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인원’ 칸지는 안 쓴 단어 ‘왜’ 인간은 자주 써야 성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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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호 15면

자연에서 배우는 생존 이치

서광원 칼럼

서광원 칼럼

인류 진화에서 불과 언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를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불을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는 추위를 이길 수 있었고, 굽고 익혀 먹을 수 있어 세균의 공격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으며, 많이 씹지 않아도 쉽게 소화시킬 수 있었다. 덕분에 턱뼈가 줄어들면서 언어 사용이 수월해지는 연쇄작용까지 일어났다. 오늘날 인류를 있게 한 핵심 요인인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불과 언어 사용을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해왔는데, 1990년대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제시됐다. 칸지(Kanzi)라는 이름의 보노보(일명 피그미침팬지)들이 렉시그램(lexigram)이라는 일종의 그림문자로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미국 조지아 주립대 언어연구소 수 세비지 럼보 박사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보노보는 우리 인간과 가깝다는 침팬지보다 좀 더 우리와 비슷한 면이 많은 영장류다.

칸지는 뛰어난 능력 덕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는데, 발성구조 때문에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렉시그램으로 소통할 수 있는 단어가 3000개나 되고, 석기 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초기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돌을 깨뜨려 박편(剝片)을 만들고 그것으로 끈을 잘랐다. 사진가가 어떤 포즈를 취하도록 유도하면 동물답지 않게 빠르게 그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냥으로 불을 피우고, 그 불에 음식을 꿰어 구워 먹는다. 사용한 뒤에는 물을 뿌려 불을 끄고 말이다. 어린아이 수준이지만 인간만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들을 칸지가 했다.

재미있는 건 이 ‘천재 유인원’이 말하지 않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아주 많이, 그리고 흔히 사용하는데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단어가 있다. ‘왜?’(Why)가 그것이다. 칸지는 필요한 것들을 능숙하게 요구하고 사용하면서도 ‘왜?’라고 하지 않았다. 인간의 아이들은 자라면서 귀찮고 짜증날 정도로 ‘왜?’라고 하는데, 칸지는 그러지 않았다. 한 마디로 호기심이 없었다. 호기심이 없으니 세상을 해설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해설이란 자기 방식으로 상황을 해석해야 가능한 행동이다.

우리는 ‘왜’를 흔하게 사용하기에 그런가 싶지만 이건 대단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게 왜 그렇지?”라는 질문에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걸 있게 한 어떤 원인이나 영향을 끼친 무언가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물은 보이는 것만으로 세상을 판단하지만, 인간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인과관계 같은 방식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추상적인 것까지 포괄하는 이런 능력이 있기에 인간은 세상을 훨씬 넓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만이 가진 이 능력을 모든 인간이 완전히 장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잘 사용하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는 일본의 강소기업들에겐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왜’의 일상화다. 스스로 끊임없이 ‘왜’를 해가며 답을 찾아낸다. 세계적인 기업 도요타는 문제가 생기면 ‘왜’를 여섯 번씩 하라고 하기까지 한다. 끈덕지게 ‘왜’를 하다 보면 근본적인 원인이나 최선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도요타 방식이 유행일 때, 이 도요타 관계자가 국내 기업 관계자에게 했다는 말이 있다. “당신들은 ‘왜’를 (우리보다) 절반도 안 하는 것 같다.” 실력 차이가 여기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유럽의 중세는 암흑시대로 불린다. ‘왜?’라고 묻는 걸 죄악시했기 때문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조차 “신은 꼬치꼬치 따져 묻는 자들을 위해 지옥을 마련했다”고 했을 정도다. 모르는 것을 묻지 못하게 하니 발전이 있을 리 없었다. 이유는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왜’는 일종의 금기어였다. 권위에 도전하는 단어였을 뿐만 아니라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방향이 주어진 상황에서는 ‘왜’보다 빨리 추구해야 할 ‘무엇’이 더 중요할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더구나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시대이기에 이제는 ‘무엇’보다 ‘왜’가 필요하다. ‘왜’를 통해 잘못을 찾아내고 교정하면 제대로 된 방향을 찾을 수 있고 효과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눈앞에 있는 적보다는 싸워야 할 이유가 있는 적이 진짜 적이듯, 길이라고 다 길이 아니다. 가야 할 이유가 있어야 제대로 된 길이다.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인간답게 “왜왜왜왜왜왜…”라고 물어야 더 나은 미래로 갈 수 있다. 택시 멸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제가 되고 있는 택시 대란이 왜 일어났는지, 대학들은 왜 자꾸 뭔가를 숨기는 듯 이상한 말들을 하는지. 이 때문에 우리가 보이지 않게 치르고 있거나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얼마나 되고, 이것들이 우리의 성장을 얼마나 가로막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경향신문과 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2005년부터 자연의 생존 전략을 연구하며 지속 가능한 생명력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등의 책을 냈고,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서 ‘지식탐정의 호시탐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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