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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서해 피살’ 진상 규명 위해 성역 없이 협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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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 전 대통령 “무례한 짓” 조사 거부는 부적절  

국민 목숨 잃은 사건, 성실히 설명하는 게 마땅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퇴임 후 KTX울산 통도사역에 도착해 환영 나온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퇴임 후 KTX울산 통도사역에 도착해 환영 나온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서면조사를 하겠다는 감사원의 통보를 거부했다. 감사원은 지난달 28일 최재해 감사원장의 결재를 받아 질문서를 전달할 방법을 문 전 대통령 측에 문의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감사 내용 확인을 요청하며 수령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감사원이 e메일로 서면조사 요구서를 보냈으나 평산마을 비서실 측이 e메일을 반송했다.

문 전 대통령이 적법 절차에 따른 감사원의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을 거부한 것은 부적절하다. 감사원은 오는 14일 감사 종료를 앞두고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해 질문서를 보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인 이대준씨는 2019년 9월 소연평도 해상 근무 중 실종된 뒤 북한군에 의해 사살돼 불태워졌다. 당시 정부가 구조하려 한 흔적은 없고 ‘자진 월북’이라는 낙인만 가족에게 남겨졌다. 북한군에 발견됐다는 첩보 입수 후 이씨가 숨지기까지 6시간 동안 문 전 대통령과 정부의 행적 규명도 가족이 요구하는 만큼 실체 규명에 협조해야 마땅하다.

문 전 대통령은 감사원의 요구에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감사원의 서면조사는 처음이 아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 감사원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각각 ‘평화의댐’과 ‘율곡사업’ 관련 서면조사를 통보했다. 전 전 대통령은 대국민 해명서와 감사원장에게 보내는 서한 등을 발표하는 것으로 대응했고, 노 전 대통령은 전투기 기종 변경은 소신에 따른 정책 판단이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외환위기 관련 감사원의 서면조사에 응했다.

과거에도 감사원의 질의를 전직 대통령 측이 흔쾌히 수용하진 않았지만, 법에 따른 국가기관의 요구를 거부하는 데 대한 부담을 느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7년 이명박 전 대통령과 2018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질문서 수령을 거부했다지만, 문 전 대통령처럼 ‘무례하다’며 고압적으로 대응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당장 피살된 이씨의 아내가 “소환조사도 아니고 질문지를 보낸 게 왜 무례한 짓이냐,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한데 정치보복이라는 것은 유가족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2차 가해”라고 반발하고 있지 않나.

감사원이 조사 통보를 한 지난달 28일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한창이던 시기여서 민주당은 물타기용이라고 의심한다. 정권이 노린 것이 결국 문 전 대통령이었다며 감사원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하고 ‘범국민 저항운동’도 제안했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성역은 있을 수 없다며 조사에 응하라고 촉구 중이다. 국정감사가 열리는데 여야가 정쟁으로 지새울까 걱정이다.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감사원은 감사의 공정성을 재점검하고, 문 전 대통령은 국민이 생명을 잃은 사건인 만큼 당시 정부의 대응을 성실히 설명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