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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포항 이재민들의 상처를 키울 건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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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배영호 위덕대 IT융합학과 교수

배영호 위덕대 IT융합학과 교수

오늘 6일이면 제11호 태풍 힌남노가 경북 포항 일대를 할퀴고 지나간 지 꼭 한 달이다. 역대급 태풍이라는 예보에 따라 나름 대비를 했지만 힌남노는 귀한 생명을 많이 앗아가고 소중한 삶의 터전을 폐허로 만들었다. 국가 기간산업의 중추인 포스코 포항제철소가 가동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피해 규모가 막대한 만큼 전국적인 관심사가 됐고 한 달이 지났는데도 주요 뉴스로 다뤄지고 있다. 그런데 태풍 피해에 대한 엇갈린 원인 분석이 혼란스럽고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재난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예고된 태풍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인재라고 비판한다. 매체마다 피해 원인을 한쪽으로 특정해 주장하고, 이런 주장은 인터넷에서 확대재생산 하면서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한다.

태풍이 할퀸 포항 힘들게 복구 중
정치인·평론가 감정적 대응 많아
피해 원인부터 정밀히 밝혀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재난의 원인에는 불가항력적인 자연 요소도 있을 것이며, 철저하지 못한 대비와 적절하지 못한 대응 같은 위기관리 부실이라는 인적 요소도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에 따라 앞으로 더 잦아질 대형 자연재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철저한 원인 분석과 정확한 진단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런 분석과 진단에 근거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책임 회피를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거나 근본적인 원인 분석에 소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규모 피해에 따른 희생양을 찾기 위해 정략적으로 접근하거나 감정적으로 상황을 대하는 것도 금물이다.

이번 태풍에 따른 홍수 피해는 넓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힌남노가 덮칠 당시 500㎜가 넘게 쏟아진 호우로 포항 곳곳이 물에 잠겼다. 특히 시내 남쪽에는 3시간 동안 300㎜에 가까운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피해가 가중됐다. 특히 냉천(冷川)이 범람하면서 오천(烏川)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인명 피해가 컸고, 포항제철소 가동이 중단됐다.

논란이 되는 냉천 범람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요인을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상류 지역은 산과 계곡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유속이 빠른 계곡물이 일시에 집중된다. 농업용수용 댐(오어지)이 있지만 수위 조절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017년 항사댐을 추진했으나 지금까지 건설의 타당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류의 오천·인덕 지역은 강폭이 비교적 넓어 둔치에 산책로와 운동 시설이 조성돼 있다. 냉천 공원화 사업은 강물의 흐름을 방해해 범람 원인이 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냉천은 시설물이 설치된 지역을 지나면 강폭이 다시 좁아지면서 포항제철소 옆을 지나 바다로 들어간다. 강우가 집중된 시간에 만조가 겹쳤으며 바닷물 역류로 강물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범람했다는 분석도 있다.

태풍 힌남노 피해 관련 보도에서 아쉬운 점은 수리·토목·전기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분석과 진단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여러 요인이 겹치는 자연재난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과정에 전문가 집단이 현장의 정확한 상황에 근거해 과학적 분석과 진단을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평론가와 정치인이 아닌 관련 기술 분야에 오래 종사해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식견과 데이터에 기반을 둔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잡한 문제에 대한 비전문가의 신중하지 못한 원인 분석은 자칫 오해와 왜곡을 야기하고 심하게는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이는 가뜩이나 고통받는 태풍 피해 지역 주민과 포항제철소 종사자에게 더 깊은 상처를 준다.

피해가 집중된 포항 시내 남쪽에는 지금도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당장 끼니 해결이 어려운 주민도 많으며, 편히 쉬고 잘 곳을 잃은 이재민이 많다. 연일 흙먼지 속에서 공무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돕고 있지만 피해 규모가 워낙 방대해 부족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포항제철소를 비롯한 피해 산업체에서도 조속한 복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힌남노가 지나간 포항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따뜻한 격려와 실질적인 지원이다. 피해 원인의 진단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복구에 힘쓰는 현장에 격려와 응원,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보내주시기를 호소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배영호 위덕대 IT융합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