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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던 레이건함, 북 도발에 동해 유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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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CVN 76)이 5일 다시 동해 공해상으로 돌아왔다. 한·미 연합해상훈련과 한·미·일 대잠수함전 훈련을 마치고 떠난 지 5일 만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통화하고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발사를 강력히 규탄했다.

레이건함의 훈련 후 한반도 회항과 북한의 도발과 관련해 지난해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의 주변국 정상과의 통화는 이례적이다. 지난 4일 북한이 일본 열도를 넘겨 태평양으로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하는 등 전략적으로 도발 수위를 높이는 것에 대응한 움직임이다. ‘화성-12형’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IRBM은 미국의 전략기지인 괌(약 3500㎞) 사정권을 훌쩍 넘긴 약 4500㎞를 비행했다. 지금까지 북한이 쏜 미사일 중 가장 멀리 날아간 미사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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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레이건함 등 미 해군 항모강습단은 동해 공해상을 향해 이동 중이다. 군 관계자는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시의 적절하고 조율된 방식으로 전개하는 데 합의했다”며 “추가 도발에 대비해 북한이 미사일을 쏜 당일 한·미 국방부 장관이 전화로 협의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미 합참의장도 이날 전화 통화를 했다. 합참에 따르면 김승겸 합참의장은 “북한이 도발을 거듭할수록 동맹의 대응태세는 더욱 강력해진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 A 밀리 의장은 “한반도 방위를 위한 미국의 공약은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하다”며 “향후에도 한·미가 긴밀하게 조율된 공동 대응을 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일은 6일 동해 공해상에서 다시 연합훈련을 할 예정이다. 3국이 2주 연속 동해에서 연합훈련을 벌이는 것은 처음으로, 이번엔 미사일 경보훈련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사일 경보훈련은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를 가정한 가상의 표적 정보를 이지스 구축함들이 공유하면서 탐지·추적하는 훈련이다. 한·미·일은 지난 8월 환태평양훈련(RIMPAC)을 계기로 이 같은 훈련을 갖고 공개한 바 있다.

군 소식통은 “위성을 통한 데이터링크 체계로 정보를 공유하는 훈련”이라며 “일본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이 동해로 오지 않고 훈련에 참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레이건함의 회항은 올해 말까지 예상되는 북한의 추가 도발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기시다 “안전보장 분야, 한국과 긴밀하게 소통하고 싶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 미사일의 사거리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미사일 관련 (발사) 플랫폼이 계속 바뀌고 있어 다른 미사일 도발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을 정도로 빈번해지고 있다”며 “제7차 핵실험으로의 가능성을 높여가기 위한 단계별 시나리오를 밟아가는 게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2017년 북한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고각’(미사일 발사 각도를 정상 각도보다 높여 사거리를 줄임)으로 시험발사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엔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정상 각도의 실거리 시험발사를 하고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 소식통은 “미국 공군은 주기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를 탄두 없이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발사해 약 4200마일(약 6760㎞) 떨어진 태평양 마셜군도의 콰절린 환초 인근 해상에 떨어뜨리는 훈련을 한다”며 “북한이 처음으로 IRBM을 실거리 발사하는 것을 봤을 때 이를 따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일 정상은 이날 전화 통화를 했다. 미 백악관은 이날 발표문을 통해 “양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시험을 가장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했다”며 “(미사일) 발사는 일본 국민에게 위험이고, 역내를 불안정하게 하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명백한 위반이라고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양 정상은 즉각적이며 장기적인 대응을 양자, 한국과 함께 3자, 그리고 국제사회와 함께 지속해서 긴밀히 조율할 것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간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직접 반응하는 것을 자제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중대 도발이 없었던데다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하는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일이 대응하지 않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북한이 5년 만에 일본 상공을 지나는 IRBM을 발사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나서게 됐다. 북한이 미국 동부 시간으로 지난 3일 저녁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뒤 바로 다음 날 아침 미·일 정상 통화가 이뤄진 건 그만큼 백악관이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과는 통화하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실은 6일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와 통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본 언론도 기시다 총리가 6일 오후 통화에서 북한의 발사를 비난하고 한·일 양국이 협력해 대응한다는 방침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기시다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 후 관련 질문에 “안전보장 분야는 국민의 생명과 일상생활과 관련된 부분인 만큼 한국과 긴밀한 의사소통을 도모해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에서는 한·미 북핵 차석대표 협의도 열렸다. 외교부는 이태우 북핵외교기획단장이 방한 중인 정 박 미국 대북특별부대표와 만나 “북한의 불법 사이버 활동에 대응하기 위한 한·미 간 공조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선 북한이 향후 태평양을 향해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을 쏘거나 7차 핵실험 등 중대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한·미가 북한의 새로운 ‘돈줄’로 떠오른 사이버 해킹 범죄와 암호화폐 탈취 등을 겨냥한 ‘맞춤형’ 제재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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