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증거 없애기?…통화녹음 금지, 영국·프랑스 다르다 [Law談-강태욱]

중앙일보

입력 2022.10.0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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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통화녹음에 대한 논의가 많다. 당사자 간의 통화 내용을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녹음하는 행위에 대해 규제하고자 하는 법안이 제출됐는데, 그로 인해 논의가 불을 지폈다고도 할 수 있다. 말을 많이 하고 그로 인해서 설화를 겪는 경우가 주로 정치인의 것이다 보니 아무래도 이러한 법안이 국회의원에 의해 발의되게 되면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최근 대화 참여자 전원의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은 위법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안이 발의됐다. 셔터스톡

최근 대화 참여자 전원의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은 위법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안이 발의됐다. 셔터스톡

‘통화 녹음 금지법’ 발의…현 상황 어떻길래

최근 대화 참여자 전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위법한 것으로 보고, 그 위반 시 10년 이하의 징역 등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안이 발의됐다. 현재 상황은 어떠하길래 이러한 법안이 발의됐을까. 통화 녹음에 대해 가장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법은 통신비밀보호법이다. 이 법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하나는 ‘공개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즉 공개된 대화에 대해서는 녹음하더라도 적어도 통신비밀보호법의 위반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공개돼야 하는지, 사후적으로 공개된 경우의 처벌 필요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등의 미묘한 쟁점들이 있지만, 이는 법률 전문가들에게 맡겨두고 넘어가기로 하자.

다음으로 ‘타인 간의 대화’여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 사이에 대화를 녹음한 경우에 이 법에 의한 금지 대상이 된다는 것인데, 그 의미는 반대로 해석하면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면, 즉 본인이 대화의 당사자라면 위 법의 저촉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 간의 대화에서 일방 당사자가 타인 모르게 대화 내용을 녹음해 이를 언론에 유포하거나 또는 형사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하기 위한 증거로써 사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치권에서 많이 문제 되는 부분은 이 부분이었던 듯하다. 참고로 대화의 당사자만이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이므로 같은 자리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대화의 당사자가 되지 않으면 녹음한 자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 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당사자 간의 녹음이 위법 여부, 나라별로 달라

당사자 사이의 대화를 일방이 몰래 녹음하는 것에 대해 위법하다고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그 상황이 다르다. 예컨대 영국, 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당사자 간 통화녹음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약 10여개 주에서는 허용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녹음한 파일을 소지만 한 경우에도, 즉 녹음한 파일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녹음 자체만으로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보고 있고 증거자료로 사용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상대방에게 녹음의 의도를 명확하게 알리고 동의를 받아 녹음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당사자 간의 통화 녹음 행위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개인의 인격권의 일종인 음성권의 측면에서 그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본 사례가 있다. 예컨대, 김건희 여사의 사적 통화에 대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음성권 침해를 포함한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 인용된 사례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소위 ‘막말 음성 파일’에 대해서도 역시 사생활의 보호를 목적으로 보도금지 내지 유포금지 결정이 내려진 바도 있다.

말로 격렬한 공방이 이뤄지는 정치권에서 주로 이슈가 되는 것이지만 그 이외의 다른 영역에서도 사적으로 녹음한 내용을 민·형사사건의 증거로 제출하거나 언론에 공개하는 등의 행위들에 대하여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 다수의 사례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제안된 통신비밀보호법의 개정안은 이러한 민사상의 책임만으로는 통화 녹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에 부족하다는 현실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법은 대중의 통념을 기반으로 해야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녹취가 너무 만연해 있고, 이로 인해 불신 사회의 풍조를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혹자는 한국이 전 세계적 기준으로도 사기 범죄율이 높은데 이것이 녹취에 대한 관대한 문화를 방조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녹취가 사회 문화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자구책인 것이고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는 반론도 충분히 의미 있어 보인다.

최근 화상회의를 할 때 녹음 기능이 설정된 경우 사전에 회의 내용이 녹음된다는 안내가 뜨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콜센터에 전화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통화 내용이 녹음된다는 안내 멘트가 제공되고 있다. 자기가 말하는 내용과 음성이 상대방에 의해 녹화되고 녹음된다는 점을 충분히 알려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이 가져다준 사회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개인 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법이 아직 개입하고 있지 않다. 현재의 개정안은 당사자 간의 통화 녹음이 금지될 경우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를 미리 생각해보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발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통화 녹음이라는 이슈에 대해서 정치인들의 ‘증거 없애기’ 차원이 아닌 신뢰 사회의 개인의 사생활을 진지하게 보호하기 위한 논의가 충실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Law談 칼럼 : 강태욱의 이(理)로운 디지털세상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 기술의 발전과 플랫폼 다변화에 따라 복잡화해지고 고도화되는 법 규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며 경쟁력을 높이고 슬기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법률 전문가가 바라보는 참신하고 다각적인 시선을 따라가 보시죠.

강태욱 변호사

강태욱 변호사

※강태욱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자문변호사/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저작권보호원 심의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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