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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감시에 텃밭도 못 넘던 아버지…"긴급조치 9호 특별법을"

중앙일보

입력

“한국경제 파탄은 박정희 도당에게 책임이 있다” “박정희 도당과 청와대를 때려 부숴야 한다”

고(故) 윤중희(당시 45세)씨의 인생은 1975년 7월 22일 충남 서천군 장향읍에서 시내로 향하는 합승 택시 안에서 술기운에 내뱉은 두서없는 말 때문에 한 순간에 뒤틀렸다. 택시 안은 윤씨와 기사 외에도 3명의 승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며칠 뒤 들이닥친 경찰에 체포된 윤씨는 2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윤씨의 넋두리가 두달 전(75년 5월13일) 시행된 긴급조치 9호로 금지된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긴급조치가 발동된 1970년대 고려대 캠퍼스에 들어간 무장 군인들이 고대생들을 교문 밖으로 끌어내 연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긴급조치가 발동된 1970년대 고려대 캠퍼스에 들어간 무장 군인들이 고대생들을 교문 밖으로 끌어내 연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옥살이 후에도 계속된 유신체제 하에서 윤씨의 집은 철창 없는 감옥이었다. 경찰관 3명이 교대로 윤씨를 감시했고, 이따금 집에 찾아와 “마을 벗어날 땐 신고하고 가라”고 경고했다. 윤씨의 아들 기영씨는 “경찰이 집 앞 산에 올라 소나무 있는 곳에서 한참 동안 우리 집 마당을 내려다보곤 했다”고 기억했다. 옥살이 전 윤씨는 지역 농촌지도소장을 지내는 등 사회활동이 활발했지만 ‘빨갱이’로 낙인 찍힌 뒤론 그의 집에 발길이 뚝 끊겼다고 한다. 기영씨는 “이후 아버지는 마당을 배회하거나 인근에서 밭일을 하고 돌아와 홀로 막걸리를 마시는 게 전부였다”며 “늘 쓸쓸해 보였다”고 말했다. 감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79년 10월26일) 이후 긴급조치 9호가 해제될 때(79년 12월 8일)까지 계속됐다.

 가세는 기울었고 생계는 한때 동네에서 ‘사모님’ 소리를 듣던 부인의 몫이 됐다. 기영씨는 “어머니는 서울 청계천에서 떼온 옷을 머리에 이고 마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팔았다”며 “그래도 여섯 자녀 학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 소유한 땅 절반가량을 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2013년 헌법재판소가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자 윤씨는 재심을 신청했고 같은해 10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윤씨의 나이 83세, 구속된 지 38년 만이었다. 그러나 무죄 선고의 기쁨은 잠시였다. 윤씨와 가족들은 2014년 8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이듬해 4월 나온 1심 판결문에는 이런 문구가 이유로 적혀 있었다.

 “긴급조치 9호가 위헌·무효라는 이유로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는 수사과정에서 벌어진 국가기관의 위법행위로 인해서 유죄선고를 받았던 경우라고 볼 수 없으므로…” 

 윤씨는 구체적 ‘위법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자신을 사찰했던 경찰관들을 증인으로 부르려 했지만 소재를 알 수 없었다. 재판부는 “고문과 폭행 등의 가혹 행위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2017년 결국 윤씨는 세상을 떠났다. 기영씨는 “무고한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려 놓고 위헌이지만 가혹 행위의 증거가 없어 배상은 못 한다는 국가”라며 “나라의 사과와 배상으로 명예를 되찾길 바랐던 아버지는 판결로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2015년 3월 26일 대법원이 “긴급조치 9호가 사후적으로 위헌·무효가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해 법적 의무를 지는 게 아니다”고 밝힌 뒤론 대부분의 긴급조치 9호 관련 국가배상소송에서 같은 문구가 반복됐다. 이른바 ‘통치행위론’이다.

 대법원은 지난 8월 30일에서야 판례를 변경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기본권 침해 위험성이 명백한 긴급조치 9호에 따른 국가작용이나 공무원들의 직무 행위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서 그 자체로 정당성을 결여했다”고 본 것이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체포·구속 등 신체의 자유가 제한됐다면 집행과정의 구체적 위법행위나 위법행위의 원인이 된 고의 또는 과실을 구체적으로 따질 것 없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지난 8월 30일 오후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배석해 있다. 뉴스1

지난 8월 30일 오후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배석해 있다. 뉴스1

8월 전원합의체 전까지…피해자, 국가배상소송 대부분 패소

 대법원이 ‘통치행위론’을 앞세운 2015년 3월 이후 많은 사람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가 좌절했다. 대법원이 판례를 변경하기 전까지인 7년 5개월 동안 법원도서관 판결문 검색 시스템에서 확인되는 긴급조치 9호 관련 국가배상소송 중 피해자가 일부라도 승소한 경우는 1심 기준 34.27%(213건 중 73건), 2심 기준 18.75%(128건 중 24건)에 불과했다. 대부분 학생운동 과정에서 검거된 이들이지만 윤씨 외에도 ‘막걸리 보안법’ 피해자로 회자된 김기영씨(73)같은 사람도 포함돼 있다. 1975년 6월 13일 20대였던 김씨는 취업 기념으로 친구 두 명과 캠핑을 떠났다가 사달이 났다. 경상북도 봉화군의 한 약수터에서 만난 주민들과 어울려 술을 한 잔 하던중 “농사일 때문에 바쁜데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사업을 서둘러 힘들다”고 투덜대는 농민에게 “박정희는 도둑놈”이라고 맞장구 친 게 화근이었다. 다음 날 잡혀가 1년간 옥살이를 한 김씨도 재심에서 무죄를 받고 국가배상소송에 나섰지만 2015년 패소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기소돼 판결이 선고된 사건은 589건이며 피해자는 1140명이라는 옛 형사 판결문 수집·분석 결과를 내놨다. 이 중 ‘9호 위반’ 사건이 544건, 974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아직 국가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해보지도 못한 이들도 여럿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조치 제4·9호 관련 유가족 단체 간담회' 자리에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심현황 자료집이 배포돼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긴급조치 제4·9호 관련 유가족 단체 간담회' 자리에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사건 재심현황 자료집이 배포돼 있다. 뉴스1

피해자 보상 법안 2년째 법사위 계류 중…전문가 “특별법이 답”

 전문가들은 특별법 제정을 통한 일괄구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윤진수 서울대 명예교수는 “일찍 소송을 냈다가 패소해 구제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이 과연 형평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며 “패소 확정자들을 포함해 피해자 중 전원에게 국가가 보상하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긴급조치 피해자를 다수 변호해 온 이상희 변호사는 “소송을 통한 개별적 구제는 변호사 선임 등 비용도 많이 들고 기간도 오래 걸려 피해자들에게 가혹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에 이같은 취지를 담은 법률안(유신헌법 긴급조치로 인한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안)이 이미 2년 전 발의돼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상임위 심사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78년 전남대에서 학생 선언문 등을 제작·배포하다 구속됐던 문승훈씨(67)는 “이제는 국회가 응답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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