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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농사만 짓다 고향 떠난 비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08호 20면

동물, 채소, 정크푸드

동물, 채소, 정크푸드

동물, 채소, 정크푸드
마크 비트먼 지음
김재용 옮김
그러나

먹는 것에 관한 한 우리는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 음식은 생존의 결정적 요소다. 건강과도 연관 있다. 먹는 음식의 질은 인간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좌우한다. 그런데 이 풍요로운 시대에 우리는 식품 자체나 특정 영양소의 과잉섭취 등에 따른 비만과 성인병을 걱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뭔가 고장 난 게 아닌가? 농업과 식품산업의 발달이 우리에게 양적인 풍요와 함께 모순도 함께 전한 건 아닌지 생각해볼 수밖에 없다. 이제 ‘언제까지 이렇게 먹을 것인가’를 화두로 삼아 건강과 생태계와의 조화를 이루면서 식도락을 즐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은이는 미국 컬럼비아대 보건대학원 교수로 육류의 과잉생산과 과소비, 만성질환, 지구온난화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주력해왔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미니멀리스트’ 칼럼을 쓰며 많은 사람이 고기의 대량소비를 재고하게 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농업과 음식산업의 대량 생산이 필연적으로 정크푸드 시대를 연다는 지적을 하면서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어왔다.

미국의 옥수수밭. 저자는 단일작물 대규모 재배의 문제를 비판하며 과거 아일랜드 대기근을 초래한 원인으로도 지목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옥수수밭. 저자는 단일작물 대규모 재배의 문제를 비판하며 과거 아일랜드 대기근을 초래한 원인으로도 지목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지은이는 왜 식품이 인류에게 풍요와 모순을 동시에 안겼는지를 역사적으로 되짚는다. 산업혁명으로 인류가 거대한 변화를 겪었듯 인류가 먹을 것을 생산하는 일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수렵·채집으로 연명하던 인간은 농업을 알게 되면서 땅의 주인이 되어갔다. 대지에서 작물을 수확하고, 가축을 길렀다.

기술의 발달로 인류는 맥주·포도주·효모빵·벌꿀을 즐기게 됐다. 가축의 젖과 이를 바탕으로 만든 버터·요구르트 등으로 맛의 지평을 넓혀갔다. 이와 함께 인류를 옥죄는 불평등· 계급사회·경쟁 등도 출현했다. 이처럼 인류는 먹을 것을 구하는 과정에서 문명을 꽃피웠으며, 모순도 함께 자랐다.

그 와중에 농민들은 더 많은 이익을 낳는 가축에 땅을 빼앗겨갔다. 대항해 시대 등을 거치면서 농업은 세계화가 됐다. 부유한 사람은 맛과 향을 내는 육두구·정향·계피 등 향신료에 집착했다. 신대륙인 안데스 산맥 기슭에서 감자가 들어오면서 유럽은 먹는 문제의 고민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아일랜드에서 감자에 병이 돌고 잉글랜드 지주들이 농민들을 방치하면서 대기근이 들었다. 기근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감자라는 단일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방식이었다. 그 바람에 수많은 사람이 대안 없는 기근을 만난 것이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떠나야 했다. 오늘날 미국을 비롯해 아일랜드 본국보다 해외에 더 많은 아일랜드계 주민이 살게 된 이유다. 농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에 기근이 발생한 것은 작물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본과 이익, 그리고 넓게 봐서 권력의 모순 때문이었다. 더욱 넓게 보면 인간의 탐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회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일랜드계 등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자유와 기회를 찾아 건너간 신대륙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미국의 대평원은 비옥하고 평평하며 물이 풍부했다. 농업에 그야말로 천혜의 땅이다. 하지만 밀·옥수수 등 소수에 집중해 단일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며 규모의 경제를 추구한 미국식 농법은 땅은 물론 사람에게 고통을 안겼다. 농산물의 대량생산은 이를 ‘원래 모습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초가공해 대량으로 판매하는 공장식 식료품 산업으로 이어졌다.

공장식 식료품 산업이 전 세계를 지배한다는 근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거대 식품 브랜드를 떠올리면 된다. 인류는 공장에서 가공에 가공을 더한 포장 식품과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정크푸드를 문명의 혜택으로 여기면서 살게 됐다. 그 결과 머리로는 비만과 성인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면서, 손은 정크푸드에 지갑을 여는 식품 인지 부조화의 시대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지은이는 대안으로 ‘농생태학’을 바탕으로 하는 생태 친화적 농업과 생명 친화적 식품산업을 제안한다. 인간의 건강을 앞세우고 생태계와의 조화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농업과 식품산업을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작품을 소량 다품종으로 길러 땅도 살리고 이를 먹는 주민 건강도 돌보는 지역 중심의 농업은 이미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과체중과 이로 인한 당뇨병, 그리고 조기 사망과 연결되는 다양한 질병들을 극복하려면 농업과 식품 소비 구조부터 대대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지은이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속가능성에서 자멸에 이르는 음식의 역사’라는 부제는 지은이의 외침을 잘 요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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