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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기무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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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김현예 도쿄 특파원

“아니, 어제도 집에서 김치를 담갔는데, 가져올 걸 그랬나 봐요. 호호호. 가족들은 갓 담근 걸 좋아해서 조금씩 담가 먹거든요. 김치로 볶음밥을 하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잖아요?”

생각도 못 한 일이다. 도쿄(東京) 한복판에서 한 시간 넘게 이른바 ‘아줌마 수다’로 김치 이야기를 나누게 될 줄이야. 지난달 30일 주일 한국문화원 세종학당 앞에서 혼다 토모미(本田朋美·55)를 만났다. 요리연구가로, 또 한글을 가르치는 세종학당 학생이기도 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김치 담근 이야기를 했다.

혼다는 지난달 20일 일본서 책을 냈다. 이젠 일본서도 동네 슈퍼나 편의점만 가도 볼 수 있는 김치. 그 김치에 대한 책이다. 9개월을 꼬박 투자해 공들여 썼다. 코로나로 집에 있게 된 일본인들이 한국 드라마에 푹 빠지면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는데, 김치 담그는 법에까지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일본 특유의 절임 야채보다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책을 내게 됐다는 얘기였다.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혼다 토모미씨가 최근 출간한 김치 서적을 소개하고 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지난달 30일 일본 도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 혼다 토모미씨가 최근 출간한 김치 서적을 소개하고 있다. 김현예 도쿄 특파원

오이김치, 갓김치, 고들빼기김치에 물김치, 김장김치와 같이 먹는 보쌈까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3살 때 일이다. 상사 직원으로 일하다 광주 여행을 갔다. 국밥집에 들렀는데 여행 가이드가 덥석, 통 하나를 꺼내놨단다. “어머니가 담근 김치인데, 먹어보라”는 거였다. 우리로 치면 정(情)으로 가져온 것인데, 눈이 휘둥그레졌다. 맛이 깊었다. “충격적”이었다. 이후로는 한국 어디를 가든 그 지역 김치를 먹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발효로 맛이 변화하는 게 가장 좋았다.

2000년대 초 드라마 ‘겨울연가’로 일본에 첫 한류 붐이 일면서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한일교류회도 그때 시작했는데, 요리교류회까지 이어지면서 지금껏 10여년 넘게 요리연구가의 길을 걷게 됐다. 말하자면 인생이 바뀐 셈이다. 김치로 시작해, 드라마를 거쳐, 이제 그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한국 음식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음식을 통해 한·일교류를 돕고 싶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함께 앉아서 밥을 먹으면, 무조건 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30분 만남을 두고 간담회니, 약식회담이니 지난달만 해도 잔뜩 신경전을 벌이던 한·일 정상이 지난 6일 처음으로 전화했다. “관계 개선하자”는 말을 수없이 주고받아오다 북한이 쏘아 올린 미사일을 계기로 대화를 나눴다. 이유가 어찌 됐든, 발을 뗐으니 차라리 밥 한 끼 하며 허심탄회, 실타래를 풀어보는 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