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대부’ 브라질 룰라, 재집권 유력…미국 뒷마당 ‘핑크’ 물드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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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일 브라질 상파울루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룰라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

1일 브라질 상파울루 유세에서 지지자들에게 인사하는 룰라 전 대통령. [AFP=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에서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6) 전 대통령이 ‘남미의 트럼프’ 자이르 보우소나루(67) 현 대통령을 상대로 지지율 격차를 두 자릿수로 벌리며 당선이 유력하다. 이념 지형이 극명하게 갈리는 전·현직 대통령 간 대결로 주목받는 브라질의 대선 결과에 중남미는 물론 이 지역에서 경쟁하는 미국과 중국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자투표로 진행된 브라질 대선 결과는 한국시간 3일 오전 9시에 발표될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브라질 여론조사업체 IPEC가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브라질노동당(PT) 후보로 나선 실용 좌파 성향의 룰라 전 대통령은 48%의 지지율로 1위다. 재선에 도전하는 현직 대통령인 보우소나루 자유당(PL) 후보는 31%를 얻었다. 두 후보 간 격차는 17%포인트다. 민주노동당(PDT) 시로 고메스 후보(6%), 민주노동당(MDB) 시몬 테벳 후보(5%) 등이 뒤를 이었다.

사실상 2파전으로 좁혀진 이번 대선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최근 매주 1%포인트씩 지지율이 상승 중인 반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정체 상태다. 브라질은 1차 투표에서 유효투표수의 절반 이상을 확보한 후보가 나오면 결선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다.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후보만으로 오는 30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룰라 전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해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각오다. 막판 선거운동 기간에 군소 후보 지지자들에게 ‘전략적 투표’를 설득하며 표몰이에 나섰다. 보우소나루의 재선을 막기 위해 대세인 자신에게 표를 몰아 힘을 실어 달라고 호소했다. 과거 라이벌이었던 중도 성향의 제랄도 아카민 전 상파울루 주지사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등용했다. 최근엔 엔히케 메이렐레스 전 중앙은행 총재, 마리나 시우바 전 환경부 장관 등 한때 거리를 뒀던 인사들과 접촉하며 외연 확장에 총력을 쏟았다.

보우소나루는 “여론조사 결과를 믿지 않는다”며 룰라의 과반 승리 가능성을 일축한다. 또 ‘대선 투표 결과를 인정하고 승복할 것이냐’는 언론의 질문에 끝까지 즉답을 피했다. 특히 지난 6월엔 “만약 대선에서 진다면 표를 도둑맞았기 때문이며, 필요하다면 전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1월 6일 미국에서 벌어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의 의회 난입 사건이 브라질에서 재현될 수 있다”고 전했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재 브라질은 “대선 후 나라가 쪼개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두 후보의 지지 세력 간 분열이 심각하다. 각 후보 지지자 사이에 폭행은 물론 살인 사건까지 벌어졌다. 브라질 싱크탱크인 수다파스의 캐롤라이나 리카도 디렉터는 “현재 브라질에는 무장한 민간인으로 이뤄진 부대가 존재하며 선거 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룰라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최근 중남미에서 좌파 정당들이 연달아 집권하는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완성된다. 사상 최초로 중남미 주요 6개국(브라질·멕시코·아르헨티나·콜롬비아·칠레·페루)에 모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특히 룰라 전 대통령은 2003~2010년 재임하며 중남미의 좌파 물결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외신은 그가 중남미 최대 경제 대국인 브라질 대통령으로 복귀하면 콜롬비아 등 중남미의 좌파 정부들과의 강력한 협업을 끌어내며 사회정책 어젠다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퀸시연구소의 온라인 매체 ‘리스폰서블 스테이트 크래프트’는 “룰라의 승리는 미국에 일종의 도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간 ‘미국의 뒷마당’이라 불려 온 중남미에 적지 않은 공을 들여온 중국은 룰라 전 대통령의 복귀를 환영한다.

중국은 1990년부터 25년간 이어진 1차 핑크 타이드를 틈타 이념적인 동질성을 내세우며 중남미로 약진하기 시작했고, 최근 무역과 투자 등 경제협력과 코로나19 백신 지원 등을 앞세워 진출 속도를 높여 왔다. 특히 브라질은 지난해 중국 투자액이 60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해 2017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브라질 매체 네오피드는 “룰라 당선 시 브라질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이니셔티브에 합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반면에 친미 성향의 보우소나루는 대중교역은 늘려가겠지만, 중국과 영구적인 평화협정을 맺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햄프던-시드니칼리지의 안드레 팔리아리니 역사학과 교수는 “미국은 브라질이 중국을 적대자로 보길 원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은 향후 브라질에 미·중 간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기보다 상호 이익에 기반을 둔 건설적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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