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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캅’ 尹, ‘배드캅’ 與, 역할 나누는 당정…국힘 총대 멘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3일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제5차 당정협의회에서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마이크를 잡자 취재진의 이목이 집중됐다. 김 실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둘러싼 정치권 논란을 거론하며 “국민에게 면목이 없다. 앞으로 대통령실은 정쟁을 떠나 오로지 경제와 민생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사과의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김 실장은 뒤이어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공세가 그 어느 때보다 심할 것”이라며 “근거 없는 정략적인 공세에 대해서는 내각과 여권도 단호하게 대응해달라”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여당에서는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등 당 수뇌부와 동석한 자리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이 공개적으로 당 차원의 강력 대응을 주문한 것은 드문 일”(국민의힘 4선 의원)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25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국민의힘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 25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 정부 첫 국감이 4일 시작되고, 여야가 대치 정국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대통령실과 여당이 역할 분담을 시도하고 있다. 대통령실이 정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민생에 전념하는 ‘굿캅’(good cop) 역할로 태세를 전환한다면, 국민의힘은 친윤계를 중심으로 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배드캅’(bad cop)을 자처하는 모양새다.

당초 대통령실은 야당과 전 정부 문제에 대해 까칠한 목소리를 내곤 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문재인 정부 태양광 사업 비리 논란에 대해 “국민 혈세가 이권 카르텔의 비리에 사용됐다. 참 개탄스럽다”고 하거나, 18일 보도된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지난 정부는 북한이라는 특정한 교우에만 좀 집착해왔다”고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김대기 비서실장도 민주당의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나 ‘외교 참사’ 공세에 대해 “해외 당사국들은 (순방이) 잘 된 것으로 아는데, 유독 우리만 스스로 폄하하는 건 좋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 조사 논란에 대해 "감사원은 헌법기관으로 대통령실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며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리를 뒀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감사원의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 조사 논란에 대해 "감사원은 헌법기관으로 대통령실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며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리를 뒀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하지만 최근 기류가 달라졌다. 김대기 비서실장이 3일 민생 전념을 강조하더니, 윤 대통령도 4일 출근길 약식 회견에서 감사원의 문 전 대통령 서면 조사 논란에 대해 “감사원은 헌법기관으로 대통령실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며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리를 뒀다. 윤 대통령 특유의 ‘직설 화법’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발언이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더 거칠어졌다.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 서면조사 요구에 대해 “무례하다”고 불쾌감을 드러낸 것을 두고 당 의원들이 총공세를 폈다. 권성동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목함지뢰로 다리가 잘린 군인에게 ‘자장면 먹고 싶냐’고 물었던 것이 무례이고, 세월호 희생자를 향해 ‘미안하다, 고맙다’고 방명록에 쓴 것 역시 무례”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 대북 외교를 두고는 “‘외교적 마조히즘’이자 ‘대북 도착증’”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기현 의원도 “범인이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인데, (문 전 대통령이) 발끈하는 걸 보니 두려운가 보다”라고 비꼬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4일 문재인 정부의 대북 외교를 "외교적 마조히즘이자 대북 도착증"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같은 당 김기현 의원도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서면조사 요구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을 두고 "범인이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이라고 비꼬았다. 사진은 권 의원(왼쪽)과 김기현 의원(오른쪽)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하는 모습. 중앙포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4일 문재인 정부의 대북 외교를 "외교적 마조히즘이자 대북 도착증"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같은 당 김기현 의원도 문 전 대통령이 감사원의 서면조사 요구에 불쾌감을 드러낸 것을 두고 "범인이 목소리를 높이게 마련"이라고 비꼬았다. 사진은 권 의원(왼쪽)과 김기현 의원(오른쪽)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화하는 모습. 중앙포토

대통령실과 여당의 ‘역할 분담’은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 현상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 순방 및 비속어 논란이 터졌을 때 당정은 일제히 ‘가짜뉴스’, ‘정언유착’을 거론하며 강공 전략을 택했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 지지율 하락세가 뚜렷했다. 여당 일각에서는 “강공 전략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면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특히 대통령실이 야당 공세에 격하게 대응할수록 국감을 앞두고 ‘외교 참사 논란’을 키우려는 민주당 프레임에 말려든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실은 야당 공격에 휘둘리지 않고 민생에 집중하고, 여당은 최전선에서 야당 공세에 맞서는 게 최선”이라며 “3일 당정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을 조만간 발표하겠다고 밝힌 것은 ‘일하는 정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배드캅을 자처한 국민의힘은 국감에서 문 정부의 실정을 부각해 여론을 반전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엄호하는 과정에서 여당 지지율까지 동반하락한 점이 고민거리다. 당 3선 의원은 통화에서 “야당 및 문 정부의 문제를 단호하게 저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세 과정에서 실언이나 불필요한 논란을 빚어 역풍을 맞지 않도록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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