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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의 3대 제자…일본 프로레슬링 전설이 눈을 감았다 [안토니오 이노키 1943~2022.10.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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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이자 대부로 불리는 안토니오 이노키(본명 이노키 간지·猪木寬至)가 1일 오전 심부전으로 별세했다. 79세.

일본 프로레슬러이자 정치인 안토니오 이노키. 중앙포토

일본 프로레슬러이자 정치인 안토니오 이노키. 중앙포토

1943년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태어난 이노키는 전쟁으로 집안이 어려워지자 중학교 때 브라질로 건너가 커피 농장 등에서 일했다. 남다른 체격으로 현지에서 투포환 선수로 활동하던 중 1960년 원정 경기를 위해 브라질을 방문한 역도산(리키도잔·본명 김신락)에게 스카우트돼 일본으로 돌아와 프로레슬링 선수가 됐다. 그의 데뷔전 상대는 '박치기왕' 김일로 당시 김일의 팔 꺾기 기술에 눌려 7분 5초 만에 패했다.

이후 북한 지역 출신으로 일본의 국민적 영웅이던 역도산과 그의 3대 제자로 꼽히는 이노키, 김일, 자이언트 바바는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이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7만 5000명의 관중이 도쿄돔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김일과 명승부를 펼쳤는데 1970년대 내한 경기에서 김일 선수의 박치기 세례를 받고 곧바로 '이노키 싸대기'로 대응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노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는 1976년 열린 무하마드 알리와의 결전이었다. 당시 세계 최고 주먹이던 알리가 기자회견에서 "나와 대적할 동양인은 없는 거냐"고 발언하자, 이노키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파이트머니는 18억 엔(약 180억 원)에 달했다.

일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오른쪽)가 1976년 6월 16일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프로 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왼쪽)와 이종 대결을 벌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일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오른쪽)가 1976년 6월 16일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프로 복싱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무하마드 알리(왼쪽)와 이종 대결을 벌이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이노키는 링에 드러눕다시피 한 자세로 15라운드 내내 발차기로 공격했다. 이후 두 선수 중 한 명이 누워있고 다른 한 명이 서 있는 자세를 '이노키-알리 포지션'이라 부르게 됐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났지만 두 사람의 경기는 전 세계에 이종격투기 열풍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50대 이후에는 정치가로 변신했다. 1989년 스포츠평화당을 창당하고 참의원에 당선돼 일본에서 처음으로 프로레슬러 출신 국회의원이 됐다. 1995년 낙선한 후 1998년에는 프로레슬러 현역 은퇴와 함께 정계에서도 물러났다. 2013년 일본유신회 소속으로 다시 참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2014년 8월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 유치를 위해 평양에 간 이노키 일행. 중앙포토

2014년 8월 국제 프로레슬링 대회 유치를 위해 평양에 간 이노키 일행. 중앙포토

정치인으로서는 스승 역도산의 고향인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하며 북·일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다. 1995년 4월 북한에서 처음으로 릭 플레어와 프로레슬링 경기를 벌였고, 2013년 11월엔 스포츠 교류 행사 참석차 북한을 방문해 김영일 노동당 비서와 회담했다.

NWF 헤비급 챔피언, IWGP 헤비급 챔피언을 역임했다. 캐치프레이즈는 '불타는 투혼'. 일본에서는 "겡키데스까(건강하십니까)"라고 외치며 TV·광고에 출연하는 등 최근까지 건강하게 활동했다. 한때 그에게 뺨을 맞으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풍문이 돌며 '이노키 싸대기'를 맞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지난해 '전신성 아밀로이드증'이라는 난치병에 걸렸다고 발표했던 고인은 최근 저혈당으로 자택에서 요양하던 중 상태가 악화해 1일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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