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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울렁증, ‘생각 순서’ 바꾸면 달라져요…6단계 준비법

중앙일보

입력 2022.10.04 06:00

업데이트 2022.10.04 11:29

이운정의 슬기로운 말하기 교실 9화 발표 준비 6단계.

이운정의 슬기로운 말하기 교실 9화 발표 준비 6단계.

우리 아이 말 습관, 이런 게 고민이에요

“학교에서 발표를 한다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프리젠테이션 수행평가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 아는 내용인데도 학교에서는 발표를 안 해요.”

조리 있게 말하기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입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할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머릿속 가득 할 말이 떠올라도, 막상 발표하려면 어떤 순서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아나운서인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마이크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해서 후회한 적이 많았죠. 하지만 숱한 경험을 통해 ‘발표 준비 매뉴얼’을 만든 뒤로는 공식석상에서 말하기가 더 이상 어렵지 않았습니다.저는 이 매뉴얼을 스피치 교육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발표 준비도 꾸준히 순서대로 훈련하면 누구나 유창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집에서 발표 연습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발표 연습에도 순서가 있어요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아시나요? 특정한 일에 숙달되어 달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입니다. 마치 손이 계량기인 듯, 정량의 밥을 한 손에 쥐는 초밥 요리사나 복잡한 상자를 눈 감고도 접는 달인을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이유는 같은 작업을 오랜 시간 반복했기 때문입니다.우리의 뇌에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가 있는데요. 반복된 경험이 쌓이면 뉴런을 감싸는 피복전선 형태의 신경물질인 ‘미엘린’이 두꺼워집니다. 미엘린은 어떤 작업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기본 장비 역할을 하는데요. 경력이 쌓일수록 말을 점점 더 잘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발표도 같은 순서로 반복해서 준비하면 몸에 익숙해지는 겁니다. 수많은 연습으로 뇌 안에 말하기 프로세스가 장착되어 불시에 발표하더라도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겁니다.

발표 준비 순서는 아래의 6단계로 구성됩니다.
계획하기 → 조직화  우선순위  상세화  응용  모니터링
이 순서의 각 항목은 ‘전두엽’의 기능을 활성화합니다. 각 단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공부’에 빗대어 설명해 볼게요.

(계획하기) 공부의 큰 그림을 그린다 (예: 대단원, 소단원을 구분한다.)
(조직화) 각 단원의 공부 범위와 시간을 분배한다.
(우선순위) 중요한 과목대로 공부 순서를 정한다.
(상세화) 공부한 내용을 타인에게 설명하며 구체화한다.
(응용) 배운 내용이 접목된 다른 문제를 푼다.
(모니터링) 시험이 끝나면 오답노트를 적는다.

발표도 이 6단계를 적용해 연습할 수 있습니다. 그럼 발표력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듣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 내용을 구성하는 ‘논리적인 말하기’도 가능해집니다.

발표 준비 6단계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스피치 교육을 할 때, 아이들이 이 과정에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시킵니다.

물론 처음에는 6단계를 익히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수업 시간 내내 각 순서에 맞는 내용을 찾는 데만 에너지를 다 쓰곤 합니다. 하지만 짧게는 3개월, 평균적으로는 8~12개월간 꾸준히 연습한 아이들은 발표 주제가 정해지자마자 ‘계획하기-조직화하기-우선순위’의 순서를 바로 결정합니다. 그 결과 ‘상세화-응용’ 단계에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필요한 키워드만 보고도 논리적으로 발표할 수 있게 됩니다. 계획적으로 생각하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의 머릿속에도 오래 남습니다. 발표 때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발표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돌려볼 때 그 부분을 유심히 관찰하기 때문에 교정 효과도 더 큽니다.

아래는 한 수강생의 자기소개입니다. 스피치 수업 첫 시간에 두서없이 자기소개했던 친구가 이 훈련을 거쳐 30초가량의 준비 시간만으로도 상대방의 기억에 남는 멋진 자기소개를 해냈습니다.

#1. 스피치 수업 첫 시간  
(원고로 얼굴을 가린 채) 저는 해안초등학교 3학년 김바다 입니다. 저는 서울에 살고 있고요. 저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잘 못합니다. 저는 꿈이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고, 저가(“제가”가 아니라 “저가”라고 말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잘하는 건 축구입니다. 끝났어요. 선생님!

#2. 말하기 준비 과정 연습 후  
(키워드가 적힌 큐카드만 든 채) 저는 해안초등학교 3학년 김바다 입니다. 바다 같이 넓은 마음으로 살라고 부모님께서 이름을 ‘바다’라고 지어주셨어요. 그래서인지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잘 웃는 게 저의 장점입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하고 잘합니다. 그래서 손흥민 선수처럼 바다를 건너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실력있는 축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런 선수가 되기 위해 지금도 매일 2시간씩 축구센터에서 훈련을 합니다. 어른이 되면 꼭 여러분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축구 선수가 될 거예요. 오늘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친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 발표력 키우기 실천가이드  

다음은 발표 준비 6단계 순서를 연습하는 방법입니다. 아이와 함께 항목별로 차근차근 따라 해 보세요.

①계획하기: 1H 3W 알아보기
먼저 아래의 순서대로 발표 배경을 파악합니다.

(How) 발표, 토론, PT, 면접 등 어떤 형태의 말하기인가?
(What) 말하기 주제는 무엇인가?
(Who) 누구를 대상으로, 누가 말하는가?
(Where) 어디에서(사적인 공간, 교실, 강당,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 등) 말하는가?

1H3W는 어떻게, 무엇을, 누구에게, 어디에서를 의미합니다. 평소 밥상머리에서 또는 취침 전 대화를 할 때도 이 항목을 짚어주며 말하면 더 도움이 됩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볼까? 밥 먹는 동안 오늘 수현이가 현장학습 갔었던 일을 엄마 아빠에게 말해주면 좋겠어.”라는 식으로요.
이렇게 하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기 말을 듣는 대상이 누구인지, 그들이 궁금해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상황에서 말하는 것인지 상기할 수 있습니다.

②조직화 하기: 개요표 작성
발표 장소, 대상 등 상황을 파악했다면 다음은 개요표를 작성할 차례입니다. 글을 쓸 때처럼, 말을 할 때도 전체적인 그림을 미리 그리는 게 좋습니다. 주제와 상황에 맞게 ‘서론-본론-결론’의 3단 구성으로 말할 것인지, ‘기-승-전-결’의 4단 구성으로 말할 것인지 정해봅니다. 보통 면접이나 토론을 한다면 3단 구성을, 특정한 주제로 발표를 한다면 4단 구성을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학교에서 발표를 앞두고 있다면, 말해야 하는 내용을 마인드맵으로 그려봅니다. 이야기를 소주제별로 묶은 뒤, 말할 순서를 정합니다. 마인드맵은 교과 시간에 배우기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아이라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이가 마인드맵 그리기를 어려워 한다면 생활 속에서 조직화를 익히는 연습부터 해주세요. 밥상에서 반찬을 종류별로 묶어보거나, 장난감 정리를 사용 용도나 재질에 따라 구분해보는 겁니다. 이 과정을 통해 말할 내용을 상위 개념으로 묶어 나가는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주제’라는 나무와 ‘부연 설명’이라는 가지 뻗기로 말할 내용을 정리하는 기본기가 생깁니다.

③우선순위 정하기: 말의 순서 정하기
개요표를 작성한 뒤에는 말의 순서를 정합니다. 이때는 듣는 사람이 듣고자 하는 것, 내용의 이해를 돕는 것을 우선으로 번호를 매깁니다. 예를 들어 방학 계획을 말한다면 ‘공부-여행-운동’의 순서로 말할 것인지, ‘여행-공부’운동’의 순서로 말할 것인지 정해보는 겁니다. 만약 개요표를 마인드맵으로 작성했다면 각 소제목 부분에 순서대로 번호를 써놓고 익힙니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훈련은 집안일이나 공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일요일 오전, 온 가족이 대청소할 때 A4 용지에 해야 할 청소 목록을 적은 뒤, 청소할 순서를 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봅니다. 아이가 공부할 때도 학교 숙제, 학원 숙제, 예습과 복습 등을 시간과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정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일상에서 이러한 훈련이 이루어지면 말하기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것도 더 빨라집니다.

④상세화: 원고 작성하기
개요표 작성이 마무리되면, 말하고자 하는 항목별로 주제의 키워드를 뽑아보세요. 그 키워드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합니다. 이때 지난 회차 칼럼 〈하버드생의 말하기 공식, 논리력 ‘이것’ 기억하세요〉에서 배웠던 대로 말할 내용을 스토리텔링 하면 더욱 좋습니다. 아이가 원고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면 먼저 키워드만 종이에 적어본 뒤, 그 키워드가 꼭 들어가도록 평소 말투로 내용을 말해보게 하세요. 아이 수준에 맞는 동화책을 필사하고, 강연 시나리오를 따라 말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⑤응용: 다양한 방법으로 발표를 더 재밌게 만들기
국어 시간에 배운 비유, 속담, 관용 표현을 말하기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같은 말도 속담과 관용 표현을 활용하면 다르게 들립니다. “비가 엄청 많이 왔습니다”라는 말보다, “비가 마치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라는 표현이 훨씬 더 풍부하게 느껴지듯이요.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발표를 다채롭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초등학교 6학년 국어 시간에는 ‘매체 자료를 활용하여 내용을 효과적으로 발표하기’라는 단원이 있습니다. 사진, 그림, 도표 등을 활용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시각적으로 정리해 듣는 사람의 이해를 돕는 배려의 과정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책을 보고 이야기를 ‘장면’으로 기억하는 훈련을 한 아이들은 파워포인트도 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장황하게 말한다면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해 줄 수 있겠니?”라고 말해보세요. 그림으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정리해보거나, 주제와 관련 있는 사진을 골라서 구성하면 금세 파워포인트가 완성될 겁니다.

단, 파워포인트는 발표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중요한 키워드와 이미지만 넣어서 만들도록 합니다.가끔 파워포인트에 원고 내용을 다 넣어서 발표할 때 컨닝페이퍼처럼 보고 읽는 경우가 많은데요. 청자는 듣기보다 글자를 먼저 읽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파워포인트 화면에 많은 내용을 넣으면 나의 발표는 듣지 않습니다. 파워포인트는 간단하게, 발표의 보조 역할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⑥모니터링: 촬영한 내 모습 보기  
발표 준비 훈련의 마지막은 내가 발표하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겁니다. 앞서 준비한 내용을 토대로 발표를 해보세요. 이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하고요. 발표를 마친 뒤에는 영상을 돌려 보며 다음의 기준으로 평가해봅니다.

1) 말의 내용과 순서가 적절한가? (논리적인 구성)
2) 표현이 적절한가? (구체적인 내용과 응용 표현)
3)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가? (목소리 크기, 말의 빠르기, 제스처 등)
4) 듣는 사람을 배려하였는가? (내용의 구성, 스피치의 종합 표현력, 시선처리 등)

이 과정에서 잘 한 부분은 더 강조하고, 부족한 부분은 개선합니다. 공부를 할 때, 오답노트를 쓰면서 실수를 줄이고 실력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아이가 지나친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낮은 자존감으로 과소평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세요. 아이가 잘한 부분은 칭찬하고, 부족한 부분은 격려해주세요.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더 생겼다는 보람을 느낄 겁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를 준비했습니다. ‘나의 방학 계획’이라는 주제로 말하기 준비 훈련을 한다면 아래의 6단계 순서로 훈련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기 준비 훈련을 꾸준히 한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발표는 물론이고 영재원, 특목고, 대입 면접 등에서도 어렵지 않게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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