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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수년간 이어져, 미국·중국이 승자 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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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호 05면

한불클럽·불한클럽 회의

7일 프랑스 파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불클럽·불한클럽 회의 참석자들이 에너지·원자력 및 우주 협력 분야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이 회의는 2016년 출범 이후 매년 양국을 오가며 열렸지만, 팬데믹 시기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이날 처음 대면으로 열렸다. 전수진 기자

7일 프랑스 파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불클럽·불한클럽 회의 참석자들이 에너지·원자력 및 우주 협력 분야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이 회의는 2016년 출범 이후 매년 양국을 오가며 열렸지만, 팬데믹 시기 비대면으로 진행되다 이날 처음 대면으로 열렸다. 전수진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년간 이어질 수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출구 전략 없이는 핵무기를 사용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전쟁의 승자는 결국 미국과 중국이 될 것이며 푸틴 대통령은 원치 않는 결과만 초래하게 됐다.”(장-다비드 레비트 전 프랑스 대통령 외교 고문)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아시아에도 함의가 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오쩌둥급 지도자로 영구 집권을 하려는 시점에 대만 합병을 계기로 삼을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시 주석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홍석현 한불클럽 및 중앙홀딩스 회장)

7일 프랑스 파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불클럽·불한클럽 회의에서 양국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국제사회 및 경제에 미치는 구조적 함의를 분석했다. 한불클럽·불한클럽은 양국 지도층 인사들이 수교 130주년을 맞은 2016년 양자 관계 발전 및 교류를 위해 출범시켰다. 매년 양국을 오가며 열려 오다 팬데믹 시기엔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이날 회의는 팬데믹 후 첫 대면 회의다. 프랑스 측은 이날 회의를 위해 유서 깊은 키 도르세이 외교부 청사의 철문을 열었다. 프랑스 외교부 청사는 1855년 완공됐으며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이 체결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날 회의의 화두는 단연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외교·지정학, 에너지·원자력과 우주 협력, 소프트 파워 및 문화 분야 등으로 나뉘어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함의와 한국과 프랑스가 할 수 있는 역할 등을 다각도로 진단했다. 회의가 진행된 7일은 푸틴의 70세 생일이기도 했다.

외교·지정학을 다룬 세션1의 첫 발표자인 홍석현 한불클럽 회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안 되는 여러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며, 이에 어떻게 대처할지가 새 정부 외교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한국의 대처 여하에 따라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에 대해 더욱 대립각을 세우면서 동시에 대북 지원을 노골화할 소지도 있다”며 “당분간 남북 간, 북·미 간 갈등은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 회장은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가 북한에 갖는 의미에도 주목했다. 홍 회장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북한의 관점은 독특하다”며 “북한은 우크라이나가 핵 보유국이 아니기에 침공을 받았다고 보고 자신의 핵 능력에 대한 집착을 강화할 것이며,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홍 회장은 또 “2022년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정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시 북·미 간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던) 2017년의 데자뷔”라며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지를 김정은 위원장이 주의 깊게 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측 발표자인 레비트 전 고문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역사적 뿌리에 주목하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설명했다. 그는 수년간 프랑스 대통령들의 외교 책사였으며 주미 프랑스대사도 지냈다. 그는 “푸틴은 스탈린의 후예로 러시아 제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으며 그 열망을 실현하는 첫 선택이 우크라이나 합병”이라며 “그러나 푸틴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하면서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러시아는 이제 우방이 아닌 적국’이란 인식을 심었으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뇌사 상태에서 깨운 뒤 그 어느 때보다 더 단단히 단합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레비트 전 고문은 특히 이번 전쟁으로 중국이 어부지리를 얻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러시아는 점점 빈곤화하고 있으며 중국의 독주가 더 뚜렷해질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이번 전쟁으로 원하지 않는 결과들을 초래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양국 역할에도 주목했다. 홍 회장은 “프랑스는 나토의 일원이면서도 러시아와 남다른 수준의 대화를 유지해온 나라”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하는 데 프랑스가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레비트 전 고문도 “남북이 분단된 채로 미국·일본·유럽과 단합하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도 우크라이나의 평화 정착은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는 토론에서 “이번 전쟁으로 결국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존성이 전략적으로 높아졌다”며 “미국이 경제적으로 보호주의를 다시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프랑스가 해야 할 역할도 커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진 에너지·원자력 및 우주 협력 분야 회의에서도 참석자들은 양국이 협력을 강화할 여지가 크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양국의 우주 협력은 그동안 의미가 큰 성과를 꾸준히 내왔다. 그 주인공 중 하나가 프랑스 우주 기업인 아리안스페이스이며 최고경영자(CEO)가 불한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스테판 이스라엘이다. 지난번 한국의 위성 발사 성공에도 아리안스페이스가 핵심 역할을 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7월 제임스 웹 망원경 발사를 의뢰한 곳도 이곳이었다.

포스텍 총장을 지낸 김도연 울산공업학원 이사장은 “한국과 프랑스의 우주 협력 성과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크다”며 “양국의 우주 협력을 위해서도 한불클럽과 불한클럽이 할 수 있는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위기 대응 역시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은 지난해 10월 세계 주요 항공사들과 함께 2050 탄소 중립 목표에 합의했다”며 “탄소 중립 항공유 사용 및 신기종을 통한 효율성 제고 등 구체적 이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다른 주요 화두는 원자력 분야 협력이었다. 프랑스 에너지 분야 선도 기업인 탈레스의 파스칼 수리스 수석부회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또한 안보 이슈가 됐고 동시에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원자력의 중요성도 굉장히 커졌다”며 “저탄소 및 통제 가능하고 안정적인 원자력은 프랑스 에너지 주권 독립의 길을 열어준다”고 강조했다.

유대종 주프랑스대사도 “양국의 (원자력 분야) 협력은 역사가 오래됐고 꾸준히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기술진 교류 협력 등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불클럽 사무총장인 최정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 이사장은 “프랑스의 원자력 기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한국 정부와도 협력할 여지가 크다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 분야의 양국 협력도 심도 있게 논의됐다. 한국계인 플뢰르 펠르랭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최근 한국 문화계는 영화 ‘기생충’이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보듯 경제 발전에서 소외된 이들까지 보듬으려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다”며 “단시간에 소프트 파워 강국이 된 한국과 프랑스의 구체적인 문화 교류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 측 발표자로 나선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은 “새로운 미디어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양국 간 문화 협정 및 관련 법규 개정과 이를 위한 실무자 협의 진행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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