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방대학 몰락 가속화] 경북·부산·충남대 신입생 10명 중 1명 이탈, 지역거점대학 교수도 학생도 서울로 대탈출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08호 08면

SPECIAL REPORT

지난해 5월 지역대학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송봉근 기자

지난해 5월 지역대학에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송봉근 기자

지역 대학 학생이 떠난다. 교수도 자리를 옮긴다. 이들의 목표는 서울이다. 2023학년도 대학 수시모집에서 경쟁률 6대 1 미만을 기록한 96개 대학 중 77곳(80%)이 지방대학이었다. 반면 서울권 대학의 경쟁률은 16.85대 1에 달했다. 이전부터 지방의 중소 사립대학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졌지만, 국공립 거점대학으로 옮겨붙은 건 최근의 일이다. 경북대·부산대·충남대 같은 거점국립대조차 지난해 신입생의 9% 이상이 빠져나갔다. 9개 거점국립대 신입생의 중도탈락 비율은 8.2%에 달한다.

관련기사

교수들도 떠날 기회만 엿본다. 수도권 대학에 비해 낮은 연봉에 연구비 격차도 크다. 지역 대학이 활기를 잃으면서 이미 인근 상권도 무너졌다. 학생과 교수의 탈출 러시로 지역 대학이 재정적, 학문적으로 부실해지면 다시 일자리 감소, 지역 경제 위축을 불러 지역 소멸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중앙SUNDAY는 이런 ‘대탈출’ 소용돌이의 현장을 찾아 실태를 확인해봤다.

지방대학 수시전형 사실상 정원 미달

학생

지난 6일 부·울·경 잡페스티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수도권에선 매주 취업 박람회가 열리지만 지역에서는 인근 권역이 함께 행사를 진행할 정도로 흔치 않다. 송봉근 기자

지난 6일 부·울·경 잡페스티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수도권에선 매주 취업 박람회가 열리지만 지역에서는 인근 권역이 함께 행사를 진행할 정도로 흔치 않다. 송봉근 기자

“캠퍼스 안팎에서 누릴 수 있는 교육·문화 인프라가 너무나 부족해 반수를 택했어요. 입사 면접 하나를 보려고 2박3일 상경하는 선배들을 보니 미래가 있나 싶더라고요. 비용이 많이 들어도 정보와 일자리가 모여있는 수도권 대학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방 탈출의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일자리다. 지역 최상위권 대학인 경북대 신입생 박모(20)씨는 “이미 학과 동기 중 절반이 반수 혹은 자퇴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서울 중위권 대학과 집 근처의 경북대에 동시 합격하면 경북대를 선택했던 불문율은 과거지사일 뿐이다. 부산 부경대를 다니다가 반수를 선택한 김모(21)씨는 “지방에서는 인턴 자리는커녕 취업박람회나 기업설명회조차 거의 없다”며 “졸업해서 할 수 있는 건 지역 내 이름 없는 기업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뿐”이라며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느니 1~2년 더 투자해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에 진학하거나 생활 여건이 좋은 수도권 대학에 가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in) 서울’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한 다른 김모(22)씨도 “똑똑한 학생들은 모두 서울로 간 지 오래고, 이제 지역대학에는 성적이 안 돼서 못 간 학생들만 남은 상황”이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다양한 기회를 접하기 어렵다는 것도 지방 학생들의 고민거리다. 대구 계명대를 다니다 휴학중인 최모(21)씨는 “자신의 경험을 나눠줄 선배도 없고, 교수님은 형식적인 강의만 하는 상황을 보니 대학교가 아니라 고등학교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학교에서 도움을 받고, 함께 도전할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서울의 대학생들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다”고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전국 대학이 초유의 위기를 겪고 있다. 그중에서도 비수도권 대학이 직격탄을 맞았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일부 지역 사립대학의 문제였던 대학 탈출은 순식간에 지방거점국립대학까지 번졌다. ‘반수(대학에 다니면서 재수)’를 해서라도 ‘인 서울’을 하겠다는 게 최근 대학가 분위기다. 실제로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 200만명 가운데 중도탈락한 10만명의 사유를 분석해보니 학사경고는 2000명, 유급 제적은 32명에 불과했다. 수업연한 초과(600명)까지 합쳐도 학업 때문에 교문을 나선 경우는 극소수였다. 대부분이 자퇴(6만명), 미등록(1만명), 미복학(2만2000명) 등 자의로 학교를 떠난 경우였다. 오종운 종로학원 이사는 “최근 들어 지방 거점국립대학의 위상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이나 의약학계열로 갈아타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원과 문화의 수도권 집중화도 탈출을 부채질한다. 지역대학을 탈출하려는 학생들은 하나같이 “서울에서는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모든 게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령 대학 입학 후 창업에 도전하려는 학생의 경우 서울에서는 대학과 지자체가 제공하는 인적자원과 지원 혜택을 쉽게 접하고,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지역에서는 함께 창업에 도전할 동료를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지역에 뿌리를 두고 도전을 하려 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셈이다. 부모님의 권유로 경상대에 진학했다 자퇴, 재수를 선택한 이모(20)씨는 “똑같은 대학생인데 서울의 문화생활을 누리며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는 친구들과 나의 삶이 너무 다르다는 생각에 재수를 결정했다”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역에 남으면 대입에서 실패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해 올해 수능에서는 인 서울만 하면 어느 대학이라도 갈 것”이라고 전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1868만원이지만, 비수도권 대학은 1580만원에 그쳤다.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는 “대학생이 누릴 수 있는 모든 혜택이 수도권에 편중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으로서는 지역에 남아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며 “인공지능(AI)으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은 여전히 80년대 제조업에 머물러 있으니 학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유인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비수도권 정교수 연봉 2000만원 낮아

교수 

7월 이우종 청운대 총장(위)과 박맹수 원광대 총장이 수도권 대학 증원에 반대하며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7월 이우종 청운대 총장(위)과 박맹수 원광대 총장이 수도권 대학 증원에 반대하며 현수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 연구? 지역대학에 더는 그런 건 없습니다. 전 교직원이 정량지표에만 매달려요. 일정 수준에 미달하면 재정지원에 제약을 받고, 학생들도 떠나갈 테니까요. 입시에만 사활을 걸다 보니 ‘내 자식이라면 이런 학교에 보낼 것인가?’라는 의문까지 들더군요. 떠날 사람은 이미 다 떠났습니다.”

올해 지역 사립대학에서 국립대로 이직한 정모 교수는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학생들의 탈출로 학교가 붕괴하는 것을 지켜보는 교수들도 정년 보장을 내려놓고 탈출에 나선다. 14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이 대학의 수익 악화로 이어지면서 지역대학 교수들에게 연봉이나 연구비 인상은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다. 비수도권 대학 조교수 연봉은 평균 5600만원으로 올해 100대 기업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5356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최소 5~6년에 걸쳐 석사·박사 과정까지 마쳐도 학사 졸업한 제자들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임도빈 서울대 공기업정책학과 교수는 “4년간 지도해서 배출한 학생들은 대기업에서 초봉 1억을 턱턱 받는데, 이들을 지도하는 교수는 그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 상황”이라며 “좋은 연구실적과 지도능력을 가진 교수들은 이에 불만을 느껴 기업체나 재정이 탄탄한 최상위권 대학으로 이직하고, 재정 여력이 부족한 대학에는 교수 타이틀이 필요한 일부만이 남아 교육의 질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지역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들은 연구나 교육에 열의를 느끼지 못하고 교육부 평가 기준 맞추기에 급급하다. 지방의 한 사립대학 A 교수는 “이곳에서는 교육이나 연구에 집중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상황”이라며 “학생 충원율이 낮아져 부실대학으로 지정될 경우 대학본부에 타격이 크기 때문에 교수 지인들을 가짜로 등록하고 휴학시켜 신입생 충원율을 유지하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에 입학한 25세 이상 만학도 숫자가 2011년 4768명(1.3%)에서 지난해 9391명(2.9%)로 급증한 것에는 평생교육의 대중화 요인도 없지 않지만, 상당 부분은 지방대에서 정원을 채우기 위해 이름만 올린 결과라는 전언이다. 특히 50대 만학도는 지방대를 중심으로 같은 기간 484명에서 2608명으로 늘었다. A 교수는 “신입생 모집 시즌에는 연구, 강의하는 시간보다 고등학교에 나가 학생들 불러모으는 시간이 더 많다”며 “직업이 교수가 맞나 의문도 들고, 하루빨리 서울권 학교로 이직하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덧붙였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비수도권 대학의 정교수 평균 연봉은 1억1151만원으로 수도권 대학(1억3209만원)보다 2000만원 이상 적었다. 상황이 비교적 나은 국립대학을 제외한 비수도권 사립대학 정교수의 평균 연봉은 1억852만원에 그쳤다. 연구비는 상위권 집중이 더 심하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4년제 대학 연구비 7조1346억원 가운데 44.6%를 30여개의 서울 소재 대학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에서 쓴 연구비도 KAIST·포스텍과 거점국립대 등 상위 10개 대학이 절반을 차지했다. 나머지 160여개 지방 대학이 4분의 1을 나눠쓰는 셈이다.

그 결과 수도권 대학 전임교원 1인당 연구비는 1억3819만원인 반면 비수도권 대학은 7123만원에 그쳤다. 지역 상위 대학을 제외하면 연간 연구비가 5000만원에도 못미치는 교수가 대부분이라는 의미다. 그나마 강단은 갈수록 좁아진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비수도권 대학의 학과 통폐합은 2019년 119건에서 2021년 262건으로 늘었다. 학과가 사라진다는 것은 교수도 실직 위기라는 신호다. 정 교수는 “비수도권 사립대학 교수들은 어떻게든 국립대학으로, 수도권 대학으로 이직하려 사투를 벌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외국인 유학생 30% 떠나

학교 

“유일한 수입이 등록금인데, 등록금을 못 올린 게 벌써 14년째입니다. 당연히 교수 월급도 못 올리고, 실험이나 실습수업은 꿈도 못 꾸죠. 학생들한테 우리 학교 와달라고 권유하기에도 미안할 지경이에요. 교육부도 지역대학 살리기를 포기한 상황에서 대학이 어떻게 살아남겠습니까.”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강원도에 위치한 사립 B대학의 입학처 관계자는 씁쓸하게 말했다. 학생과 교수가 ‘탈출’하는 상황에서 대학본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신입생 유치뿐이다. 도서산간의 학교를 찾아가 학교를 홍보하고, 전형료(원서비)·입학금 면제, 기숙사 제공 등의 파격적인 혜택을 내놓고 있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대전의 4년제 사립 C대학 입학 관계자는 “학생 유치를 위해 고등학교에 찾아가도 누구 하나 반겨주지 않고, 이제는 교직원들도 이직할 곳을 알아보고 있을 정도”라며 한숨을 쉬었다.

교육계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수도권에 유리한 대학평가기준이 지역 대학의 쇠퇴를 가속한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교육부는 2015년부터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에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등 동일한 정량지표를 활용해 대학정원을 관리하고, 부실·해체대학을 지정해왔다. 평가지표 중 미충족 지표가 3개 이상인 경우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없어 대학 입장으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지표들은 모두 인프라가 풍부한 수도권 대학에 유리한 구조다. 김태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위부위원장은 지난해 대학통합네트워크 현실화 토론회에서 “수도권에 소위 서열이 높은 대학과 일자리가 많으니 학생충원율과 졸업생 취업률 모두 수도권 대학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역 사립대학 소속의 D 교수는 “비수도권 대학에는 재정지원도 적은데, 등록금 동결이나 사학재단의 재산 처분 등 온갖 규제로 학교가 파산 직전”이라며 “학생은 줄어드는데 등록금은 올리지 말고 교육의 질을 높여 살아남으라는 건 총알도 없이 전쟁에 나가서 이기라는 격”이라고 분노했다.

내국인 재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은 비수도권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정원을 채워왔다.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퍼지며 비수도권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비중은 2019년 46%에서 지난 4월 41.8%까지 줄었다. 외국인 유학생 수가 1500명에 달했던 경남의 E 대학은 코로나 확산 이전인 2019년 대비 약 30%의 외국인 학생들이 학교를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학 관계자는 “유학생들이 사라져 재정 타격이 컸다”며 “코로나19 확산이 잦아든 올해는 어떻게든 많은 유학생을 유치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경남 F 대학의 경우 어학연수 프로그램 운영을 중단하는 등 학생 유치를 사실상 포기했다.

이동규 교수는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를 통해 출생아 수 감소와 수도권 집중화로 2046년에는 지역대학이 50% 이상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지금 지역대학에 쓸 수 있는 해법은 단 두 가지”라며 “도저히 살아날 수 없는 대학은 과감히 정리하되, 조금이라도 개선의 여지가 보이는 대학은 무조건적인 지원으로 심폐소생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기업들도 매칭펀드 조성, 창업 지원, 지역인재 우선채용 등 지역 인재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는 “지방대학 생태계를 완전히 뒤엎을 수 있는 파괴적 혁신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대학뿐 아니라 지역 전체가 소멸의 길로 가는 건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