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헐값에 강남 '노른자 땅' 판다?…손해까지 감수, 공공기관 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지난 6월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 참석자가 공공기관 방만경영과 관련한 회의 자료를 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6월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한 참석자가 공공기관 방만경영과 관련한 회의 자료를 보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의 효율성 강화를 내세우며 대규모 자산 매각을 압박하는 가운데 정확한 기준이나 가치 분석 없이 '졸속 매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서울·경기 등에서 가치가 큰 '노른자 땅'이 대거 매물로 나올 예정이고, 일부 부지는 손해를 감수하고 파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 말 기획재정부는 2022~2026년 재무위험기관 재정 건전화 계획과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을 발표했다. 공공기관 재무 건전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5년간 34조원 규모의 부채 감축과 자본 확충을 추진하는 내용이다. 여기엔 4조2756억원에 달하는 자산 매각이 포함됐다. "기관 고유 기능과 무관한 비핵심 자산 매각"이란 기재부 기조 속에 한국전력공사(한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재무위험기관 14곳이 대거 소유 토지·건물 정리에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2일 기재부와 각 공공기관이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새로 올린 매각 리스트에 수도권 내 고가의 주요 부동산이 여럿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지역 특성상 장기 보유 시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지만 '급매' 대상에 급히 추가된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전은 지난해 제출한 5년 치 재무관리계획에선 자산 매각액이 '0'이었다. 하지만 올해 낸 계획안에선 5년간 1조5447억원(부동산 자산 기준)으로 크게 뛰었다. 수도권에서만 지역본부 사옥, 변전소 부지 등 부동산 13곳(매각 예상가액 7654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특히 서울 마장동 자재센터(2600억원)와 경기 의정부 변전소(2945억원) 등 개발이 용이한 지역도 모두 팔기로 했다.

LH가 내놓는 경기지역본부 사옥 가치는 4600억으로 추정된다. 성남 분당 오리역 역세권으로 자산 가치가 큰 이곳을 팔면 다른 사옥을 매입하거나 임차하는 등 대안을 찾아야 한다. 지역난방공사도 '알짜'로 꼽히는 부지들을 매물로 내놓는다. 매각 예상가액이 500억원인 구(舊) 교육훈련실 부지는 서울 강남구 소재로 수서역과 인접하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재정 건전화계획 대상인 재무위험기관이 아님에도 1237억원 상당의 서울 금천구 소재 건물·토지를 매물로 내놓을 예정이다. 가산디지털단지역과 맞닿아 있어 교통 접근성이 좋고 향후 개발 가능성도 매우 높은 곳이지만 2024년 3월까지 처분한다는 목표다.

지난달 27일 서울 상공에서 바라본 한강변 모습. 뉴스1

지난달 27일 서울 상공에서 바라본 한강변 모습. 뉴스1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냉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상황 고려 없이 팔게 되면 이익 실현도 대폭 줄어들 위험이 크다. 익명을 요청한 한 공기업 관계자는 "계속 보유하면 쓸 데가 있고 가치가 오를 게 보이는 자산인데도 정부가 '돈 되면 지금 다 팔아라'고 하니 매각 대상에 올릴 수밖에 없다. 특히 수도권 부지 등은 나중에 더 매입해야 할 경우도 많은데 빨리 팔았다가 더 큰 비용이 들 수 있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또한 일부 자산은 손해가 예상되는데도 매물로 나왔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내놓은 경북 영덕 천지원전 부지는 장부가액상으로는 309억원이지만 매각 예상액은 155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원전 건설이 백지화된 데 따른 매각으로, 실제 매각액도 바뀔 수 있지만 현재로선 반값 판매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강준현 의원은 "공공기관이 단기적 재무구조 개선에만 치중해 알짜 자산을 무리하게 헐값에 팔면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 서울·수도권의 주요 부지는 매각 대신 공공주택 공급 등 공공재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