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기대 높아져, 의사조력사망 입법화 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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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8호 18면

오늘 호스피스의 날 

지난 6일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가 연명의료결정법 개정과 의사조력사망 법제화의 필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권위에 웰다잉 관련 정책제언을 제출했다. 정준희 기자

지난 6일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윤영호 서울대병원 교수가 연명의료결정법 개정과 의사조력사망 법제화의 필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날 인권위에 웰다잉 관련 정책제언을 제출했다. 정준희 기자

지난 6일 오전 11시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를 찾았다. 그는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높아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비참한 죽음의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며 최창석 평산 대표변호사, 김효붕 중부로 대표변호사와 함께 작성한 연명의료결정법 개정과 의사조력사망(의사조력자살 및 안락사) 법제화를 촉구하는 정책제언을 인권위에 전달했다.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만난 윤 교수는 “조력자살을 하기 위해 스위스로 향하고, 질병 부담으로 인해 간병 살인, 동반 자살이 발생하는 이유는 국가가 국민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을 위배한 국가의 직무유기이자 인권침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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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죽음의 현실은.
“현재 국내 사망자의 75.6%는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에 따라 죽어가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치중하기 때문에 품위있고 인간적인 죽음을 맞이하기 어렵다. 연간 사망자 30만명 중 갑자기 사망한 사례는 15%에 불과하다. 85%는 중증질환자로 죽음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의식이 있는 때는 치료에 매달리느라 삶을 정리할 시기를 놓치고,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합의된 웰다잉 정책이 없다. 정책제언을 추진한 가장 큰 배경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는데.
“2016년에 제정한 이 법은 죽음에 임박한 때에만 국한된 법이다. 그 전에는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없다. 또한 연명의료를 중단해도 생명 유지에 필요한 영양 및 산소는 계속 공급해야 한다. 통증을 완화하고 인격적 돌봄을 제공하는 호스피스 대상 질환도 제한적이다. 말기암, 말기폐쇄성질환, 만성간경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호흡부전 5개 질환 환자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이용자의 99%는 암 환자다. 그 마저도 다 수용하지 못해 암 환자의 23%, 그 외 대상 질환자의 0.5%만이 호스피스에서 사망한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의사조력사망도 제안했는데.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한국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력존엄사 입법화에 82%가 찬성했다. 지난해 직접 시행한 조사의 찬성률(76.3%)보다 높았다. 또한 호스피스와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고, 마지막 소원 이루기, 생전 장례식 등 남은 삶을 잘 마무리 하는 ‘광의의 웰다잉’ 법제화에 대해서도 72%가 찬성했다. 의사조력사망 입법과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46%, 광의의 웰다잉 법제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26%였다. 세계적으로도 의사조력사망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에서 적극적 안락사 또는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고 있다. 가톨릭의 본산인 이탈리아에서도 합법적 조력자살이 시행됐다.”
인권위를 찾은 이유는.
“질병에 따라 호스피스 이용이 제한되고, 회복 가능성이 없고 심한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가 의사조력사망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은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의 박탈이자 인권침해다. 인권위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연명의료결정법 개정 및 의사조력사망 입법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인권침해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의견을 인권위에서 헌법재판소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nam.miga@joongang.co.kr

호스피스 확대 등에 비용이 많이 들 것 같은데.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보편화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 건강검진할 때, 중증질환으로 진단을 받았을 때, 말기 선고를 받았을 때마다 연명의료 및 조력사망에 대한 의사를 묻는 것이다. 2018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말기암 환자가 사망하기 6개월전부터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호스피스를 이용하면 1인당 약 370만원의 의료보험료가 절감된다. 지난해 호스피스를 이용한 암 환자 1만8925명을 곱하면 약 700억원이다. 이 비용을 선제적으로 투입해 호스피스 기관을 확대하고, 광의의 웰다잉 실현 기금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해외 호스피스의 경우 기부금이 상당하다. 2016년 우리나라에서도 조의금 기부 의사를 조사했는데 50% 이상 찬성했다.”
최근까지 우리나라에 의사조력사망 도입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24살 누님이 위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 때부터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의대에 들어오고 나선 호스피스 봉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웰 다잉’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광의의 웰다잉’을 주장한 배경이다. 하지만 열악한 죽음의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간병살인 등의 문제를 접하면서 국가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경제적·사회적으로 궁지에 몰리는 상황을 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결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 속에 자살하거나 가족에게 살인을 요청하는 현실을 접하면서 환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필요하지 않을까도 고민했다. 제한적으로 의사조력사망을 허용하면 대상자를 심사할 때 개인이 처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을 도와 자살을 예방하는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 새로운 정책을 만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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