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하루 100잔씩 34년, 지금도 커피 어려워”

중앙일보

입력 2022.10.03 07:00

업데이트 2022.10.03 09:21

강릉 커피 기행① 보헤미안 박이추 대표  

강릉은 커피다. ‘다방 커피’ ‘자판기 커피’ 식의 인스턴트커피에 길들여져 있던 우리네 입맛을 쓰고 진한 아메리카노로 바꿔 놓은 주인공은 스타벅스지만, 핸드드립(브루잉 커피) 문화를 전국으로 퍼트린 건 강원도 강릉이다. 강릉에는 2000년대 들어 직접 원두를 볶고 내리는 로스터리 카페가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했고, 대략 20년 만에 450곳 이상의 카페를 거느린 한국 커피의 중심지가 됐다. 작은 항구에 불과했던 안목항(강릉항)은 이제 전국구 커피 거리로 통하고, 2009년 시작한 강릉커피축제는 해마다 20만 명 이상이 즐기는 대형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제14회 강릉커피축제(10월 7~10일) 개막에 앞서, 모두 4회에 걸쳐 강릉의 커피 문화를 이끈 명인과 개성 있는 카페를 차례로 소개한다. 첫 순서는 강릉 ‘보헤미안’의 주인장으로, 한국 1세대 바리스타로 불리는 박이추 선생이다.

 지난 28일 한국 커피 1세대로 불리는 강릉 '보헤미안' 박이추(73) 대표를 만났다. 그는 요즘도 하루 평균 100여 잔의 커피를 내리고 있다.

지난 28일 한국 커피 1세대로 불리는 강릉 '보헤미안' 박이추(73) 대표를 만났다. 그는 요즘도 하루 평균 100여 잔의 커피를 내리고 있다.

“한 해 한 해 갈수록 커피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시는 사람에 따라 그 진가가 달라지지 않나. 어느 날은 달고, 어느 날은 쓰고. 꼭 인생 같다.”

강릉 커피 명인 박이추(73) 대표의 말이다. 30년 이상 커피 외길을 걸어왔지만, 여전히 커피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그다. 커피도 우리네 인생처럼 정답이 없어서다. 해서 백발이 된 오늘도 직접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리고, 더 많은 사람과 커피를 두고 마주 앉으려 노력한단다.

사람들은 그를 ‘마지막 남은 커피 1세대’ ‘전설의 바리스타’라 부른다. 박이추 대표는 1980년대 이후 국내에 핸드드립 문화를 알린 ‘1서3박(고 서정달, 고 박원준, 박상홍, 박이추)’ 중 한 명으로, 유일하게 현역으로 활동 중인 인물이다. 2000년대 그의 카페 ‘보헤미안’이 강릉에 자리 잡으면서 커피 불모지나 다름없던 동해안에 커피 문화가 뿌리내렸다. 그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보헤미안’은 여전히 커피 애호가 사이에서 성지로 통한다.

강릉 '보헤미안' 박이추 대표. 1988년 혜화동 로터리에 카페를 낸 이후 지금껏 커피 외길을 걸어왔다.

강릉 '보헤미안' 박이추 대표. 1988년 혜화동 로터리에 카페를 낸 이후 지금껏 커피 외길을 걸어왔다.

박 대표는 1950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다. 처음부터 커피 한 우물만 판 건 아니었다. 20대는 대부분의 시간을 목장에서 보냈다. 일본에서도 그랬고 한국으로 건너와서도 경기도 포천, 강원도 원주 등에 목장을 짓고 젖소를 키웠다.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 불쑥 “도시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져, 박 대표는 목장 생활 접고 일본으로 돌아가 커피를 배웠단다. 그리고 2년 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 카페를 열었다. 1988년 혜화동 로터리에 처음 연 가게의 이름이 ‘가배 보헤미안’이었다. 3년 뒤 고려대 앞으로 가게를 옮길 때도 ‘보헤미안’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직접 볶고 내린 그의 진하고 묵직한 커피는 금세 입소문이 났다. 당시만 해도 ‘프림 하나, 설탕 반’ 하는 식의 다방 커피가 대세였다.

강릉 '보헤미안'의 모닝 세트(8000원). 1980년대 혜화동 시절부터 내놓은 인기 메뉴다.

강릉 '보헤미안'의 모닝 세트(8000원). 1980년대 혜화동 시절부터 내놓은 인기 메뉴다.

“하루 300잔 가까이 내리던 날도 많았다. 강릉까지 찾아주는 단골이 더러 있었는데, 지금은 세상을 많이들 떠났다.”

장사는 대박이었지만, 사람에 치이는 도시 생활에 점차 염증이 생겼다. 조용한 곳을 찾다 떠올린 곳이 바로 강릉이었다. 2000년 7월 평창 진고개 휴게소 옆에 가게를 냈다가, 2002년 10월 강릉 경포대 옛 호텔 현대 옆으로 가게를 옮겼고, 2004년 지금의 강릉 연곡면 안쪽에 둥지를 틀었다(강릉 사천의 ‘보헤미안 로스터즈 박이추 커피공장’을 포함해 현재 4개의 직영점을 두고 있다. 경포점은 그의 아들 박태철 바리스타가 운영한다).

로스팅은 커피 만드는 과정에서 박이추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계다. 요즘도 이틀에 한번 꼴로 직접 콩을 볶는다.

로스팅은 커피 만드는 과정에서 박이추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계다. 요즘도 이틀에 한번 꼴로 직접 콩을 볶는다.

박 대표가 직접 손님을 맞는 연곡 본점은 목~일요일만 문을 연다. 팔꿈치와 손목 등 관절에 무리가 오는 날이 많아지면서 쉬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바리스타로서의 일상이 달라진 건 아니다. 문을 여는 날이면 오전 6시에 일어나 체력 운동을 하고, 가게에서 모닝커피를 하며 아침을 맞는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요즘도 하루 100잔씩 커피를 내린다. 커피콩을 볶는 일도 웬만해서는 직원에게 맡기지 않는단다. 무뎌지지 않기 위해 다른 종류의 커피를 날마다 대여섯 잔씩 마시고, 틈나는 대로 책을 읽는다.

“커피 내리는 일에는 ‘뭐 이 정도면 됐다’하는 결말이 없다. 늘 어렵고 새롭다. 계속 걸어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강릉커피축제에 선보일 강릉 드립백 패키지(1만5000원). '보헤미안'을 비롯해 강릉 지역 10곳의 커피를 묶은 드립백 세트다.

강릉커피축제에 선보일 강릉 드립백 패키지(1만5000원). '보헤미안'을 비롯해 강릉 지역 10곳의 커피를 묶은 드립백 세트다.

2009년 시작한 강릉커피축제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매년 500만~900만원 상당의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그간 커피로 받은 사랑을 베푼다는 생각에서다. 올해 축제에서는 ‘강릉 드립백 패키지’를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강릉의 다양한 커피를 맛보시라는 의미에서 다른 카페들의 원두를 직접 사들어 상품을 만들었다. ‘보헤미안’을 비롯해 강릉 10곳의 커피를 묶은 드립백 세트다.

2017년 그는 라오스 땅에 6000평 규모의 커피 농장을 세웠다. 지난해에는 450㎏, 올해는 750㎏을 커피콩을 수확했다.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지만, 잠재력이 크단다. 박 대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환경도 좋고 가능성이 크다”면서 “대체로 맛이 거친 편인데, 로스팅에 따라 무척 깊은 맛을 낸다”고 소개했다.

코로나 확산 전에는 틈틈이 강연에 나서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박 대표는 테크닉보다 ‘인생’과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더 많다. 그는 “제자들에게는 돈에 연연하지 말라 하고, 일반인에게는 커피를 맛있게 드시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대가가 생각하는 ‘맛있는 커피’란 무엇일까.

“커피 내리는 기술이 다가 아니다. 각박하게 살면 커피가 맛이 없다. 여행도 하고 책도 가까이 하면서 커피를 즐기시라. 커피를 음미할 여유가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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