국 남성과 맞선을 본 A씨는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일했다. 임신한 A씨에게 유산 증후가 있었지만 일은 줄지 않았다. A씨는 결국 유산했는데, 1주일 남짓 쉬고 다시 편의점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렇다고 A씨 부부가 일한 만큼의 돈이나 생활비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A씨는 190만원이라도 자신과 남편에게 달라고 요구했지만, 시어머니는 150만원을 제안할 뿐이었다. 이를 거부하자 시어머니는 "집에서 나가라, 이혼하라"고 소리쳤다. 남편 역시 "당분간 친척집에서 지내라"며 A씨를 내보냈고, 시어머니는 떠나는 A씨의 휴대전화를 빼앗기도 했다. 이틀 후 남편은 이혼을 요구했다. A씨는 남편을 상대로 이혼소송을 냈고, 남편의 귀책사유도 재판 과정에서 인정됐다.

A씨는 혼인 단절 비자(F-6-3)로 한국에 더 머무르려고 했지만 출입국·외국인청은 체류자격을 내주지 않았다. A씨의 남편은 실태조사를 나온 출입국·외국인청 관계자들에게 "내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A가 한국에 더 살 수 없다는 말에 이혼 소송에서 책임을 인정했다"고 진술한 것이다. 당국은 A씨가 집을 나간 점, 남편의 진술에 따르면 귀책 사유가 석연치 않은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A씨는 소송을 냈지만 법원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중앙포토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중앙포토

지난 2019년 이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특별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혼인 파탄이 어느 일방의 전적인 귀책사유에서 비롯됐다고 평가할 수 있느냐"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애초에 잘못이 한쪽에게만 명백한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법에 규정된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사람'이란 '주된 귀책사유가 한국인 배우자에게 있는 경우' 정도로 해석하는 게 맞다고 봤다. A씨 사례의 경우 주된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으니 체류 자격을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언어나 문화, 자료 수집에 있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 배우자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국인 배우자의 귀책사유를 입증할 책임 역시 행정청에 있다"고 판시했다. 이 대법원 판결은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 보호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남편의 혼인 무효 소송이 두렵다…대법원 "세심히 판단해야"

2021년 기준 결혼 이민자는 16만여명. 이 중 여성이 13만여명을 차지한다. 이들은 언제나 '진정한 결혼 생활'의 정답처럼 살아갈 것을 요구받는다. 결혼 이민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약 3년마다 원만한 부부임을 증명해야 하고, 상대가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기라도 하면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수 있다. 당국은 위장 결혼이나 사기 결혼과 같은 사례를 잡아내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이주 여성들이 '을'의 지위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법원 역시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아 왔다. 남편이 제기하는 혼인 무효 확인 청구를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대법원 특별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변화된 입장을 내놨다. 혼인 무효 사건을 보다 세심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법원

법원

민법은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를 혼인 무효 사유로 보고 있다. 부부라고 인정되는 정신적·육체적 결합을 생기게 할 의사의 합치가 없는 경우 혼인 무효를 인정하는 것이다. 동거 기간이 짧거나 아내의 가출 사실 등을 제시하면 남편이 쉽게 승소할 수 있었던 과거 판례와 달리, 대법원은 외국인 배우자의 의사를 좀 더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혼인 의사는 당사자의 '내심의 의사'인 만큼 몇몇 사정만으로 혼인 무효 판결을 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외국인 배우자들은 양국 법령에 따라 비교적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만 혼인 생활에 이르는 점, 언어장벽이나 문화와 관습의 차이 등으로 혼인 생활의 양상이 다를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3월에도 베트남 국적의 여성 B씨가 집안일과 가난에 시달리다 집을 나가자 남편이 혼인 무효 소송을 낸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특별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남편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진정한 혼인 의사를 가지고 결혼해 입국했더라도 상호 신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문화적인 부적응, 언어 장벽 등 결혼 당시 기대했던 생활과 현실 사이 괴리감으로 인해 혼인관계 지속을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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