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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방어 선봉장 변신한 권성동..."윤심 얻을진 미지수" 왜

중앙일보

입력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충남 천안시 동남구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22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오후 충남 천안시 동남구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2022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권성동 원내대표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의 페이스북 계정은 요새 불을 뿜고 있다. 4일 하루만 해도 의원실이 자체 생성한 카드 뉴스와 함께 네 개의 글이 올라왔다. 그런 그의 페이스북에서 주목할 점은 예비 당권 주자로 꼽히는 그가 본인 홍보만큼이나 윤석열 대통령 ‘엄호’에 적극적이란 점이다.

권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은 외교적 마조히즘”이라며 “문재인 정부 때 작성된 ‘2032 서울-평양 올림픽 및 페럴림픽 유치제안서’가 문제가 되고 있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다. ”문 정부가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을 위해 28조8000억원을 책정했다”는 같은 당 배현진 의원실 자료를 인용해 “도대체 국제사회의 신뢰를 저버리면서까지 북한을 몰래 지원하려는 저의가 무엇이냐”고 전(前) 정권을 공격하는 내용이었다. 정치권에선 좀처럼 쓰지 않는 ‘마조히즘’(정신적·육체적 학대로부터 성적 쾌감을 느끼는 변태 성욕) 단어까지 동원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을 놓고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대치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를 도운 것이다.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대출 문화방송 편파방송조작 진상규명위원장, 박성중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 보도와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대출 문화방송 편파방송조작 진상규명위원장, 박성중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2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문화방송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 해외 순방 보도와 관련해 항의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뿐이 아니다. 권 의원은 최근 “구강 참사”(지난 2일), “자해공갈”(지난달 22일) 등 수위 높은 표현을 써가며 더불어민주당 진영에 대한 공격 선봉을 자처한다. 야당이 윤 대통령을 세게 때릴수록, 권 의원이 이에 맞서 원색적 발언을 쏟아내는 식이다.

단순히 말 폭탄을 던지는 역할만 하는 건 아니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비속어 논란’이 벌어져 국민의힘이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을 때 일종의 ‘프레임 짜기’에 나선 것도 권 의원이었다.

그는 지난달 23일 “외교 참사란 무엇이냐? 북한에 저자세로 굴종하면서도 ‘삶은 소대가리’, ‘저능아’ 소리를 들었던 것이 진짜 참사 아니냐”고 페이스북에 썼다. 수세적 방식 대신 강공책으로 이번 국면을 돌파하는 방식을 여권에 알린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출근길 도어스테핑(즉석 문답)에서 비속어 논란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보도로 동맹을 훼손하는 건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는 입장을 내자마자 “이번 사건은 MBC 자막 조작 사건”이라고 사건 성격을 새로 규정한 사람 역시 권 의원이었다. 그는 당시 “이것은 ‘대국민 보이스 피싱’이다. MBC가 미끼를 만들고 민주당이 낚시를 한 것”이라는 말을 써서 많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을 비롯한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이 29일 서울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면담을 마치고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측은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안 관련해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김경록 기자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을 비롯한 4선 이상 중진의원들이 29일 서울 국회에서 김진표 국회의장과 면담을 마치고 의장실을 나서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측은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안 관련해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김경록 기자

이런 권 의원의 행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차기 전당대회 출마를 노린 포석”(전직 의원)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한때 ‘브라더’로 불렸던 장제원 의원과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투톱으로 활동했던 권 의원은 비상대책위원회 전환 과정에서 책임론에 등 떠밀려 임기를 7개월 남기고 사퇴해야만 했다. 그러나 “당내 기반이 단단하지 않은 윤 대통령을 위해 대신 총대를 메는 역할을 통해 여권 핵심 지지층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당내 일각에선 이런 권 의원을 놓고 “여러 실수가 있었지만 대통령 입장에서야 권 의원이 미울 수만은 없을 것”(중진 의원)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권 의원의 측근은 “원내대표를 내려놓은 뒤 메시지 수위를 조금 높였다”며 “그간 하고 싶던 말들을 이전보다 직설적으로 한다”고 전했다. 거대 야당이라는 파트너가 있는 원내 사령탑이 아닌 만큼 사퇴 이후 이른바 ‘대야 스피커’ 역할에 부담 없이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스피커 볼륨이 높아진 동시에 타격 정밀도 높아진 배경에는 보수 논객으로 활동하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주목을 끌었던 나연준(41) 보좌관의 역할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나 보좌관은 대선 직후 권 의원실에 합류, 메시지를 담당하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국회에서 원내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8일 국회에서 원내대표직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물론 아직 오리무중인 국민의힘 차기 당권 구도에서 권 의원이 ‘윤심(尹心)’을 얻을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중론이다. 권 의원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 수용(4월 25일),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7월 15일), 윤 대통령과의 ‘내부 총질’ 텔레그램 메시지 노출(7월 26일) 등으로 원내대표 임기 내내 각종 논란에 시달렸다. 지난달 29일 국민의힘 윤리위원회가 “(8월 25~26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당시 음주 및 노래하는 모습이 외부에 공개됐다”는 이유로 권 의원에 대한 징계 개시를 만장일치로 결정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권 의원의 이런 행보가 차기 당권 구도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내에서조차 윤 대통령을 향한 ‘충성 경쟁’에 대해 부정적 시선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김기현 의원은 4일 감사원의 서해 피살 공무원 관련 조사 요청을 거부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문 전 대통령과 그 가신들은 여전히 착각 속에 빠져 ‘제왕 놀음’에 빠져 있으니 그저 한심할 따름”이라는 페이스북 글을 올렸다.

권 의원도 이날 “문재인 대통령님, ‘감히 무례하다’ 하셨습니까”라며 “목함지뢰로 다리 잘린 군인에게 짜장면먹고싶냐 물었던 것이 바로 무례”라고 문 전 대통령을 직격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차기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중도층 유권자를 잡는 것인데, 무조건 강한 표현을 써가며 야당 공격을 하는 게 과연 당권 경쟁에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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