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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마른 스타트업] “한국 스타트업은 지금 옥석가리기 아닌 생존 게임 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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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호 10면

SPECIAL REPORT

송명수 펜벤처스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더 성장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스타트업 허브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송명수 펜벤처스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더 성장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스타트업 허브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영재 기자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스타트업 허브로 도약해야 한다.” 송명수 펜벤처스(PEN Ventures) 대표는 “돈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스타트업들을 도울 방법은 시장 규모를 키우는 것 뿐”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2000년대 초반 IT 버블 붕괴처럼 스타트업 자금 조달의 부침은 반복된 일이지만, 민간 투자 규모가 충분치 못한 탓에 국내 스타트업들은 생존이 문제라는 것이다. 송 대표는 “전 세계적인 유동성 긴축 속에서도 기업형벤처캐피탈(CVC)이나 민간 투자가 활성화된 해외 시장은 옥석가리기의 기회로 보는 반면 한국은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며 “실력 있는 스타트업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시장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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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대표는 글로벌 재보험회사인 코리안리에서 15년간 근무한 뒤, 미국 액셀러레이터인 플러그앤플레이(Plug and Play)의 한국 대표를 역임하고 미국 실리콘밸리에 펜벤처스를 설립해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돕고 있다. 펜벤처스코리아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창업진흥원의 ‘빅3 혁신 분야(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창업패키지’ 프로그램의 투자 유치 주관기관이다. 서울시청 산하 서울산업진흥원의 ‘서울창업허브M+’에서 글로벌 진출 허브 공식 파트너도 맡고 있다. 27일 서울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 위치한 펜벤처스코리아 서울사무소에서 송 대표를 만나 국내 스타트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재보험사 재직 이력이 독특하다.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때,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 스타트업 투자가 각광받았다. 싱가포르 정부도 자국을 핀테크 스타트업 중심지로 육성하려 공을 들이고 있었다. 코리안리의 고객이 전 세계 보험사들인 덕분에 이런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도 2018년부터 다수의 보험사들이 CVC를 통해 스타트업 투자를 알아보던 때라 유망한 한국 스타트업 얘기를 자주 나누게 됐고, 이들의 세계 시장 진출을 돕는 액셀러레이터로 나서게 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스타트업들이 힘든 시기다.
“사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들이 힘든 시기다. 그동안 자금이 넘치던 상황이 끝났으니 옥석가리기는 불가피하다. 그런데 한국은 옥석가리기를 넘어 생존 문제가 걸려 있다. 긴축 환경에서도 건실한 대기업은 살아남고 오히려 사업 확장 기회를 잡기도 하는데, 스타트업은 사정이 다르다는 얘기다. 예컨대 시리즈B 투자까지 받은 스타트업도 지금은 생존을 고민하고 있다. 시리즈C 투자 단계부터는 1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하는데, 시장에 돈이 넘칠 때도 국내에선 이 정도 규모를 투자해줄 곳이 많지 않았다. 시리즈B 투자까지 받았다면 국내에선 성공한 사업 모델인데도 생존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자금 조달 방법은 없나.
“시리즈B 투자 단계에 올라선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해외 진출을 노린다. 전 세계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긴축 국면에 들어섰다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 시장에선 민간 주도의 투자 규모가 커서 사정이 낫다. 문제는 이런 해외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려면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도는 높지만, 큰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는 스타트업에 수백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해외 투자자들의 눈높이는 국내 시장 장악만으론 맞추지 못한다.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지원하더라도 해외 진출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선정되기 어렵다.”
해외 진출이 쉽지 않을 텐데.
“전혀 다른 문화와 언어를 쓰는 시장이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쓴소리부터 하자면, 국내 스타트업 상당수가 준비가 안 돼 있다.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보면, 거의 모두가 중장기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해외 시장에 나설 때는 초심과는 다른 곳이 많다. 기업명은 밝힐 수 없지만, 한국에서 수십억을 투자받은 뒤, 빌딩을 샀다고 자랑하는 곳도 있었다. 해외 시장 진출 계획은 국내 투자를 받을 목적이었다는 얘기다. 미국에 법인을 세우고 사업에 나서더라도 국내 직원이나 한국계 미국인을 고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해외 시장에서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없다는 얘기다.”
벤처투자

벤처투자

액셀러레이터가 도우면 되지 않나.
“액셀러레이터의 역할이 이런 스타트업을 돕는 일인 것은 맞다. 인재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현지 네트워크도 제공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한국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더 성장해야 한다. 사업 모델에 따라 해외 시장이 맞지 않는 사업도 있다. 이런 곳은 국내 사업만 목표로 하겠다면 거기까지만 목표로 해도 투자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반면 정말 해외 시장을 노려보겠다고 하는 기업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자금도 풍부하게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스타트업 허브로 도약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메리트 있는 지역인가.
“지리적으로 한국은 아시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예컨대 중동 지역 스타트업 허브로 부상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는 이스라엘 텔아비브와 아프리카 전역, 인도까지 비행기로 4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지역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미국 동부까지 비행기로 6시간 안에 도달할 수 있다. 서울은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지역을 비행기로 5시간가량에 커버할 수 있는 곳이다. 중국의 창업 허브 상하이와 싱가포르 등이 경쟁 상대가 되겠지만, 한국에 투자할 만한 스타트업이 더 많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도 중요한데.
“한국은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등 굵직한 산업에서 선두 국가다. 이런 대기업들도 스타트업과 협력할 수 있어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많다. 소비자들이 트랜드에 민감하고 깐깐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에 테스트베드(새로운 제품·서비스 등의 시험장)로도 우위에 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에듀테크 투자로 유명한 미국의 GSV벤처스와 미국 중장비 대기업 코흐의 자회사인 몰렉스 산하 벤처캐피탈,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등이 우리를 찾아 유망한 스타트업을 소개해달라고 했을 정도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스타트업 허브를 노려볼 만 하다.”
스타트업들이 이 시기를 넘길 방법은.
“지금은 어려운 시기니 투자를 받을 때까지 비용을 아끼고 최대한 버텨야 한다. 버티는 데서 그치지 말고 스티브잡스가 말한 ‘커넥팅더닷’(모든 과거의 경험이 하나로 연결되며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을 생각해야 한다. 지금은 성과가 없는 일이라 느껴지더라도 추후에 자양분이 될 수 있는 포석이란 생각으로 꾸준히 밀어붙여야 한다는 얘기다. 자체 역량에 한계가 느껴진다면 액셀러레이터를 찾아 도움을 받는 식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정부가 지원할 부분은 없나.
“이럴 때일수록 스타트업 투자 재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 예컨대 내년 모태펀드 예산(3135억원)이 올해보다 40% 줄었다. 정부 재정과 거시경제 전반을 보고 결정한 일이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민간 투자가 더 활성화될 때까지 뒷받침이 필요하다. 위기라고 하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지금이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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