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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대 기업 사내 유보금 1000조 돌파…10년 만에 395조 증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원화와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뉴스1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원화와 달러화를 정리하는 모습. 뉴스1

국내 100대 기업의 사내 유보금이 1000조원을 넘어섰다. 10년 사이 395조원 늘었다.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상위 100대 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1025조원을 기록했다. 2020년 938조원에서 87조원(9.3%) 증가하며 처음 1000조원을 돌파했다. 2012년 630조원과 비교하면 증가 폭은 395조원(62.7%)에 이른다. 큰 기업일수록 유보금을 더 많이 쌓아뒀다. 상위 10대 기업의 사내 유보금은 2012년 260조원에서 지난해 448조원으로 불어났다.

불확실한 대내외 경제 상황 탓에 기업이 투자하기보다는 돈을 쌓아두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최근 10년간 기업 매출액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사내 유보금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100대 기업 매출 증가율은 연평균 2.3%였는데, 유보금의 연평균 증가율은 그보다 높은 5.5%였다. 10대 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이 기간 사내 유보금 연평균 증가율은 6.3%로, 매출 연평균 증가율 1.6%를 크게 웃돌았다.

사내 유보금은 자본잉여금(주주와 거래에서 발생), 이익잉여금(영업 활동에서 발생)을 합한 개념이다. 기업이 쓰지 않고 쌓아둔 현금은 유보금의 일부분이다. 유보금으로 잡히는 것 중엔 설비ㆍ토지ㆍ건물 같은 실물 자산도 있다. 다만 매출 증가 속도보다 사내 유보금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는 건 국내 기업이 공격적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기업이 과도하게 돈을 쌓아두지 않도록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매기는 제도가 2015년 기업소득환류세제란 이름으로 도입됐지만 큰 효과는 보지 못했다. 지금은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란 이름으로 운용되고 있다. 투자나 임금, 상생 협력 등에 쓰이지 않고 기업이 쌓아둔 돈(미환류 유보 소득)에 20% 세금을 물리는 제도다. 자기자본이 500억원을 넘거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이 주 대상이다.

기획재정부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적 성격의 제도”라며 올해가 끝인 이 제도의 효력(일몰)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정부 입장과 달리 야권에선 사내 유보금을 투자로 끌어내려면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홍성국 의원은 “기업이나 시장은 불확실성을 싫어하는데 경제가 위기 상황일수록 더욱 불확실성이 가중된다”며 “정부가 무턱대고 기업에 투자를 강요할 게 아니라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확실한 여건부터 만들어 줘야 한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이어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 역시 폐지할 게 아니라 목적에 맞게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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