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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쇠사슬로 묶어두는 예능? ‘연애 리얼리티’ 아슬아슬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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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쿠팡플레이 ‘체인 리액션’은 8명의 남녀가 이성과 둘씩 짝을 지어 손을 연결한 채 생활하는 콘셉트의 연애 예능이다. [사진 쿠팡플레이]

쿠팡플레이 ‘체인 리액션’은 8명의 남녀가 이성과 둘씩 짝을 지어 손을 연결한 채 생활하는 콘셉트의 연애 예능이다. [사진 쿠팡플레이]

‘자보고 만남 추구/낯선 이와 보내는 뜨거운 하룻밤/진짜 MZ들의 사랑법’. 국내 대형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웨이브가 14일 공개하는 연애 리얼리티 예능 ‘잠만 자는 사이’ 예고편 속 문구다. 영상에는 남녀가 야심한 시간에 함께 수영장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 한 침대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등이 담겼다.

그간 다른 연애 예능이 보여주지 않았던 시간대인 ‘오후 6시~오전 6시’의 데이트를 집중적으로 담아내 “MZ세대의 진짜 사랑법을 보여준다”는 게 웨이브가 밝힌 프로그램 콘셉트다. 기성세대보다 개방적인 젊은 층의 연애 성향을 담아낸다는 취지이지만, “자극적 소재로 주목받으려는 단순한 발상” “하다 하다 별 연애 프로그램이 다 생긴다” 등 불쾌감을 표하는 시청자 댓글이 줄을 이었다.

지난해부터 우후죽순 제작된 연애 리얼리티 예능이 변주를 거듭하면서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연애 예능이 이목을 끄는 방송계 트렌드이지만, 진정성이 결여된 채 말초적 자극만 추구하려는 설정은 해로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0년대 초 인기를 끈 ‘짝’(SBS), 2017년 ‘하트시그널’(채널A) 등 화제작이 탄생할 때마다 불었던 연애 예능 열풍은 지난해 ‘환승연애’(티빙), ‘나는 솔로’(ENA PLAY, SBS Plus), ‘솔로지옥’(넷플릭스) 등의 흥행으로 다시 불붙었다.

웨이브 연애 리얼리티 예능 ‘잠만 자는 사이’는 자극적인 설정과 문구로 공개 전부터 SNS상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 웨이브]

웨이브 연애 리얼리티 예능 ‘잠만 자는 사이’는 자극적인 설정과 문구로 공개 전부터 SNS상에서 화제가 됐다. [사진 웨이브]

TV 채널과 OTT마다 연애 예능을 쏟아내면서 올해 하반기 공개된 ‘짝짓기’ 형태의 리얼리티만 따져도 ‘돌싱글즈3’(MBN·ENA), ‘다시, 첫 사랑’(MBC에브리원), ‘체인지 데이즈2’(카카오TV), ‘러브 마피아2’(MBC드라마넷), ‘나대지마 심장아’(채널S), ‘이별도 리콜이 되나요?’(KBS2), ‘남의 연애’(웨이브), ‘비밀남녀’(KBS조이), ‘환승연애2’(티빙), ‘연애는 직진’(SBS), ‘각자의 본능대로’(tvN), ‘러브in’(JTBC), ‘핑크 라이’(디즈니+) 등 20여편이다. 연내 공개 예정인 예능도 ‘좋아하면 울리는’(카카오TV), ‘솔로지옥2’(넷플릭스), ‘사내연애’(쿠팡플레이) 등이 있다.

방송계의 특정 소재 쏠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시청자의 관심과 시대 흐름에 따라 먹방·육아·스포츠 등의 소재에 예능이 집중했다. 연애 리얼리티 예능 역시 사회 구조적 이유로 연애가 힘든 세대에게 대리만족과 관계 탐구의 장을 선사한다는 점이 인기 요인이다.

‘환승연애’ 시리즈를 제작한 이진주 PD는 최근 인터뷰에서 연애 예능의 범람에 대해 “딥(deep)한 리얼리티의 흥행이라고 본다”며 “연예인이 아닌, 나 혹은 내 친구를 대입해 사람들의 다양한 심리를 깊이 있게 관찰할 수 있는 리얼리티에 대한 시청자 욕구가 강해졌고, (방송계가) 그에 응하는 현상 아닐까 싶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비슷한 연애 예능의 홍수이다 보니, 시청자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설정을 가미한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휴양지를 배경으로 노출 및 스킨십, 남녀 침대혼숙 등을 셀링 포인트로 내건 ‘에덴’(iHQ), ‘썸핑’(웨이브) 등은 그나마 ‘저자극’ 프로그램이다. 커플이 솔로인 척하며 다른 상대와 맺어지면 상금을 얻는 설정(‘러브 마피아’)부터 남녀가 체인으로 손을 묶고 생활하는 설정(‘체인리액션’)까지, 점점 과감한 포맷이 시도된다.

이런 과열 양상에 대해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애 예능 중에도 동성애나 이혼 남녀의 사랑 등 우리 사회가 그간 터부시해온 관계나 선입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포맷도 있다”며 “시대를 읽고 새로운 시각을 전달하려는 예능과, 연애를 그저 선정적인 구도로만 소비하려는 얄팍한 기획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혼, 비연애가 만연한 사회에서 연애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프로그램의 수요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정적인 리얼리티의 출현은 콘텐트 플랫폼의 다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자극 수위를 높인 매칭 프로그램은 대부분 신생 채널이나 OTT에서 제작한다”며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소수 매니어층이라도 잡을 수 있는 기획이기 때문에 계속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 평론가는 “제작자도 연애 예능으로 엄청난 시청자 반응을 기대하지 않는다”며 “보편적 시청자를 고려해야 했던 지상파와 달리 OTT나 케이블은 ‘싫으면 안 보면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시청자 비판도 유효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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