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비 8억 아낀 복지아파트 비밀 [재건축·재개발 복마전 3-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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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재개발 복마전

서울‧경기와 6대 광역시에서 추진 중인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은 1625곳이다. 서울이 592곳으로 가장 많고, 경기도는 370곳이다. 광역시 중에는 대구가 244곳으로 가장 많다. 다음은 부산(205곳), 대전(83곳), 인천(74곳), 광주(40곳), 울산(17곳) 순이다.

[뉴스 너머: beyond news]

전국적으로 재건축‧재개발이 진행 중이지만 분쟁‧소송이 없는 곳을 찾기는 힘들다. 오죽하면 ‘조합 있는 곳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합원 간 내부 갈등이 심각한 것이 대한민국 도시정비사업의 현실이다.

중앙일보는 수십 년 째 반복되고 있는 도시정비사업의 복마전을 추적했다. 조합장과 임원들을 둘러싼 각종 비위와 갈등·의혹의 현장, 허위 내지는 부풀려진 용역 사업비의 실태를 면밀히 들여다봤다. 또 비리가 반복되는데도 왜 근절되지 않는지도 살펴봤다.

〈글 싣는 순서〉
1. 갈 길 바쁜 재건축·재개발 사업, 비리가 발목 잡았다
2. 비리는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허위 사업비와 만능 키 OS
3. 반성 없는 사업, 조합원이 똑똑해야 부패가 사라진다

조직적으로 동원되는 외부인력인 OS(outsourcing)의 사용을 금지하고, 불필요한 용역비를 절감하는 등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찾기 힘든 ‘모범 조합’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에 위치한 ‘복지아파트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복지아파트조합)’과 울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B04주택재개발사업조합(B04조합)’이 대표적이다.

불합리한 계약, 용역비 바로잡다

총 277명 조합원으로 이뤄진 복지아파트조합은 ‘작지만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합리한 시공사와의 계약조건, 부풀려진 용역비 산정 등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 조합의 마정락(56) 조합장은 조합을 바로잡기 위해 집행부 변경을 추진했고, 조합장으로 당선되자마자 불필요한 용역비용을 절감하는 일에 착수했다.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상 시공사가 담당해야 하는 지장물 철거 용역, 석면 조사 용역의 추가 업체 선정을 취소해 4억원을 줄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간업체가 순찰을 명목으로 고액의 용역비를 가져가는 범죄예방용역도 차단, 파출소에서 관리하는 형식으로 1억1000만원을 아꼈다. 대신 노후화된 CCTV를 교체·증설하는 비용 등 4000만원만 남겨놨다. 이주관리 및 촉진, 석면 감리 용역 등에서도 비용을 절감했다.

OS 없애고, 정관으로 못 박아

울산B04조합은 시공사 등이 동원하는 OS 홍보 인력의 사용을 정관으로 금지했다. 울산B04조합 제공

울산B04조합은 시공사 등이 동원하는 OS 홍보 인력의 사용을 정관으로 금지했다. 울산B04조합 제공

시공사 등이 동원하는 OS 홍보 인력의 사용을 아예 정관으로 금지한 곳도 있다. 울산B04조합은 ‘총회 홍보를 빙자해 조합원의 집을 방문해 (타인이) 의결권을 징구하는 경우, 해당 의결권은 무효’하기로 조합 정관을 개정했다. 사실상 OS 인력의 사용을 막은 셈이다. 복지아파트조합도 OS의 사용을 금지하도록 정관을 바꿨다. 마정락 조합장은 “OS가 있을 때 조합원들은 구체적 내용은 알지도 못한 채 그들이 권하는 대로 결정을 내렸다. 불필요한 용역계약이나 부풀린 사업비가 발생하는 이유”라고 짚었다.

OS 없애도, 참석률 높아 

복지아파트조합과 B04조합은 OS를 없앴지만 조합원의 총회 참석률은 오히려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OS 요원 한 명당 들어가야 하는 일당 15만~17만원을 줄인 것 또한 수확이다. B04조합의 지수형 조합장(52)은 “‘홍보 인력을 안 쓰면 사업이 안 된다’는 우려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관심이 없어서 총회가 열리지 못하면 사업을 접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OS의 사용을 막고, 이들 조합은 일이 더 많아지고 바빠졌다고 했다. 홍보 인력이 집집마다 방문하며 조합의 안건을 설명했던 업무를 이젠 조합 집행부가 직접 담당하게 됐기 때문이다. 두 조합장은 네이버 밴드 등 SNS와 소식지를 통해 주요 안건을 수시로 공유하고, 하루종일 조합원 상담에 시간을 쏟는다. 조합장과 집행부가 재개발·재건축 관련 법규 등 구체적 내용을 꿰뚫고 있어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지난 6월 26일 진행된 복지아파트조합의 총회 모습. OS요원의 사용 없이도 조합원들이 총회 현장을 가득 채웠다. 마정락 조합장 제공

지난 6월 26일 진행된 복지아파트조합의 총회 모습. OS요원의 사용 없이도 조합원들이 총회 현장을 가득 채웠다. 마정락 조합장 제공

두 조합의 조합장도 처음부터 정비사업 전반의 내용을 세세히 알지는 못했다. 이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문가가 됐다. 마 조합장은 “나도 처음에는 재개발, 재건축 관련해 잘 몰랐다. 그래서 정비사업과 관련해 팁을 줄 수 있는 전문가라면 누구든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고 했다. 마 조합장은 모 변호사의 재개발·재건축 동영상 강의를 수강하기도 했다. 5~6분짜리 영상 50개가 한 세트인데, 이 강의를 들으면 수료증이 나온다. 복지아파트조합의 이사 전원도 해당 수료증을 받았다.

지수형 조합장도 발품을 팔았다. 지 조합장은 “시중에 나온 책은 거의 다 사 봤다. 책값만 100만원 어치가 넘는다”며 “조합 사무실에 있는 2100페이지가 넘는 자료도 다 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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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의 무관심…더 아팠다"

조합의 문제를 고치고자 나선 이들의 결말이 모두 ‘해피엔딩’은 아니다. 조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조합 집행부와 대립하는 조합원들은 무관심한 조합원의 냉대에 상처를 입거나, 조합 측의 고소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경기 고양시에 위치한 재개발 조합의 조합원 김지선(가명·여)씨는 조합이 체결한 용역 계약의 문제점을 알렸지만 오히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김씨는 “하루에 20~30통씩 조합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다 보면 ‘현타’가 온다. 어떤 분들은 제 말은 듣지도 않고 욕부터 한다”며 “같이 문제를 제기한 조합원 일부는 조합으로부터 고소 협박도 받았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 재개발 조합의 일원인 성미정(가명·여)씨도 “무관심한 조합원들의 질타가 더 아프다”고 털어놨다. 성씨는 “조합의 문제를 지적해서 내가 금전적으로 이득을 보는 게 뭐가 있겠나. 일부에서는 브로커를 끼고 들어와 한탕 해 먹으려는 사람으로 나를 몰아붙였다”고 말했다.

마정락, 지수형 조합장은 “조합원의 무지와 무관심이 결국 부패를 가져온다”며 “조합원 스스로 사업 추진 과정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똑똑한 조합원이 많아야 외부 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사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시행착오에서 얻은 이들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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