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방어에 외환 곳간 털렸다… 한달 새 196억 달러 감소

중앙일보

입력 2022.10.06 06:00

업데이트 2022.10.06 18:24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한 달 사이에 196억6000만 달러(약 27조7200억원)가 줄었다. 감소 폭으로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가장 컸다. 위기 때 사용할 수 있는 나라의 달러 곳간이 비어가며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다만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 규모 등 대외건전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7억7000만 달러로 8월 말(4364억3000만 달러)보다 196억6000만 달러 감소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놓인 달러화의 모습.연합뉴스

한국은행에 따르면 9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7억7000만 달러로 8월 말(4364억3000만 달러)보다 196억6000만 달러 감소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 놓인 달러화의 모습.연합뉴스

6일 한은에 따르면 9월 말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4167억7000만 달러로 8월 말(4364억3000만 달러)보다 196억6000만 달러 감소했다. 감소 폭으로는 2008년 10월(274억2000만 달러) 이후 13년 11개월 만에 가장 컸다.

외환보유액은 올해 들어 2월(2억4000만 달러)과 7월(3억3000만 달러)을 제외하고는 매달 줄고 있다. 지난달까지 감소한 외환보유액은 463억5000만 달러(65조3500억원)에 달한다.

한은은 9월 외환보유액 감소 원인을 “외환시장 변동성 완화 조치와 기타통화 외화자산의 미 달러 환산액 감소, 금융기관 외화예수금 감소 등에 기인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년=100)가 9월에는 3.2% 오른 반면, 유로화(-2%)와 파운드화(-4.4%), 엔화(-3.9%) 등 다른 통화가치는 떨어졌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원화가치 방어를 위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내다 판 것도 외환보유액 감소의 요인이다. 외환 당국은 올해 2분기(4~6월) 원화가치 방어를 위해 시장에 154억900만 달러를 순매도했다. 2019년부터 분기별 외환시장 개입액을 공개한 뒤 가장 큰 규모다.

최근 원화가치가 달러당 1400원 아래로 밀리며 외환 당국의 개입 규모도 커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이날 한은 관계자는 외환 개입 규모 등에 대해 “쏠림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개입했다”고만 말했다.

외환보유액이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지만 한은은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외환보유액이 세계금융위기였던 2008년 말(2012억2000만 달러)의 두 배 수준인 데다, 민간이 가진 달러 자산도 충분해서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순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자산-대외금융부채)은 7441억 달러로, 2008년 말(-703억 달러)과 차이가 크다. 오금화 한은 국제국장은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도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동일한 신용 등급 국가보다 건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며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와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이 불러온 강달러 흐름 속 주요국 중앙은행도 자국 통화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보유한 달러를 내다 팔고 있다. 일본은행(BOJ)도 1달러당 140엔대로 추락한 엔화 가치 방어를 위해 지난달에만 2조8382억엔(28조2000억원)어치의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였다.

자국 통화가치 방어를 위한 실탄(달러) 조달을 위해 미 국채를 내다 파는 경우도 빈번해졌다. 미 재무부와 미 연방준비제도(Fed)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 세계 각국이 보유한 미 국채는 7조5012억 달러로 지난해 말(7조7476억 달러)보다 2464억 달러(3.2%) 줄었다. 중국(987억 달러)과 일본(697억 달러)이 가장 많았고, 한국도 189억 달러어치의 미 국채를 팔았다.

한국의 대외건전성에 문제가 없다지만 불안한 신호도 감지된다. 한국의 무역수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6개월 연속(4~9월)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 1~9월 누적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88억8000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커지는 무역수지 적자에 8월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가능성이 커졌다. 올해 2분기 말 기준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비율은 41.9%로 2012년 2분기(45.6%) 이후 가장 높아졌다. 단기외채비율은 대외지급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의 권고 수준을 밑돌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IMF 권고치(6455억5000만 달러)와 비교해 2000억 달러가량 부족하다.

오금화 국제국장은 “한국과 같은 규모의 국가의 경우 (IMF 권고치를) 적용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8월 “제가 IMF에서 왔다”며 “IMF의 어느 직원도 한국에 와서 외환보유액을 더 쌓으라고 얘기할 사람이 없다”며 “그런 기준은 작은 신흥국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유지를 위해 외환 당국이 시장 개입을 자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금융위기였던 2009년에도 외환보유액 2000억 달러 유지를 위해 개입을 자제해왔다. 다만 오금화 국제국장은 “외환보유액은 최근 같이 시장 변동성이 커질 때 활용하기 위해 비축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안동현 경제학 교수는 “한국의 상황을 볼 때 달러 유동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면서도 “대외순자산은 위기 상황에서 바로 쓸 수 있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고 통화스와프 가능성을 모색하는 등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일(1410.1원)보다 7.7원 오른(환율 하락)1402.4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원화값은 1416.5원에 거래를 시작한 후 오후 2시쯤 1397.5원까지 올랐다. 원화값이 장중 1300원대로 올라선 건 지난달 22일(1398원) 이후 9거래일 만이다. 원화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중국 위안화 값이 상승한데다, 영국 정부의 감세안 철회 등으로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은 게 원화값 상승의 요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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