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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효율 높다” VS “민원보려 반차!”…공무원 점심시간 휴무제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30일 낮 12시쯤 부산의 한 구청 1층 민원실 앞에 '점심시간 휴무'를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 독자

지난달 30일 낮 12시쯤 부산의 한 구청 1층 민원실 앞에 '점심시간 휴무'를 알리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 독자

점심시간 텅 빈 민원실

지난달 30일 낮 12시쯤 부산의 한 구청 건물 1층 민원실. 입구 옆엔 ‘더 좋은 행정서비스 제공을 위해 법으로 보장된 점심시간을 준수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실제 민원실 안은 텅 빈 채였다. 해당 구청은 올 1월 1일부터 ‘점심시간 휴무제’를 도입했다. 그 전엔 20여명의 공무원이 점심시간에 교대로 민원업무를 처리해왔다.

하지만 민원인, 특히 직장을 다니는 입장에선 ‘점심시간 휴무제’가 달갑지만은 않다고 한다. 정부24에서 처리 가능한 민원업무들이 상당하지만, 여전히 인감증명처럼 직접 방문해 떼야 하는 서류도 여럿이어서다. 민원인 A씨는 “반차를 쓰라는 것인지 황당하다”고 말했다.

지난 1월 부산의 다른 구청 1층 민원실에 불이 꺼진 채 비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부산의 다른 구청 1층 민원실에 불이 꺼진 채 비어 있다. 연합뉴스

늘어나는 ‘점심 휴무’

공무원 점심시간 휴무제를 놓고 논란이다. 이 제도는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무원의 점심 시간을 보장해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한쪽에선 “당연한 권리”라는 입장이지만, 또 다른 쪽에선 “불편”을 호소한다.

점심시간 휴무제는 2017년 경남 고성군이 처음 시행했다.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국공모원노동조합(전공노)과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현재 전국 228개 시·군·구 가운데 56개 이상 지자체에서 점심시간 휴무제를 시행 중이다.

근거는 ‘복무규정’이다. 다만 해당 규정엔 ‘지자체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1시간 범위에서 점심시간을 달리 운영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함께 명시돼 있다. 그간 상당수 지자체에서 점심시간을 교대(낮 12시~오후 1시, 오후 1시~오후 2시)로 운용해온 이유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공무원 노조를 중심으로 “법으로 보장된 점심시간”이라며 ‘휴식권 보장’이 적극적으로 주장돼왔다.

지난해 7월 1일 낮 12시쯤 광주시 광산구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공무원이 '점심시간 휴무'를 알리는 민원창구 가림막을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일 낮 12시쯤 광주시 광산구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공무원이 '점심시간 휴무'를 알리는 민원창구 가림막을 내리고 있다. 연합뉴스

점심시간 휴무제 대한 상반된 시선 

대부분 지자체 민원 담당 공무원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제시간에 다 같이 쉬고, 제시간에 모두 일하니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면서다. 한 공무원은 “점심시간에 교대 근무를 할 때도 (실제 담당 공무원의 부재로) 처리에 한계가 있을 때도 있었다”며 “특히 교대 근무를 하면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2시간 동안 민원실 근무 인원이 절반으로 준다. 오히려 신속한 민원 처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부산의 한 구청 관계자는 “요즘엔 민원인들도 (점심시간을 챙기는 문화로) 오히려 오후 1시 이후에 많이들 온다”고 말했다.

반면, 민원인들 사이에선 “다들 직장 업무로 바쁜데 민원 보려고 ‘반차’까지 써야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특히 민원인들은 “꼭 낮 12시부터 오후 1시에 다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한다.

부산에 사는 김모(30대)씨는 “공공 서비스인데, 지금처럼 교대로 근무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무인민원발급기나 인터넷(정부24)이 있더라도 차량 등록이나 인감증명 또는 여권 발급, 주민등록증 신청, 복지서비스 상담 등 대면 방식으로 처리 가능한 업무 비중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한 구청 민원실에 점심휴무제를 알리는 안내판이 놓여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한 구청 민원실에 점심휴무제를 알리는 안내판이 놓여 있다. 뉴스1

행안부 “효율적인 민원실 운영 위해 조례 제정해야”

민원 현장에서 논란이 커지자 행안부는 지난 7월 개정된 민원처리법 시행령에 ‘민원실 운영’ 조항(제8조의3)을 신설했다. 내년 4월 시행을 앞둔 해당 조항은 민원실 운영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규정하면서도, 민원실 운영 시간과 방법을 “해당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행안부는 민원 처리 여건이 상이한 각 지자체가 ‘조례 제정’이란 법적 절차를 거치면서, 공무원·민원인들의 여러 의견 수렴해 민원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란 취지에서 이 조항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행안부 민원제도과 관계자는 “시행령의 ‘민원실’ 개념은 본청 민원실뿐 아니라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도 모두 포함된다”며 “내년 4월 이후 점심시간 휴무제를 운용하려면 별도의 조례 제·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표준 조례안 등 관련 내용을 공문으로 각 지자체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가 지난해 10월 5일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무원 점심 휴식권 보장을 위해 점심 휴무제 전면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가 지난해 10월 5일 부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무원 점심 휴식권 보장을 위해 점심 휴무제 전면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노조 “또 하나의 규제…휴식권 보장 어렵게 해” 

하지만 공무원 노조에서는 행안부가 불필요한 규제로 점심시간 휴무제 확산에 제동을 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욱이 내년 공무원 하위직 봉급이 1.7% 수준에서 인상이 결정될 예정된 만큼 휴식권 보장 요구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전공노 경남지역본부 관계자는 “민원 업무는 8~9급 등 하위 공무원이 많이 보는데, 이들의 정당한 휴식권 보장에 규제 장치를 하나 더 두는 꼴”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점심시간은 법적 보장 사항이고, 휴무제 운용은 지금도 민원인 의견을 살펴 노사 협약으로 시행하고 있다”며 “이러한 시행령으로 사실상 제동을 거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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