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재개발 복마전
〈글 싣는 순서〉
1. 갈 길 바쁜 재건축·재개발 사업, 비리가 발목 잡았다
2. 비리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허위 사업비와 만능 키 OS
3. 반성 없는 사업, 조합원이 똑똑해야 부패가 사라진다
그동안 전국 각지의 재건축·재개발 사업에서 온갖 비리가 터져 나왔지만 제대로 된 반성문은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2016년에 서울 서대문구청이 가재울 4구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백서를 제작해 일반에 전부 공개하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가재울 4구역은 특정 철거업체가 개입해 각종 용역계약 비리 의혹이 불거지는 등 사업 내내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뉴스 너머: beyond news]
서대문구는 서울 관내 지자체 중 정비사업 관련 비리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2016년 국회 국감 때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5년 동안 재개발·재건축 사업 과정에서 34명의 구속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재울 3구역, 북아현 1-1·2·3구역, 홍제3구역 등이 있는 서대문구에서 조합 임원 14명이 구속됐다. 성동구가 7명로 그 뒤를 이었다. 구속된 총인원의 40% 이상이 서대문구 정비사업 관련자가 차지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서대문구는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켜 TF를 꾸리고 백서 제작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백서 초안만 만들어졌을 뿐 당초 책자 형태로 일반에 공개하겠다고 한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언론을 통해 논란이 일자 정보공개 청구를 한 일부에게만 파일 형태로 백서 초안을 공개한 것이 전부였다.
지난 7월 취임한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은 후보 시절부터 제대로 된 재건축·재개발 참회록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그는 당선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엇이 잘못되고 무엇이 고쳐야 할 점인지 저희가 전국 최초로 백서를 만들어서 발표할 예정이다"라며 "백서가 나오면 전국적으로 재개발 재건축 현장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이고, 무엇을 시급히 고쳐야 할지 알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당초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백서를 내겠다던 약속과 달리 백서 제작은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구청장 취임 직후인 지난 7월 초 대학교수, 국토교통부 고위 관료 출신 인사, 구의원, 변호사, 도시정비사업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백서 제작 TF의 활동은 현재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TF는 8월 초까지 한두 차례 회의를 연 것을 끝으로 활동하지 않고 있다.
정비사업 전문가로 이 TF에 참여했던 김상윤(저스티스파트너스 대표)씨는 "백서 제작을 위해 각종 용역 계약서 등 관련 자료를 구청 측이 보여줘야 할 텐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며 구청 공무원들이 협조적이지 않았다"면서 "실무진들은 백서를 제작을 반기지 않는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고 반박했다. 일부 공무원의 저항 때문에 백서 발간 TF가 활동을 멈췄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서대문구청 측은 “고문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비조합원에게 공개되지 않은 조합 자료를 백서로 모두 공개할 경우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조언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구청 관계자는 이어 "내부적으로 정비사업 백서 발간을 위한 2기 TF를 구성하고, 조합 운영 실태 조사 등을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내년 연말 백서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