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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있던 해변, 땅값 25배 뛰었다…강릉 커피 1호점 20년

중앙일보

입력

강릉 커피 기행 ③ ‘커피커퍼’ 최금정 대표

강릉은 커피다. ‘다방 커피’ ‘자판기 커피’ 식의 인스턴트커피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네 입맛을 쓰고 진한 아메리카노로 바꿔 놓은 주인공은 스타벅스지만, 핸드드립(브루잉 커피) 문화를 전국으로 퍼트린 건 강원도 강릉이다. 강릉에는 2000년대 들어 직접 원두를 볶고 내리는 로스터리 카페가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고, 대략 20년 만에 450곳 이상의 카페를 거느린 한국 커피의 중심지가 됐다. 작은 항구에 불과했던 안목항(강릉항)은 이제 전국구 커피 거리로 통하고, 2009년 시작한 강릉커피축제는 해마다 20만 명 이상이 즐기는 대형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제14회 강릉커피축제(10월 7~10일) 개막에 앞서, 모두 4회에 걸쳐 강릉의 커피 문화를 이끈 명인과 개성 있는 카페를 차례로 소개한다. 세 번째 순서는 강릉커피거리 1호 카페 ‘커피커퍼’의 대표이자, 강릉커피축제 위원장인 최금정 대표다.

강릉 커피 기행

지난달 29일 오전 강릉 경포대 '커피커퍼' 본점에서 최금정 대표를 만났다. 2001년 안목 해변에 처음으로 카페를 낸 주인공이다.

지난달 29일 오전 강릉 경포대 '커피커퍼' 본점에서 최금정 대표를 만났다. 2001년 안목 해변에 처음으로 카페를 낸 주인공이다.

커피 도시 강릉에서도 함부로 손대지 못하는 일이 커피 농사와 커피 박물관이다. 한국은 기후가 맞지 않고, 커피 역사도 짧아 보통의 노력과 투자 없이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 강릉에 처음으로 커피 농장과 커피 박물관을 뿌리내린 주인공이자, 강릉커피거리(안목 해변)에 제1호 커피 전문점을 낸 이가 ‘커피커퍼’의 최금정(54) 대표다. 강릉에 로스팅 커피를 소개한 건 ‘보헤미안’의 박이추(74) 선생이지만, 강릉에서 커피를 통한 문화를 가꾼 건 최 대표의 공이 지대하다.

지금은 카페 수백 곳이 밤에도 환히 불을 밝히는 명소가 됐지만,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안목항(강릉항) 일대는 횟집만 즐비한 평범한 어촌이었다. 고즈넉한 바닷가 분위기 덕분에 청춘들이 자주 드나들긴 했어도 변변한 카페 하나가 없었다. 그 시절에는 해변에 늘어선 커피 자판기가 카페 역할을 대신했다. 2001년 최 대표가 3층짜리 전망 카페를 내면서 항구 분위기가 달라졌다.

“당시만 해도 바다를 향해 통창을 내는 건축이 흔치 않아서 다들 신기하게 바라봤어요. 옆으로는 쓰러져가는 단층 상가뿐이었고요. ‘커피커퍼’를 내고 1년이 지나니까 카페가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강릉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 해변의 풍경. 중앙의 3층 건물이 '커피커퍼'다.

강릉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 해변의 풍경. 중앙의 3층 건물이 '커피커퍼'다.

커피잔 모양의 조형물 옆에서 커피를 즐기는 두 청춘. 안목 해변 곳곳에 커피 조형물이 놓여 있다.

커피잔 모양의 조형물 옆에서 커피를 즐기는 두 청춘. 안목 해변 곳곳에 커피 조형물이 놓여 있다.

안목 해변의 세대교체는 순식간이었다. 비린내 나는 횟집촌이 커피 향 감도는 카페거리로 바뀌는 데 불과 3년이 걸리지 않았다. 거리는 점점 젊어졌다. 2000년대 중반 이후엔 안목 해변 바로 옆의 강문 해변과 골목 안으로도 카페가 퍼졌다. 그야말로 상전벽해였다. 해변의 목 좋은 자리는 2000년대 초만 해도 평당(3.3㎡) 땅값이 200만~300만원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40대가량 줄지어 있던 자판기도 이제는 3대밖에 남지 않았다.

‘커피커퍼’가 커피 농원과 커피 박물관을 병행한 건 2008년 무렵이다. 강릉 커피거리의 생존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때다. 카페들이 인테리어부터 메뉴‧가격까지 서로 비슷비슷하게 따라 했고, 출혈 경쟁이 불가피했다. 최 대표는 “커피는 어차피 하루 한두 잔밖에 못 마신다”며 “커피 대신 문화를 팔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강릉 경포대에 있는 커피커퍼 박물관. 1층은 로스터리 카페로, 2~4층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강릉 경포대에 있는 커피커퍼 박물관. 1층은 로스터리 카페로, 2~4층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커피커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커피 나무. 묘목도 살 수 있다.

커피커퍼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커피 나무. 묘목도 살 수 있다.

그 이후 대관령 아래 왕산면에 지었던 최 대표의 별장은 커피 농원과 커피 박물관이 됐다. 커피나무는 제주 여미지 식물원에서 50여 그루를 들여와 심었고, 커피 유물은 공동 대표이자 수집가인 남편이 도맡아 끌어모았다. 커피나무와 열매를 구경하고, 직접 커피를 볶고 내려 본 다음, 커피 박물관을 돌아보는 식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꾸리자, 전국에서 관광객이 찾아왔다. 커피 애호가도 커피나무 구경이 쉽지 않은 시절이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단체 관광객이 몰려왔다.

커피박물관장, 강릉커피축제 위원장, 작가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 최금정 대표. 직접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을 때 가장 행복하단다.

커피박물관장, 강릉커피축제 위원장, 작가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 최금정 대표. 직접 커피를 내리고 손님을 맞을 때 가장 행복하단다.

‘커피커퍼’는 현재 안목 해변에 두 곳, 경포대에 한 곳의 매장을 두고 있다. 2016년에는 중국 윈난성에도 커피 박물관을 세웠다. 규모로는 박물관을 겸하는 경포대 본점이 가장 크다. 1층은 로스터리 카페로, 2~4층은 박물관으로, 5층은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왕산면의 커피 농장과 커피 박물관이 코로나 확산 여파로 문을 닫으면서, 유물 대부분이 이곳으로 옮겨 왔다. 400년 된 커피 추출 도구를 비롯해, 18세기 커피 골동품 등 전시물 7000여 점이 펼쳐져 있다. 커피 묘목도 살 수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입장료(8000원)도 없앴다.

최 대표가 요즘 가장 매달려 있는 일은 ‘강릉 커피축제’다. 이태 전 축제 위원장으로 위촉되며 책임감이 막중해졌단다. 강릉 커피축제는 성공한 지역 축제로 자주 언급되는 모범 사례다. 행정 차원이 아니라 강릉에 자리 잡은 카페와 커피 애호가가 문화를 만들고 축제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2009년 강릉 지역 20개 로스터리 카페로 시작한 축제가 이제는 전국 500개 카페가 참여하는 축제로 커졌어요. 메인 축제장은 강릉 아레나지만 강릉 곳곳으로 스탬프를 찍고 다니며 커피 문화를 즐기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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