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 사라진다" 中 MZ세대 식생활에 '빨간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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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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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9년 식문화의 전통과 인간성 회복을 명분으로 파리에서 '슬로푸드선언문'을 발표했다. 다만, 오늘날 MZ세대로 대표되는 중국 젊은 층들은 이 같은 신념을 실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젊은 세대 식생활이 악화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중국 DT차이징(DT財經)은 조사 내용을 인용해 '인스턴트 문화, 단조로움' 등 단어로 현재 중국 젊은 세대 식문화를 요약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슬로키친’의 붕괴…中 MZ세대, 부엌에서 요리 대신 ‘패스트푸드’

최근 중국 검색사이트나 SNS에서 ‘가정 내 주방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 화제가 되었다. 혹자는 ‘가정 내 주방 공간 소실 여부’를 논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 가구 형태가 점점 축소되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최신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인 가족 구성원 수는 평균 3명 이하로 뚝 떨어졌다.

게다가 맞벌이하는 젊은 부부 가정이 늘면서 이들은 이전 세대와 같이 ‘1시간 요리해서 10분가량 식사’하는 방식도 멀리하게 되었다. DT차이징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젊은 세대 대부분은 요리하지 않는 원인에 대해 ‘일이 바쁘고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밥을 먹기 위한 준비 과정이 복잡하고 길어서’란 이유가 그 뒤를 잇는다.

[사진 WSJ]

[사진 WSJ]

중국 CBN 데이터(CBN Data)는 요즘 젊은 세대의 주방이 다음과 같은 기능을 위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첫째, ‘밀키트를 가열’할 때 주로 쓰인다. 이어 ‘더 나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상상력’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역할이 그 두 번째다.

젊은 세대의 주방은 점점 더 ‘패스트푸드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혼자 사는 젊은 세대의 경우 이러한 모습이 더욱 두드러진다. 이들의 요리 방식은 ‘원 버튼 가열’이란 단어로 일축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가열 버튼을 누르거나 레버를 한 번 돌려 반조리 식품이나 점심에 남은 배달 음식을 데워 먹는다는 뜻이다.

심지어 가스레인지는 손도 대지 않고 전자레인지나 에어프라이기만 이용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진짜 요리’를 할 때는 데이트 상대나 지인을 초대했을 때, SNS에 인증샷을 올릴 때가 전부다.

[사진 People's daily]

[사진 People's daily]

젊은 세대의 주방에 있는 소형 주방용 가전제품의 핵심 기능도 ‘조리’가 아닌, ‘삶의 방식에 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게 골자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다기능 요리 솥’이다. 한 중국인은 DT차이징과의 인터뷰에서 ‘아침용 샌드위치를 만들고, 저녁용 스테이크를 굽고, 주말 파티를 위한 고기 요리’를 하기 위해 이 제품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그가 잠시 꿈꿨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얼마 가지 못했으며 결국 이 제품은 구석에 방치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착즙기, 건강식 제조기, 두유 제조기 등도 마찬가지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19, 2020년 주방용 소형 가전제품 매출액은 빠르게 증가했으나 2021년 이후 급격히 줄었다. 이는 곧 젊은 세대가 요리에 빠졌다는 것도 ‘한낮의 꿈’이었음을 방증한다. 이들은 ‘색다른 체험’을 통해 정신적 만족감을 얻고자 제품을 구매한다. 중국가전용전기기기협회 관계자도 가정용 소형 가전제품 개발의 핵심은 특정 제품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코로나 봉쇄에도 집밥 대신 배달이나 밀키트 선택

[사진 Inside Retail Asia]

[사진 Inside Retail Asia]

코로나19가 확산됐을 때조차 집에서 요리하는 대신, 배달 음식을 선호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무엇이든지 빠르게 돌아가는 시대에 먹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면서 컵라면을 먹거나 냉동식품 혹은 즉석밥을 데워 먹는다. 심지어 그마저도 시간이 아까워 간단한 대용식을 먹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밀키트 품질의 표준화도 중국 젊은 세대의 식생활 변화에 한몫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밀키트 시장을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이에 각 음식 프랜차이즈나 대형 식당에서는 자사 브랜드 대표 메뉴를 밀키트 형태로 판매하고 있다. 이들 브랜드는 자영업자 식당을 흡수하는 등 빠르게 몸집을 키우며 표준화된 맛을 보장하는 밀키트 제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타오바오 등 중국 전자상거래 사이트에서 구매한 브랜드 밀키트 하나면 번거롭게 매장까지 가지 않아도 비슷한 맛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례로 중국의 유명 훠궈 브랜드인 하이디라오(海底撈)에서 출시한 마라탕 육수를 온라인으로 구매, 채소나 고기를 신선식품 앱(App)으로 산 후 함께 끓이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브랜드 훠궈를 맛볼 수 있다.

[사진 aliexpress]

[사진 aliexpress]

DT차이징은 중국 젊은 세대의 식생활 변화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연구했다. 이들은 고도의 시장 경쟁이 생활 곳곳에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점을 꼬집으며, 이러한 경쟁 사회에서 젊은 세대들은 요리하는 데에 시간 쓰는 것을 아까워한다고 진단했다.

또 대규모 가족 형태가 사라진 점도 식생활 변화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앞서 말했듯이 맞벌이하는 젊은 층 가정 형태가 증가하면서 ‘집에서 정성 들여 요리한 후 함께 밥을 먹는다’는 개념이 점차 퇴색하게 된 것이다. 젊은 세대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자고로 식사란 편리하고 빠르되, 뒷정리(설거지) 역시 덜 손이 가야 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주방의 패스트푸드화, 배달 음식의 맛 표준화, 유명 프랜차이즈 요리의 밀키트화’ 등 세 가지 퍼즐로 이 시대 젊은 세대의 식생활 구도를 채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DT차이징은 이러한 젊은 세대의 식생활 트랜드 이면에는 두 가지 키워드가 숨겨졌다고 설명했다. 하나는 ‘경쟁’, 나머지 하는 ‘초월’이다.

[사진 SCMP]

[사진 SCMP]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남들을 빠르게 초월하기(뛰어넘기) 위해서’ 젊은 세대는 오늘도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중국 MZ세대에 ‘대게 시간이 없다’고 느끼게 한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고 조바심을 낸다. 일주일이 쏜살같이 지나가며, 뒤돌아 보면 일 년이 지났으며 갈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고 느낀다.

‘시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최근 수년간 젊은 세대는 '나만의 시간'을 유난히 강조해왔다.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헛된 삶을 산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이들은 ‘나만의 시간’에 자기 개발을 하기 위해 최단 시간에 기본 욕구(대표적으로 식사)를 채우려고 한다.

특히 요즘과 같이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높고, 취업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는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고 끼니는 때우는 정도로 챙기는 게 일상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무엇이든지 소요 시간을 계산하고 고효율을 추구하게 되면서 밀키트나 식사 대용식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식사’란 행위는 바쁘게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 더는 1순위가 아니게 된 셈이다.

차이나랩 이주리 에디터

[사진 차이나랩]

[사진 차이나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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