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86조 '그림 속의 꽃' ARM…손정의 만나는 이재용 셈법은

중앙일보

입력 2022.10.03 15:34

업데이트 2022.10.03 15:41

소프트뱅크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 ARM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올 초 엔비디아의 인수 실패 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들의 지분 참여가 예상된다. 사진 씨넷

소프트뱅크는 영국의 반도체 설계업체 ARM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올 초 엔비디아의 인수 실패 후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들의 지분 참여가 예상된다. 사진 씨넷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난 1일 방한하면서 세계적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ARM에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이 투자에 나설지 주목하고 있다. ARM은 스마트폰·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분야에서 90%의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는 기업이다.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손 회장은 조만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ARM 투자와 관련한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SK그룹 등 다른 국내 대기업의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현재 ARM 지분은 손 회장과 소프트뱅크가 100% 보유(소프트뱅크 75%,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25%)하고 있다.

올 1월 엔비디아의 인수 시도가 미국·유럽의 반독점 규제로 무산되면서 손 회장은 ARM 지분을 희석한 뒤 재상장(2017년 상장 폐지)할 계획을 갖고 있다. 매각이나 투자 유치를 위해선 현재와 같은 지배구조로는 어렵다는 판단인 셈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RM은 ‘그림 속의 꽃’과 같다. 갖고 싶지만 어렵고, 실제 가졌을 때 만족스러울지 의심이 드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를 모두 생산하는 삼성전자가 인수하거나 경영권을 갖는 건 애플(스마트폰), 인텔·엔비디아(반도체) 같은 경쟁자들이 원치 않고 엔비디아의 경우처럼 반독점 규제를 피하기 어렵다. ‘누구도 갖지 못하는’ 중립지대에 둔 채 영향력을 확대하는 게 현실적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ARM은 1990년 영국 아콘컴퓨터와 VLSI테크놀로지, 미국 애플컴퓨터 등이 투자한 조인트벤처 형태로 설립했다. 처음엔 컴퓨터 교육을 위한 PC와 애플이 추진하던 개인용디지털단말기(PDA)용 프로세서를 만들려 했지만, 두 프로젝트가 모두 실패하면서 독자 노선을 걷게 됐다. 2000년대 모바일 기기가 주목받으면서 모바일용 AP 설계로 특화했다. 직접 칩을 만들지 않고 지식재산권(IP) 만으로 사업하는 점이 독특하다.

삼성전자·퀄컴·애플 등 모바일 AP는 물론 엔비디아 GPU(그래픽 프로세서)도 ARM의 아키텍처가 바탕이다. 지난해 말 기준 라이선스(설계 기반 생산) 매출 11억3000만 달러(약 1조6300억원), 로열티(재설계 생산) 매출이 15억4000만 달러(약 2조2200억원)인데 세금·감가상각·고정비 등을 제하기 전 영업이익이 10억 달러(약 1조4400억원)나 된다. 전체 마진율은 37%에 달한다는 게 ARM의 주장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모바일 AP 설계에서 독보적이지만 잠재력은 데이터센터용 시스템반도체(SoC)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ARM의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설계 역량도 세계 최고 수준인데, 향후 핵심 산업이 될 인공지능(AI)·로봇 분야에서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ARM에 투자했을 때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에서 모바일 AP 설계 노하우를 전수받거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AI와 로봇, 시스템반도체는 삼성전자가 밝힌 미래 성장엔진이기도 하다.

다른 국내 대기업도 ARM의 지분 참여가 미래 사업에 도움이 된다. 메모리 반도체가 주력인 SK하이닉스가 컨소시엄 형태로 ARM의 프리 IPO(상장 전 사전 투자 유치)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AI 반도체로 영역을 확대할 경우 미래 먹거리로 로봇과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선 현대차그룹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아키텍처 암페어(Amper)에 들어가는 A100 GPU. 이 아키텍처는 자율주행은 물론 다양한 비즈니스용 AI 솔루션을 제공한다. 사진 엔비디아

엔비디아의 인공지능 아키텍처 암페어(Amper)에 들어가는 A100 GPU. 이 아키텍처는 자율주행은 물론 다양한 비즈니스용 AI 솔루션을 제공한다. 사진 엔비디아

하지만 모바일 AP 외에 미래 사업 분야에서 ARM이 현재와 같은 경쟁력을 가질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최대 600억 달러(약 86조원)에 달하는 몸값을 생각할 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은 기업이냐는 것이다.

실제로 AI 반도체 분야에선 엔비디아·테슬라 등이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히 반도체 설계뿐 아니라 데이터 보유량과 슈퍼컴퓨터 개발, 하이퍼스케일(초거대) AI 구축 등 ‘플랫폼’ 전반의 영역에선 이들이 한 수 위라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초당 40테라비트(고화질 영화 4200편에 해당하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H100칩을 기반으로 2025년 ‘EOS’라는 슈퍼컴퓨터를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EOS는 1초에 1840경 번의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슈퍼컴퓨터라는 게 엔비디아의 주장이다. 테슬라도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D1을 기반으로 내년 엑사플롭스(초당 100경 번)급 슈퍼컴퓨터인 ‘도조(Dojo)’를 가동할 예정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처럼 최근 들어 경쟁 기업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며 “(ARM에 대해선) 시장에서 거론되는 기업가치에 견줘 미래 경쟁력이 그만큼 뛰어난 회사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상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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