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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실세 사무총장' 정치보복 논란…독립기관 감사원의 모순

중앙일보

입력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국무회의에 앞서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에게 “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 ”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뉴스1]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국무회의에 앞서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에게 “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 ”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뉴스1]

한때 감사원의 독립선언이 있었다. 30여년 전인 1993년 2월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전 한나라당 총재)의 취임사가 그것이다. 이 전 감사원장은 “감사원은 직무상 대통령으로부터도 독립한 지위에 있다. 어느 누구의 부당한 간섭도 받지 않을 것”이라 밝혀 큰 박수를 받았다. 취임 직후 전두환 정부의 평화의 댐 의혹과 노태우 정부의 군전력증강사업(율곡사업) 비리를 파헤쳤다. 두 전직 대통령(전두환·노태우)도 조사를 피해 가지 못했다. 전직 장성들이 대거 구속됐다.

하지만 감사원이 늘 박수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독립선언’ 뒤에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감사를 둘러싼 정치보복 논란은 이어졌고, 감사원의 독립성은 부침을 겪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감사원의 실세라 불리는 유병호 사무총장에 대한 야당의 반발이 거세다. 문재인 정부를 겨냥해 그가 주도하는 감사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다. 5일 언론에 노출된 유 총장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의 문자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최근 감사원을 둘러싼 세 가지 쟁점을 살펴봤다.

1993년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율곡사업과련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일보

1993년 이회창 당시 감사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율곡사업과련 감사결과를 발표하고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중앙일보

정치보복인가 아닌가

야당은 감사원을 ‘윤석열 정부의 사냥개’라 비유하며 정치보복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감사원이 서해 피살 공무원과 전현희 권익위원장 비위 의혹, 백신 수급, 신재생에너지, 통계조작 의혹 등 문재인 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사안을 동시다발적으로 들여다보는 건 사실이다. 감사원 내부에선 “감사의 판이 과거보다 커졌다”는 말도 나온다.

다만 이런 논란이 새롭지는 않다. 대표적 사례가 ‘4대강 감사’다. 이명박(MB)·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네 번의 감사를 했고 그때마다 결과가 뒤틀렸다. 박근혜 정부 당시엔 4대강 감사를 두고 친이계 의원들이 당내 야당 역할을 하며 감사원과 날을 세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4대강 정책 감사’를 직접 지시해 야당으로부터 “감사원의 독립성을 흔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직 감사원 고위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감사원이 스스로 ‘감사 자제’를 선언하며 미뤄놓은 일이 많은 것으로 안다”며 “1년 6개월만 지나면 윤석열 정부에 불편한 감사도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최재해 감사원장을 대신해 그는 감사원의 실세 사무총장이라 불린다. 뉴스1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최재해 감사원장을 대신해 그는 감사원의 실세 사무총장이라 불린다. 뉴스1

적법 절차를 위반했나

야당이 집중적으로 문제로 삼는 건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요청한 서해피살 공무원 감사가 내부 절차를 위반했는지다. 야당과 일부 언론은 감사원법상 ‘감사원의 감사정책 및 주요 감사계획에 관한 사항’은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해피살 감사와 전 위원장 관련 감사 등이 이 절차를 거치지 않아 무효란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감사원은 ‘주요 감사’라는 것은 “반기와 연간 감사 계획을 뜻하는 것일 뿐”이라며 ‘주요(主要)’의 정의를 달리하고 있다.

감사원은 ‘감사원 기획사무규정’인 감사원 훈령에 “월별 업무계획은 사무총장의 결재를, 분기별 업무계획은 감사원장의 결재를 받는다”는 조항을 들어 반박했다. 2020년 코로나19가 터졌을 당시 감사원은 4분기 감사사항 중 20개를 취소하고 21개를 추가했는데,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 외부 청구 감사도 의결을 거치지 않아, 문재인 정부를 뒤흔들어 놓은 월성원전 감사도 위원회 사전 의결 없이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와 MB정부에서 감사원장을 지낸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주요 계획에 대한 승인은 위원회 의결을 거친다”면서도 “비밀성과 신속성이 중요한 구체적 감사를 건건이 승인 받아오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서해 감사는 전직 대통령까지 조사할 만큼 파장이 큰 감사”라며 “이를 위원회 의결 없이 진행하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유 총장은 이 같은 논란에 대한 언론 보도에 대해 이 수석에게 문자를 보내며 “무식한 소리”라고 했지만, 감사원은 내부적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절차위반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의 유병호 사무총장 문자 메시지 관련 질문에 "감사원 독립성은 어차피 철저한 법에 의해 보장된다"며 "(대통령은) 관여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대통령실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의 유병호 사무총장 문자 메시지 관련 질문에 "감사원 독립성은 어차피 철저한 법에 의해 보장된다"며 "(대통령은) 관여할 시간적 여유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사진 대통령실

감사원은 대통령실서 독립했나

언론에 노출된 유 사무총장 문자 파장이 커진 건, 감사원이 마치 대통령실에 보고하는 듯한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헌법상 독립기관이지만 대통령 직속 기관이란 모순된 구조를 갖고 있다. 인사권 역시 대통령에게 있다. 그래서 정권마다 대통령실(청와대)과 감사원간의 사전교감설이 제기돼왔다. 박근혜 정부 당시 고 김영환 민정수석 비망록에 세월호 감사 관련 내용이 적혀 당시 여권이 곤욕을 치렀다.

감사원의 ‘실세 사무총장’ 논란도 처음은 아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감사원장이 자리를 지키면 역대 정권은 자신과 가까운 인사를 사무총장에 임명해왔다. 노무현 정부 당시엔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1년 후배인 오정희 사무총장이, 이명박 정부에선 청와대 TK실세와 각별했던 정창영 사무총장이, 박근혜 정부에선 ‘친박계’로 분류된 김영호 사무총장이 감사원 내부 살림을 맡았다. 김영호 전 사무총장에 대해선 당시 친이계로 분류됐던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경고하는데 실세 총장이라고 경거망동하지 말라”며 불쾌감을 드러낸 적도 있다. 문재인 정부에선 문 전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였던 왕정홍 감사위원이 사무총장에 내정돼 논란이 일었다. 전직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인사권을 대통령실이 갖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한 독립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에 일각에선 개헌을 통해 감사원을 대통령실에서 분리해 인사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20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을 맡았던 장영수 교수는 “개헌으로 감사원을 대통령실에서 분리해 구조적으로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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