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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은 한민족 건국일, 홍익인간 되새겨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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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오늘은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단군왕검께서 한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의 건국을 축하하는 날이다. 단군이 즉위한 해인 기원전 2333년을 원년으로 하는 단기(檀紀)로는 4355년이다. 우리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단기를 연호로 사용하다 1961년 단기는 폐지되고 이후 서기만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이 언제냐 하는 건국절 문제로 진보와 보수 진영 간에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공산정권 수립일인 9월 9일을 건국절로 삼는다.

그러나 남북 모두 ‘민족 최초의’ 건국일을 말한다면 당연히 10월 3일 개천절이다. 우리 해외 공관에서는 개천절을 건국일(National Foundation Day of Korea)로 정해 현지 귀빈들을 초대해 축하연을 베풀고 있다. 개천절은 한민족공동체 생일날로서, 광복절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개천절 행사는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지 오래됐다. 또 세계 10위 경제 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국조(國祖) 단군성전은 겨우 16평(53㎡)에 불과하다. 그만큼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민족 정체성에 무관심하다는 얘기다.

홍익인간은 남북 공유 민족정신
유엔의 세계 시민의식과도 통해
남북·세계갈등 화해시키는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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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포정책을 연구하러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 동포들이 2000년 망국의 설움을 극복하고 기적같이 세운 나라다. 그런데 이스라엘 건국이 가능했던 것은 전 세계 유대인을 단결시키는 ‘유대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면 우리는 통일신라 이후 1300년 이상 동일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는데 1910년 경술국치 이후 100년이 넘도록 한민족공동체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사람은 모두 정신을 갖고 산다. 민족도 마찬가지다. 세계인은 남이나 북이나 우리를 모두 ‘코리안’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코리안을 코리안 되게 하는 코리안 정신이 없다면 우리는 혼 없는 민족일 것이다. 아무리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혼 없는 민족이 제대로 된 민족일 수 있을까. 또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고 온전한 한민족공동체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한민족이 공유하는 정신에 바탕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에게 그러한 민족정신이 있는가. 또 있다면 무엇일까.

현재 남·북한은 서로 다른 정치적 이념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이념이 민족정신은 아니다. 정치적 이념이라는 것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수시로 변하지만 민족정신이란 그보다 훨씬 깊고 오래된 민족의 심층 의식이다. 지금 남북은 이 심층의식에서 만나지 못하고 우리의 표층의식을 구성하는 서구적 이념에 매달려 서로를 폄훼하고 있다. 서구적 이념도 좋은 것은 갖다 써야 하지만 그 이념의 노예가 되어 민족의 에너지를 낭비한다면 정말 주체성 없는 민족이 된다.

현재 남북이 공유할 수 있는 민족정신이라면 첫째가 단군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일 것이다. ‘널리 인간 세계를 이롭게 하라’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은 지금도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이며 오늘날 유엔의 세계 시민의식과 통하는 훌륭한 정신이다. 그리고 남북이 공유하고 있는 한국어(북한은 조선어)와 한글도 한민족 정신의 아름다운 표현이다. 전 세계 750만 재외동포의 정체성 교육도 한국어 교육이 기본이다.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는 다양한 외래 사상을 하나로 조화시키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전통이 있었다. 신라시대 원효와 최치원은 각각 일심(一心)사상과 풍류도(風流道)로 종파 불교와 유불선을 하나로 조화시켰다. 근대의 소태산과 유영모는 각각 불교와 기독교에 바탕하여 동서양의 사상과 한민족의 전통사상을 하나로 회통시켰다.

필자는 한민족의 융합 정신이 오늘날 한류 세계화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과 ICT, 인공지능 등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도 원융회통의 정신으로 우리 한민족이 선도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회통의 정신은 갈등하는 남북의 마음을 해원(解冤)시켜 결국은 하나로 만나게 하고 나아가서는 갈등하는 세계의 정치·종교 세력도 화해시켜 지구촌 평화를 우리 한민족이 주도하는 때가 올 것이다. 모처럼 개천절에 한민족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새겨보자.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