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 해유"가 반가운 인사…전문점만 452곳 칼국수의 도시 [e슐랭토크]

중앙일보

입력 2022.10.02 05:00

업데이트 2022.10.0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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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대전광역시 중구 선화동음식특화거리. ‘광천식당’ 주방에서 만난 김경남(73)씨가 이른 아침부터 4시간 넘게 끓인 멸치 육수를 살펴보고 있었다. 이 식당 대표 메뉴는 칼국수와 두부와 오징어두루치기다. 10㎝ 이상 크기의 질 좋은 남해안 멸치에 듬뿍 넣은 마늘로 만든 육수를 칼국수에 쓴다.

김씨 부부는 충남 청양에 살다가 1975년께 대전 중구청과 가까운 곳에서 세를 얻어 칼국숫집을 시작했다. 1977년부터 지금 자리에서 45년째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순댓국이나 찌개 요리보다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칼국수를 끓여 팔았다”며 “두부는 원래 프라이팬에 구워서 팔다가, 소주 안주로 두부를 찾는 분이 많아 양념해 내놓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대표 메뉴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대전 중구 광천식당에서 김경남(73)씨가 육수에 넣을 면을 들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27일 대전 중구 광천식당에서 김경남(73)씨가 육수에 넣을 면을 들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칼국수 전문점만 450곳…文 대전 방문서 칼국수 점심 

삶은 두부에 듬성듬성하게 썬 파, 고춧가루가 듬뿍 섞인 걸쭉한 양념을 올려 먹는 두부 두루치기는 대전이 원조다. 자연스럽게 이 양념장에 칼국수 면을 비벼서 후식처럼 먹는 방식을 여러 식당이 따르고 있다. 광천식당을 찾은 손님 대부분은 두부 두루치기와 오징어두루치기 양념장에 면을 넣어 먹는다고 한다. 대전 주민 임모(56)씨는 “양념장에 면을 넣으면 비빔 칼국수 1인분을 먹는 것처럼 포만감이 있다”고 말했다.

대전역과 가까운 중구 선화·대흥동은 옛 충남도청과 대전 중구청, 경찰서, 세무서 등 관공서가 몰려있는 번화가였다. 하지만 90년대 둔산지구 개발, 2013년 충남도청 이전으로 상권은 예전만 못하다. 김씨는 “충남도청이 이전하면서 한동안 손님이 줄었다가, 대전 칼국수가 유명해지면서 요즘엔 외지인들이 주말마다 선화동 음식 거리를 찾아 활기가 돌고 있다”며 “나이 드신 분은 칼국수와 두부 두루치기를, 젊은이들은 매콤한 양념에 면을 비벼 먹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

대전 논두렁 추어칼국수 집. 중앙포토

대전 논두렁 추어칼국수 집. 중앙포토

전쟁 이후 구호 밀가루 집산한 대전역서 출발 

대전은 칼국수의 도시로 불린다. 칼국수 가게가 워낙 많아서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칼국수나 한 그릇 하시죠”란 인사말을 할 정도다. 대전시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칼국수’ 상호가 들어간 국수 전문점은 452곳에 달한다. 차림표에 칼국수 메뉴를 포함하고 있는 분식점을 다 합하면 1200여 곳이 넘는다. 50년 이상 역사를 가진 칼국숫집도 상당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9년 1월 대전을 방문해 대전 중구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었다.

이날 찾은 음식점 골목 곳곳에도 칼국수 집이 눈에 들어왔다. 주꾸미 볶음, 돼지 두루치기 전문점 메뉴판에도 ‘사리 추가’란 글자가 꼭 보였다. 강길수(58) 논두렁 추어칼국수 대표는 “과거 대전 사람들은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칼국수를 먹을 정도로 면 소비가 많았다”며 “다른 지역에서 칼국수 전문점을 찾기가 어렵지만, 대전은 동네 앞만 가도 칼국수 집이 2~3개씩은 있다”고 말했다.

서민 음식으로 알려진 칼국수는 근대 이전에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한다. 한국 토양이 밀을 재배하기에 부적절해 생산량이 적어서였다.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결혼식이나 잔치가 있어야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이었다.

 지난달 27일 대전 중구 광천식당에서 김경남(73·왼쪽)씨와 아들 강대호(51)씨가 칼국수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달 27일 대전 중구 광천식당에서 김경남(73·왼쪽)씨와 아들 강대호(51)씨가 칼국수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칼국수 도시…동네마다 칼국수 집 2~3곳 

이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밀가루를 진짜 가루란 의미의 ‘진가루’로 불렀다. 밀가루가 한국에서 흔한 음식 재료로 쓰이게 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라는 게 정설이다. 무상 구호물자로 밀가루가 대량 공급되면서 칼국수·수제비 등 밀가루를 이용한 음식이 자연스럽게 유행했다.

칼국수가 대전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데는 지리적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경부·호남 철도가 만나는 대전은 철도교통의 중요 거점이었다. 구호물자였던 밀가루가 대전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정노 대전시 중구청 위생과장은 “한국전쟁 이후 각 지역에 보내기 위한 밀가루가 대전에 모이면서 대전역 주변에 덩달아 제면 공장도 많이 생겼다”며 “피란민들이 생계를 위해 손쉽게 만들 수 있고, 단가가 저렴한 칼국수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국숫집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그는 “60~70년대 서해안 간척사업을 하면서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밀가루를 받아 대전역 주변에서 돈을 받고 되팔아 상인 입장에선 밀가루를 구하는 게 더 쉬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정부의 분식장려운동이 맞물리면서 칼국수는 빠르게 대중화했다.

대전시와 대전 중구청은 2013년부터 칼국수 축제를 열고 있다. 사진 대전 중구

대전시와 대전 중구청은 2013년부터 칼국수 축제를 열고 있다. 사진 대전 중구

얼큰이·팥·추어·매생이·옹심이 종류 다양 

지리적 특성과 함께 대전 칼국수가 70여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한 데는 충청인의 기질이 한몫했다는 의견도 있다. 김기완 한국외식업중앙회 대전 중구지부장은 “충청도 사람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식사 약속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며 “칼국수보다 보편적이고 저렴한 음식이 없지 않냐. 사는 사람도, 대접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는 칼국수가 소통을 어려워하는 충청도 사람과 궁합이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 칼국수는 오랜 전통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멸치 육수나 사골 국물에 끓여 내는 일반 칼국수를 비롯한 바지락 칼국수, 매운 고춧가루를 풀어 만든 ‘얼큰이 칼국수’, 팥 칼국수, 어죽칼국수, 추어칼국수, 매생이 칼국수, 김치 칼국수, 옹심이 칼국수 등 20여 가지가 넘는다.

국수와 함께 두부 두루치기와 수육, 족발, 김밥을 곁들여 먹는다. 대전시와 중구청은 2013년부터 칼국수 축제를 열고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최근 3년간 중단됐다. 중구청은 이 행사를 내년에 대면 방식으로 재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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