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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공군기 12대 무력시위…한국 30대 맞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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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북한이 6일 오전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쏘고, 오후엔 새로운 형태의 ‘공중 위협’으로 도발 수위를 한층 끌어올렸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6일 오후 북한은 미그-29 등 전투기 8대와 1950년에 개발된 일류신-28 폭격기 4대를 고속으로 남하시켜 우리 군 당국이 그어놓은 특별감시선을 오후 2시쯤 넘은 뒤 되돌아가는 무력시위를 벌였다. 군은 북한 군용기들이 이날 황해북도 곡산 일대에서 서쪽의 황주 방향으로 비행하면서 특정 지역에서 1시간가량 공대지 사격훈련을 벌인 것으로 추정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특별감시선은 항공기의 속도를 고려해 군이 신속 대응을 위해 북한 지역에 임의로 설정한 선으로, 북한 항공기가 이를 넘으면 공군은 집중 감시태세에 들어가고 전투기 긴급 발진도 준비한다. 특별감시선은 우리 군이 전술 조처를 하는 전술조치선에서 북쪽으로 수십㎞ 떨어져 있다. 이날 북한 군용기는 전술조치선은 넘지 않았다.

합참은 이날 북한의 도발 억제를 위해 F-15K와 KF-16 등 공군 전투기 30여 대를 긴급 출격시켜 압도적인 전력으로 대응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군용기 편대를 동원해 도발한 것은 2012년 10월 22일 북한의 미그-29 전투기 4대가 전술조치선을 넘어 개성 상공까지 남하한 지 10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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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공군 전력을 활용한 도발은 굉장히 새로운 현상으로 전방위적인 긴장을 조성하려는 것”이라며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다양한 장소에서 발사한 데 이어 공군 전력까지 활용하면서 한·미·일의 대비를 어렵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공군 현대화에 실패한 북한이 절대적 열세에 있는 공군 전력까지 활용했다는 사실은 모든 자원을 다 끌어모아 대응하겠다는 의미”라며 “향후 도발 수위나 위협을 계속 높일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항공유가 부족하고 공군 전력이 열세인 북한으로선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미국의 전략자산에 대해서도 기꺼이 정면으로 승부를 겨루고 전면전을 각오하겠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한반도 안보 위기를 고조시키고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지난 4일 한·미 군 당국이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도발에 대응해 연합공격편대군 비행과 함께 정밀폭격 훈련을 한 것에 대한 대응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름 부족한 북한, 폭격기까지 동원…“총력 도발 의지 표현”

북한은 이날 오전 6시1분부터 22분 간격으로 SRBM 두 발을 평양 삼석구역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각각 발사했다고 합참이 밝혔다.

북한이 지난 4일 IRBM을 발사해 일본 열도를 넘긴 지 이틀 만이자 최근 12일 새 여섯 번째 무력시위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이 이날 쏜 미사일은 모두 이동식 발사대(TEL)에서 북동쪽으로 발사돼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바깥에 떨어졌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특히 북한은 이날 미사일 발사에 앞서 외무성 공보문을 내고 “미국이 조선반도 수역에 항공모함 타격집단을 다시 끌어들여 조선반도와 주변 지역의 정세 안정에 엄중한 위협을 조성하고 있는 데 대해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사일 발사가 미 해군의 핵 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의 동해 재전개를 겨냥한 무력시위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엄중한 위협으로 인식한다”며 “향후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면서 대응 수위를 더욱 높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레이건함이 포함된 항모강습단은 지난달 23일 부산 작전기지에 입항해 한·미 연합훈련에 이어 동해상에서 한·미·일 연합훈련을 마친 뒤 한국 해역을 떠났다가 지난 4일 북한의 IRBM 도발 직후 돌아와 6일 동해에서 미사일 방어훈련에 참여했다. 이 훈련은 이지스 전투체계를 갖춘 한·미·일의 구축함들이 시뮬레이션 형태로 북한 탄도미사일로 가정한 표적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탐지·추적해 요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북한이 쏜 두 미사일은 비행 특성이 서로 달랐다. 한·미 군 당국은 첫발의 비행거리를 약 350㎞, 고도는 약 80㎞, 최고 속도는 마하 5(음속의 5배)로 탐지했으며 두 번째 미사일은 약 60㎞ 고도로 약 800㎞를 날아갔으며 최고 속도는 마하 6이었다. 일부 전문가는 첫발을 초대형 방사포(방사포는 다연장 로켓의 북한식 표현) 또는 ‘북한판 에이태큼스’로 불리는 KN-24 지대지미사일로 추정했다. 군 당국은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도 SRBM으로 분류한다. 

하마다 야스카즈(浜田靖一) 일본 방위상은 이날 오전 회견에서 “두 번째 미사일은 변칙 궤도로 비행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사거리·고도 등 비행궤적 특성만으로 보면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으로 추정하지만, 극초음속 미사일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두 미사일 모두 변칙 비행하기 때문에 현재 한·미 함정들의 탄도미사일 요격 체계로 무력화하기가 어렵다. 특히 극초음속 미사일을 ‘항모 킬러’로 개발 중인 만큼 미 핵 항모를 겨냥한 시위용이란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지난달 25일부터 여섯 차례 발사한 탄도미사일 모두가 전술핵을 탑재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돼 우려가 깊어진다. 북한이 7차 핵실험까지 강행할 경우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강’ 국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할 수 있다.

일각에선 북한이 두 미사일을 섞어 쏜 의도와 관련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 확장억제 전략을 무력화하기 위한 의도란 풀이가 나온다. 서로 다른 성격의 미사일을 섞어 쏜 것을 두고는 지상의 군사시설과 해상의 함정을 동시다발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공격력을 과시한 것이란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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