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수 어렵자 수출 부양 나서…중국, 위안화 가치 하락 용인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07호 04면

[외환시장·증시 긴급 진단] 일본·중국 전문가 인터뷰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기축통화 엔화와 동남아시아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의 위안화가 요즘 심상치 않다. 엔화는 달러당 한때 145엔까지 떨어지며 2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위안화는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포치’(破七·달러당 7위안)가 깨졌다. 엔·위안화 동반 가치 하락은 한국을 비롯해 원자재 수입과 수출로 먹고 사는 아시아 전역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25일(현지시간) “엔화와 위안화 가치가 모두 폭락하면서 시장에 대한 공포를 키워 1997년 외환위기처럼 대규모 자금이탈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환율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짐 오닐도 달러당 150엔 선이 뚫리면 외환위기 수준의 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특히 한국 원화를 필리핀 페소화, 태국 바트화와 함께 가장 취약한 통화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문제는 당장 엔·위안화의 가치 하락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제학자, 중국 전문가에게 엔·위안화의 영향 등을 물었다.

관련기사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사진 전병서]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사진 전병서]

“중국 정부의 의도가 투영된 결과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은 중국 위안화 가치의 심리적 마지노선이라 여겨지던 포치가 무너진 것을 두고 “경기를 살리려는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하락을 용인한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단일 국가 기준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은 외부적 충격인 환율 변동보다 중국 내부 경기가 더 중요하단 얘기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에 지난 4월 상하이를 봉쇄하면서 2분기 경제성장률이 0.4%까지 추락했다. 이에 지난 27일 세계은행(WB)은 중국의 올해 성장률이 2.8%에 그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화 가치의 향방과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29일 전 소장에게 물었다. 전 소장은 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푸단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대우증권(現 미래에셋증권)과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하는 등 여의도 금융가에서 25년간 근무한 중국통이다.

위안화의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외부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이지, 중국 정부에겐 7위안이 마지노선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위안화 가치 급락은 중국 정부의 의도가 담겼다고 봐야 한다. 위안화 환율은 달러·유로·엔화 등 교역량이 큰 국가의 통화를 복수통화바스켓으로 묶어 전일 종가에서 변동 폭을 반영한 뒤 중국 정부가 산출한 조정계수(경기대응 조정요인)를 더하는 식으로 결정된다. 사실상 정부가 환율을 통제하는 구조다. 복수통화바스켓에서는 미국 달러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에 달러 가치가 오르기 시작한 올해 초부터 위안화 가치는 낮아졌어야 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조정계수를 통해 지금껏 위안화 가치 하락을 방어했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시장에서 환율이 결정되는 국가와는 상황이 다르다.”
중국 통화 당국이 포치 붕괴를 두고 본 이유는.
“중국 산업을 지키는 게 먼저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로 수출 의존형 성장 모델의 한계를 실감한 이후 수출보다 내수시장 성장에 주력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중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36%에서 2020년 18%까지 낮아졌다.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 다섯 개 중 하나만 수출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코로나19 확산과 봉쇄로 소비가 부진에 빠진 게 문제였다. 내수가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수출이라도 늘어야 중국 산업이 역성장을 피할 수 있으니 위안화 가치 하락을 용인한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위안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란 얘긴가.
“중국 경기를 봐야 하는데, 2분기 경제성장률이 0.4%를 찍은 게 바닥이라고 본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피델리티에서 내놓는 주요국 경기 사이클을 보더라도 중국은 이미 경기 침체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세계은행이나 IMF의 올해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각각 2.8%, 3.3%로 낮아졌다는 데 주목하고 있지만 핵심은 내년이다. 세계은행의 내년 중국 성장률 전망치는 4.5%, IMF는 4.6%다. 이들 기관 전망치에서 올해보다 내년 성장률이 더 높은 곳은 주요국 가운데 중국뿐이다. 경기가 돌아서면 중국 정부도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원화 가치에 영향은 없나.
“원·위안 환율 동조화는 이미 깨졌다. 최근 한국 무역 구조를 보면 원화 가치는 위안화와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과거엔 한국이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완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했다. 중국이 달러를 벌면 한국도 달러를 버는 구조라 환율이 같이 움직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엔 이런 품목들이 줄었다. 반도체를 제외하면 한국이 이미 2021년부터 중국과 교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다. 배터리·디스플레이 등의 핵심 소재인 리튬과 희토류처럼 한국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품목이 많다. 양국 통화 가치는 이제 따로 봐야한다.”
한·중 환율전쟁 가능성은.
“한국이나 중국이 서로 통화가치를 낮추려 경쟁할 상황이 아니다. 수출 경쟁력 차원에서 보면, 한국이 중국과 경쟁하는 품목이 많지 않아 환율전쟁은 이제 의미 없다. 양국의 물가상승률이나 외환보유고 등도 서로 다르기 때문에 특정 국가를 의식할 상황도 아니다. 예컨대 8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CPI)은 2.5%로 한국(5.7%)과 차이가 크다. 지금은 ‘킹달러’(달러화 초강세)를 걱정해야지 한·중 환율전쟁을 걱정할 상황이 아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한국은 내수시장이 큰 국가가 아니라서 세계시장에서 밀려나면 타격이 크다. 미국에 금리 인상을 멈추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을 어떻게 높일지를 걱정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