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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 보우소나루'가 '룰라 대세론' 제동…이달말 결선투표 치른다

중앙일보

입력

2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 1차 투표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76·룰라) 전 대통령이 과반 득표에 실패, 현직 대통령인 자이르 보우소나루(67)와 오는 30일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각각 ‘좌파 대부’와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는 전·현직 대통령의 대결에서 보우소나루의 ‘숨은 표’가 확인되면서 예측불허 접전이 예상된다.

브라질 전 대통령이자 브라질노동당(PT) 후보인 룰라가 지난 1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브라질 전 대통령이자 브라질노동당(PT) 후보인 룰라가 지난 1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룰라·보우소나루 결선투표 진출

이날 브라질 최고선거법원(TSE)에 따르면, 대선 1차투표 개표가 99% 완료된 가운데, 브라질노동당(PT) 후보인 룰라 전 대통령이 48.4%를 득표해 1위에 올랐다. 경쟁자인 보우소나루 대통령이자 자유당(PL) 후보는 43.2%의 지지율로 2위다. 두 후보간 지지율 격차는 5.2%포인트(P)로, 그간 여론조사에서 두자릿수 차이를 보였던 것에 비해 절반 가량 좁혀졌다. 특히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개표 70% 직전까지 득표율 1위를 지키며 현역의 저력을 과시했다. 두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9명 후보 득표율은 모두 합쳐 8%대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당초 룰라 전 대통령은 막판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50%를 넘어서면서, 1차투표에서 당선을 확정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자 예상과 달리 5%P 차 신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브라질은 1차투표 때 유효투표수의 절반 이상을 확보한 후보가 나오면 결선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룰라 전 대통령은 1차 투표 결과에 상파울루 시내의 한 호텔에서 “마지막 승리까지 싸울 것”이라면서 “연장전에 임하는 축구팀처럼, 내일부터 다시 경기장에 나갈 것”이라고 연설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그간 자신의 지지율이 30% 초반에 정체된 것으로 발표했던 여론조사 결과를 ‘거짓’이라고 규정하면서 “오늘 우리가 거짓을 물리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우소나루의 한 지지자는 “우리는 그가 70%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투표에 현실이 반영되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NYT)에 전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일 산타카타리나주에서 유세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일 산타카타리나주에서 유세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숨은 보우소나루 지지층 결집했다” 분석도

그간 ‘대세론’을 굳혀왔던 룰라 전 대통령이 1차투표에서 승부를 결정짓지 못하자 일각에선 “룰라의 패배와 마찬가지인 결과”라며 “결선투표에선 룰라가 더욱 불리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결선투표까지 남은 4주간의 선거운동은 경제 개선과 실업률·인플레이션 하락으로 보우소나루의 지지율 상승에 유리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라질 싱크탱크인 공공안전포럼의 레나토 세르지오 데 리마 이사는 “전 세계가 보우소나루의 승리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면서 “보우소나루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룰라를 파괴하려 들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확인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데이지 시우카리 상파울루 가톨릭대 정치학 교수는 “실제로 보우소나루를 지지하는 숨은 표가 적지 않다”면서 “특히 상파울루의 시골지역을 포함해 여론조사의 레이더에서 벗어나 있는 전국의 작은 도시들에 (보우소나루의) 탄탄한 지지층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카를로스 멜루 상파울루 인스퍼대 교수 역시 “지난 2018년 보우소나루의 승리가 결코 일시적 현상이 아니었단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1차 투표가 마루리 된 뒤 룰라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차 투표가 마루리 된 뒤 룰라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결선투표까지 4주, 갈등·혼란 격화 우려

이번 대선은 이념 지형이 양극단에 있는 전·현직 대통령 간 승부란 점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구두닦이 소년, 노점상, 금속노동자를 거쳐 2003년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에 당선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2010년까지 2연임을 하면서 중남미 ‘핑크타이드(좌파물결)’를 견인했다. 퇴임 후 비리 의혹으로 옥살이를 했지만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되면서 12년 만에 대통령직에 다시 도전장을 냈다. 반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극우 성향의 엘리트 육군 장교 출신으로 국영기업 민영화, 연금개혁을 추진하면서 기업 친화적 정책을 펴왔다. 재임 중 군사정부를 옹호하거나 여성과 성 소수자를 상대로 혐오발언 등으로 논란을 일으켜왔다.

결전이 이달 말로 미뤄지면서, 브라질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이념 대결 양상을 보여온 양 후보자간 선거 운동도 한층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NYT는 “현재 브라질 유권자들은 누군가를 지지하기보다는 상대를 반대하고 싫어하는 데 더 열정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보우소나루는 1988년 브라질 민주주의 시작 이래 재선에 실패한 첫 현직 대통령이 되지 않기 위해, 룰라는 12년 만에 권토중래 성공을 위해 더욱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WP는 “결선투표까지 4주간은 브라질 역사상 가장 정치적으로 불확실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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