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이지즘'이란 말 아세요?…초고령화에 답하는 브랜드의 자세 [비크닉]

중앙일보

입력

안녕하세요. 좀 더 나은 삶,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의 목소리를 쫓아갑니다. 'Voice Matters(목소리는 중요하다)' 김민정 기자입니다.

MZ세대 신드롬에 빠져 놓친 진짜 문제

"나이 들어 쓸모없어지니 무슨 재미로 사노."

여든이 넘긴 할머니가 읊조리던 말들이 부쩍 와 닿는 요즘입니다. 밀레니얼 세대 후기에 해당하는 제가 나이듦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다소 이른 감도 없지 않아 있는데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고령 인구 비중 증가 속도를 보면 그리 때 이른 고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은 16.6%. 3년 뒤인 2025년에는 20.6%를 차지하며 초고령사회로 진입합니다. 2025년에는 5명당 1명이 노령 인구라는 뜻이죠.

사실 고령화 진행 속도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노인, 나이듦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입니다. '에이지즘(Ageism·연령차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인의학 전문의 로버트 버틀러가 1969년 일찌감치 제시한 용어로, 나이에 따른 고정관념을 빗대 표현한 말입니다. 노화는 종종 혐오와 부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늙으면 사고가 폐쇄적으로 바뀌고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대표적 관념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진행되는 신체 노화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할 때는 물론 도움(부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인구 5명당 1명이 노령 인구가 되는 현실 앞에 노인을 그저 부양의 대상으로만 여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노인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 공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활기차게 뛰어오르는 젊은 세대와 지팡이에 의존해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노인의 그림자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고령화 진행 속도보다 중요한 건 노인, 나이듦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사진 픽사베이

활기차게 뛰어오르는 젊은 세대와 지팡이에 의존해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노인의 그림자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고령화 진행 속도보다 중요한 건 노인, 나이듦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사진 픽사베이

물리적으로 나이를 먹어도 삶의 목적의식이 분명하면 삶의 질은 달라집니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해서 이뤄내면 그 속에서 보람, 의미를 찾고 '자기 효능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여전히 '쓸모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 자체가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하고요. 그러나 뜨거운 MZ세대 담론만큼이나 모든 인간의 공통 과제라 할 수 있는 나이듦에 대해서 우리는 보다 체계적인 준비가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MZ세대의 특징은 이렇다'라는 분석과 평가는 즐비하지만, 노년에 대한 언급과 고민은 현저히 낮다는 말이죠.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센터는 책 『에이지 프렌들리』를 통해 "최근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추진하지만 대부분 환경에 치우쳐져 있다. 시장의 주 타깃도 MZ세대에 머물러 있다"며 "(ESG, MZ세대 담론만큼이나) 사회정책이 집중해야 할 곳은 고령화 문제"라고 꼬집었습니다.

초고령사회에 대처하는 브랜드의 자세

기업, 브랜드가 시니어 시장을 대하는 대표적 방법은 그들을 시장 소비자로 인식하는 겁니다. 보유한 제품 또는 서비스를 노인 맞춤형으로 최적화하거나 혹은 아예 특화 상품을 별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려 합니다. 시니어를 직접 제품 생산 공정에 개입시키고 시장에 ‘참여’하게 하는 거죠. 이들의 손길이 깃든 제품은 당당히 시장에서 제값에 팔려 수익이 되고, 그 수익은 또다시 시니어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됩니다.

SK하이닉스가 지난 2020년 12월 내놓은 교복 업사이클링 브랜드 '리버드(RE:BUD)'는 이 같은 선순환 구조와 궤를 같이합니다. 리버드는 Re(다시), Birth(탄생), Upcyle(새활용), Dream(꿈)의 네 단어를 조합해 만들었는데요. 해마다 적잖게 버려지는 교복을 가방·지갑 등 새로운 패션 상품으로 새활용(업사이클링)하고, 그 과정에 노인들의 손길이 더해진다는 측면에서 환경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착한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충북 청주 시니어클럽에 소속된 한 어르신이 교복 원단을 재봉틀로 바느질하고 있다. 수명을 다 한 교복은 이 같은 어르신들의 작업과 디자이너의 전문적인 손길을 통해 가방이나 지갑 등 새로운 패션 상품으로 재탄생한다. 사진 SK하이닉스 리버드

충북 청주 시니어클럽에 소속된 한 어르신이 교복 원단을 재봉틀로 바느질하고 있다. 수명을 다 한 교복은 이 같은 어르신들의 작업과 디자이너의 전문적인 손길을 통해 가방이나 지갑 등 새로운 패션 상품으로 재탄생한다. 사진 SK하이닉스 리버드

버려진 교복이 새로운 상품으로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손길이 닿아야 합니다. 우선 교복 상태에 따라 분류해서 깨끗하게 세탁해야 하죠. 새 제품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교복을 해체하고 패턴에 맞춰 재단해야 하기도 하고요. 이 과정을 다양한 연령대의 시니어들이 함께 해주고 있는 겁니다. 현재 리버드는 충청북도 청주 지역 시니어 클럽과 손잡고 그곳에 소속된 65세 이상 어르신을 생산 과정에 참여시키고 있습니다. 청주는 SK하이닉스의 낸드플래시 반도체 생산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는 남다른 인연의 도시이기도 한데요. 2018년 SK하이닉스는 교복을 기증받아 어르신들이 수선, 세탁해 시중가의 10%로 재판매하는 '행복 교복' 사업을 이곳에서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활동을 보다 확장, 시니어들의 손길이 깃든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탄생한 것이죠.

어르신들이 사용하지 않는 교복을 해체, 재단하면 디자이너가 감각을 발휘합니다. 리버드는 현재 두 개 라인으로 구분해 제품을 만들고 있는데요. 줄무늬 패턴 등 교복 원단 특유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서 작은 동전 지갑, 파우치 등을 만든 기본(베이직)라인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소재의 교복 여러 개를 혼합해서 가방 등을 만드는 퍼센트 라인입니다. 얼핏 보면 해당 제품 원단이 버려진 교복에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원단을 적당한 비율(%, 퍼센트)로 조화롭게 배치한 것이죠.

줄무늬 패턴 등 교복 원단 특유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만든 카드, 동전 지갑. 사진 리버드

줄무늬 패턴 등 교복 원단 특유의 특징을 그대로 살려 만든 카드, 동전 지갑. 사진 리버드

전혀 다른 소재의 교복 여러 개를 혼합해서 만든 리버드 '퍼센트' 라인의 가방. 사진 리버드

전혀 다른 소재의 교복 여러 개를 혼합해서 만든 리버드 '퍼센트' 라인의 가방. 사진 리버드

교복 해체 작업 자체는 그리 세밀한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상당히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에요. 리버드와 어르신들의 공생은 이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과거 양장점을 운영하셨던 분 등 봉제 기술을 가진 베테랑 어르신들이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보이고 있거든요. 특히  빼어난 봉제 기술 보유자는 가방, 파우치 등 직접적인 상품 디자인과 생산까지 힘을 보태기도 합니다. 손근열리버드 대표는 "다시 쓸모있는 제품을 만드는 데에 본인이 일조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어르신들이 상당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귀띔했습니다.

현재 리버드는 29cm, 텐바이텐, 지그재그 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에 입점해 있는데요. 아직 판매량이 눈에 띄게 높지 않지만, 보다 많은 시니어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기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손 대표는 "해체작업, 단순 봉제작업을 넘어 시니어 분들의 참여 범위를 넓히려 하고 있다"며 "일례로 어르신들의 손 그림과 손글씨를 활용한 제품을 준비 중이다"고 전했습니다. 차근차근 시니어 참여 정도를 확대해 청주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 어르신들의 참여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충북 청주 시니어클럽에 소속된 어르신들이 버려진 교복을 해체, 재단, 재봉하고 있다. 사진 리버드

충북 청주 시니어클럽에 소속된 어르신들이 버려진 교복을 해체, 재단, 재봉하고 있다. 사진 리버드

다양성 포용성을 말하는 기업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이것

요즘 기업들은 저마다 D&I(Diversity and Inclusion, 다양성과 포용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갖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D&I는 신체적 특성, 인종, 나이, 성별 등과 관계없이 각기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품는 것을 말하는데요. 사회와 일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둘러보면 여전히 자신의 '쓸모 있음'을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시니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껏 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회의 일원으로 품으며 공존할 수 있는 해법들을 치열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습니다. 부양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적 참여를 끌어낼 수 있도록, 갇히지 않고 세상과 끊임없이 호흡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기회가 마련돼야 할 것입니다. 연륜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영역은 분명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하나. 우리는 모두 늙습니다. 자신의 노년이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겁니다.

Bicnic

Bicnic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