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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식 대신 라면 먹겠다"…文정부 '1000원 아침밥'이 남긴 재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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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남택 건축사·푸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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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학식 인상 반대 시위를 하는 대학생. 오른쪽은 지난 4월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학식 사진과 글. 그래픽=김경진 기자

왼쪽은 학식 인상 반대 시위를 하는 대학생. 오른쪽은 지난 4월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학식 사진과 글. 그래픽=김경진 기자

대학 구내식당의 학식 가격 인상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음식에 대한 원성이 높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학생을 위한 서비스이니 학식은 무조건 싼 게 맞는 걸까. 얼마 전 한 대학 푸드코트에서 입점을 제의해 온 걸 계기로 사업 타당성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학식 가격을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통찰할 수 있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한 대학생이 SNS에 올린 사진과 글. 5000원짜리 학식이라고 설명했다. SNS 캡처

한 대학생이 SNS에 올린 사진과 글. 5000원짜리 학식이라고 설명했다. SNS 캡처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한때 학식이 3000원에도 못 미치는 시대가 있었다. 대략 2012년 이전이다. 전반적 물가가 지금보다 낮기도 했지만, 대학이 영양사를 고용하는 직영 형태라 이런 싼 가격이 가능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이 피고용인에 유리한 쪽으로 점점 까다롭게 바뀌면서 대학들이 직영 대신 외주를 택하기 시작했다. 트렌드를 좇는 학생들 입맛을 맞추기 어렵다는 판단도 물론 작용했을 것이다. 때마침 대기업 계열사들이 잇따라 식자재 유통에 뛰어들어 경쟁하던 때인데, 대기업의 막강한 유통 인프라와 경쟁 덕분에 가성비 높은 급식이 가능했다. 그렇게 2014년 즈음 4000원 학식 시대가 열렸다.

문제는 대기업이 들어와 탄탄한 인프라로 비용을 낮춘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계속 오르는 최저임금에 영업일 수는 연간 200~220일에 불과하니 우선 적정 수준의 고용유지가 어렵다. 또 비슷한 국밥도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운영하면 1만5000원은 받을 수 있는데 대학에서는 4500원에 팔아야 하니 재미도 없다. 게다가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 눈높이가 점점 높아져 매일 급식 메뉴를 바꿔도 '먹을 게 없고 질리는 음식'이라는 오명만 덮어쓴다. 기업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대기업 계열 급식업체들이 슬그머니 발을 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이를 대신한 게 2016년 5000원 학식 시대를 연 컨세션(다중 이용 시설의 식음료 공간을 식품전문업체가 임대·위탁해 운영하는 형태) 업체였다. 학교 문밖 프랜차이즈 매장들과 경쟁하겠다며 학내 공간을 통으로 임대받아 멋지게 인테리어를 한 후 컨세션 업체 MD들이 입점 브랜드를 골랐다. 컨세션 업체들은 학교 밖에서처럼 각 매장으로부터 보증금에 더해 매출 대비 일정 비율로 수수료를 받는 조건으로 여러 브랜드 식당을 입점시켰다. 이때부터 학식 운영자가 자영업자로 바뀌었다.

일부 학교는 프랜차이즈 본부 직영을 조건으로 입점 업체를 받기도 했지만 극히 일부였다. 입점한 대부분의 개인사업자는 프랜차이즈 본부에 로열티를 내는 건 물론이요. 인건비와 학교에 내는 임대료까지 감당해야 하니 학교 앞 다른 식당보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하나도 나을 게 없었다. 학식 메뉴를 싸게 운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지난달에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학생회관에 등장한 무인 간편식 판매 코너. 뉴스1

지난달에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학생회관에 등장한 무인 간편식 판매 코너. 뉴스1

그동안 학식이 학교 앞 식당 음식보다 쌌던 것에는 같은 메뉴를 대량으로 조리한다는 데 더해 임대료가 없다는 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컨세션 업체가 들어오면서 이 장점이 사라졌다. 길 건너 식당처럼 매출 대비 8~15%의 임대료는 피할 수 없는 원가가 됐다. 거기에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인건비가 크게 올랐고, 올해 들어선 싼 급식에 없어서는 안 될 수입산 식자재 가격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껑충 뛰면서 학생들에게 싸고 맛있는 밥을 먹일 방법이 사실상 없어졌다.

그렇다고 대학이 이를 보존해 줄 수도 없다. 전체 학생 수는 물론 코로나19를 계기로 대면 수업까지 축소돼 급식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뜩이나 재정이 풍족하지 않은 대학이 입점 업체들의 수수료를 내려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싼 학식은 먼 옛날 추억이 되어가는 거다.

일부에선 대안이 있다고 주장한다. 착한 척 돈 뿌리던 지난 문재인 정부가 2017년 시범 사업을 거쳐 2019년부터 본격 시행한 '1000원의 아침밥' 사업이다. 정부와 대학이 각각 1000원과 1500원을 부담하고, 학생은 1000원만 낸다. 운영자는 인당 2500원의 보조금을 받는 셈인데, 보조금엔 세금이 붙지 않으니 비교적 적은 돈으로 먹을 만한 급식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보조금 달린 급식은 결국 논란 많은 무료급식과 다를 바 없다. 정부가 세금으로 대학생들 밥 먹일 테니 대학 역시 부담하라는 논리인데, 그러잖아도 14년째 동결된 등록금 탓에 재정 악화로 쓰러지게 생긴 대학엔 매우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 사업은 올해 목표 인원이 1만명이고, 점차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결국 훌륭한 교수진 영입하고 실험 실습에 쓸 교부금을 대학이 그저 학생들 밥 먹이는 데 소진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 결과 인재에 투자하지 않는 부실한 대학에 나와 밥만 싸게 먹고 집에 돌아가면 뭐하나. 당장은 좋아 보여도 결국 학생들에게도 손해다. 게다가 대학 인근 상권의 사업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시장교란 행위이기도 하다. 경쟁을 이기지 못한 식당들이 모두 사라지면 결국 또 학생들만 선택권 박탈이라는 또 다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회원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학식 가격 인상 반대 및 '1000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 회원이 지난달 7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학식 가격 인상 반대 및 '1000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이쯤에서 다시 최저임금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나라가 나서서 올리지 않아도 전 세계적인 유동성 증가로 점차 오를 수밖에 없었을 텐데 억지로 올리는 바람에 부작용만 만들어 냈다. 학식 문제만 해도 그렇다. 출퇴근 필요 없이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학식 알바를 9000원쯤에 쓰면 비용을 낮춰 싼 급식을 제공할 수 있지만, 불법이라 시도도 할 수 없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을 몰아붙여 논란이 됐을 때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면 결국 짜장면도 1만원에 먹게 될 것"이라는 자영업자들의 경고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물개 박수만 치던 사람들이 인제 와서 "밥값 비싸다"며 피켓 들고 '1000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를 요구한다. 이런 소동을 거치며 사업자는 사업자대로 제값 못 받으며 온갖 눈치를 다 봐야 하니 아무도 학식 사업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포퓰리즘 정책이 대학과 학생, 사업자 모두에게 재앙만 남긴 꼴이다.

이렇게 학식 문제에는 사회 전반의 많은 문제가 투영돼 있다. 학생들에게 싼값의 건강한 학식을 먹이려면 대학 재정 건전화가 우선이다. 이런 근본적 처방 없이 '1000원' 어쩌고 하는 얄팍한 처방은 백 번 내놔도 도움이 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