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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아이들이다, 상처가 있는[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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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라워라
박노해 글·사진
느린걸음

눈 풍경을 배경으로 각자 어린 양을 한 마리씩 품에 안은 두 소년은 카메라를 의식한 표정이다. 기념사진 포즈다. 빙긋이 미소 짓거나 담배를 꼬나문 뒤편 어른들의 시선 역시 아이들 앞의 사진 찍는 이를 주시한다. 평범한 기행 사진 같은 인상을 단박에 깨부수는 게 사진에 곁들인 짧은 산문의 첫 두 줄이다.

 "하카리에 폭설이 내리면 총성마저 멈춘다./ 눈이 강제한 짧고도 차가운 평화다."
 어떤 땅에서 눈은 단순히 레토릭 차원에서 평화를 상징하지 않는다. 물리학처럼 자명하게 실제적이다. 눈이 오면 전쟁을 할 수 없다. 그러니 눈은 평화를 가져온다.

 Hakkari, Kurdistan, Turkiye, 2006.[사진 박노해]

Hakkari, Kurdistan, Turkiye, 2006.[사진 박노해]

 시인 박노해의 새 사진 에세이집 『아이들은 놀라워라』의 88·89쪽이 전하는 감흥이다. 하카리는 튀르키예의 지명. 소년들은 튀르키예 정부의 박해를 받는 쿠르드족 아이들. 2006년 찍은 사진이다.

 시인은 쿠르드 민족 해방을 위해 먼 전선으로 떠났을 형과 누나의 생사에 대한 근심 때문에 아이들의 마음이 시리다고 쓴다. 그런 속에서도 양들은 새끼를 낳는다.
 '어린 양을 안고'라는 제목의 박노해 산문글인데, 한국문학 감식가 안선재 선생의 영문 번역을 만나 일종의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뜻이 분명해지면서도 여운이 짙어진 느낌이다. 이렇게 옮겨졌다.

 "When snow falls in Hakkari, even the gunfire stops. It's a short, cold peace imposed by the snow. Hearts yearn to know if older brothers and sisters, who left for the Zagros Mountains to liberate the Kurds, are still alive, while lambs are born(…)."

 2011년 미얀마를 찾은 박노해 시인이 수도 외곽 달라 마을 아이들과 물을 길어오는 모습.[사진 느린걸음]

2011년 미얀마를 찾은 박노해 시인이 수도 외곽 달라 마을 아이들과 물을 길어오는 모습.[사진 느린걸음]

 박노해는 2019년부터 영문을 병기한 사진 에세이집을 내 왔다. 이번이 다섯 번째다. 2020년 『길』, 올 초 『내 작은 방』에 이어 이번에는 세상의 기적, 마지막 희망이라고 할 아이들에 주목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페루·에티오피아 등의 오지에서 찍은 세계의 아이들을 사진과 글에 담았다. 시인은 "우리 모두는 상처 난 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책 속의 아이들 사연은 결국 우리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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