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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줄 마른 스타트업] 제약·바이오 돈가뭄 직격탄, 급여도 못 주는 업체 속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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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7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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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바이오기업들은 최근 자금난에 임상을 중단하거나 파이프 라인을 줄이고 있다. 사진은 한 바이오기업 연구원이 백신을 검수하는 모습. [중앙포토]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최근 자금난에 임상을 중단하거나 파이프 라인을 줄이고 있다. 사진은 한 바이오기업 연구원이 백신을 검수하는 모습. [중앙포토]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인 A사는 최근 코스닥 상장 절차를 중단했다. 이와 함께 추가로 진행하려던 임상시험도 중단 위기다. 이 회사 대표는 “개발 중이던 신약에 대한 임상2상(임상시험 두 번째 단계)을 진행하는 데만 벌써 100억원이 넘게 들어갔는데,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해 자금이 바닥났다”며 “또 다른 신약에 대한 임상시험도 준비했지만 중단할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임상시험 없이는 코스닥 상장 역시 쉽지 않다”며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하면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인데, 벤처캐피탈(VC)로부터 번번이 거절 당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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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실적은 없지만 연구·개발(R&D)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이 투자시장이 위축되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제약·바이오 스타트업 대부분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바이오텍이 몰려 있는 서울 송파구의 한 스타트업은 운영자금이 부족해 임원 급여 지급을 미루고 있다. 이런 곳이 한 둘이 아니다. 제약 관련 스타트업 B사 대표는 “창업 초기 단계에서 연구·개발비 투자를 받지 못해 문을 닫은 곳이 수두룩하다”며 “그나마 버티고 있는 곳도 사실상 연구를 중단해 좀비기업이 된 곳이 많다”고 전했다. 이미 코스닥에 상장한 파멥신은 운영자금 조달 부담으로 최근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제약·바이오 기술규모

제약·바이오 기술규모

제약·바이오 업종은 특성상 정보통신(IT) 등 다른 업종에 비해 투자금이 많이 드는 분야다. 기초 기술을 확보했더라도 통상 10년가량 걸리는 임상시험(임상1~3상)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임상1상을 진행하는 데만 평균적으로 30억~50억원이 든다. 그 다음 단계인 임상2상(2a, 2b)에 들어가면 들여야 할 자금이 더 많아진다. 2a상에서만 100억가량 든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보통 임상2상에서 두 번째 외부 투자(시리즈B)를 받는 식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임상3상에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이 들기 때문에, 임상2상을 마친 후 기업공개(IPO)를 하거나 시리즈C 투자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성공 확률이 낮은 편이어서 자금 조달이 쉽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투자시장이 위축돼 자금 확보가 어려워지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은 좀비기업으로 전락하거나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파멥신 관계자는 “미국과 호주에서 진행하고 있던 임상의 경우 코로나19 장기화로 비용이 증가하고 임상 계획이 지연돼 임상 조기 종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제약·바이오 분야에 유입된 신규 투자금은 6758억원으로 총 투자액의 16.9%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8066억원에 비해 16%나 감소했다. 한때는 제약·바이오 투자 규모가 가장 많았으나 이제는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1조4927억)와 유통·서비스(7603억원)에 이어 3위로 밀렸다. VC 등의 투자가 급감하고 있는 건 제약·바이오 분야 특성상 뚜렷한 실적은 없는데 연구·개발에 엄청난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기술특례 요건 기간이 만료되는 파멥신의 지난해 매출액은 1억원이 채 안 된다. 그러나 연구·개발과 임상 등으로 적지 않은 돈을 써 이 회사의 누적 결손금은 250억원이 넘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의 또 다른 자금 확보 통로인 기술특례상장제를 활용한 코스닥 상장도 쉽지 않다. 상장 요건이 까다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제도 도입 후 최근까지 전체 기술특례상장에서 제약·바이오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62% 정도로 꽤 높았지만, 지난해 제약·바이오 기업의 상장은 9곳에 그쳤다. 비중으로는 29%다. 코스닥 기술기업상장부의 한 관계자는 “최근에도 일부 심사 미승인 기업이 나왔다”며 “분야 특성상 임상시험 데이터를 중점으로 보기 때문에 업계 입장에선 다른 기술 분야에 비해 상장이 까다롭다고 느끼는 편”이라고 전했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은 “과거에는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특례상장을 많이 해줬는데, 최근 기업 실적이 좋지 못하다 보니 상장이 쉽지 않다”며 “기술로서 승부를 내야 하는 제약·바이오 업계의 실상이 드러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에선 기술특례상장 가이드라인 재정비까지 진행 중이다. 현재 기술특례상장 때 24개의 기관에서 심사를 하는데, 각 평가기관마다 바이오 관련 지식 수준이 다르다보니 이를 일률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표준을 만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하면 신규 상장이 더 어려워지고, 이에 따라 투자 유치도 힘들어진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보면 사실상 퇴행하는 제도”라며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엔 악재”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제도·규제 탓만 할 수도 없다. 교수 창업의 경우 연구비 확보를 위해 창업을 한다던가, 경영 실무진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선 창업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보유 기술을 과대 포장하면서 애꿎은 개인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C 스타트업 대표는 “제약·바이오 업계 분위기가 좋을 땐 한 회사에 VC가 300억원을 투자하기도 했다”며 “사실상 거품이 끼어 있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바람을 타고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기도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적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기술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100여 개 제약·바이오 스타트업 중 신약 개발에 성공한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이승규 부회장은 “한 번 창업을 했으면 그 기술로 승부를 내겠다는 생각으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투자를 목적으로 성급히 창업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가령 기술 이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밸류업(기업가치 상향)을 계속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내는 해외와 환경이 달라 국내 업체 간의 인수합병(M&A)보다 기술 이전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데, 시장에서 기대하는 대규모(1조원 이상) 기술이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점차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등 좀비 기업으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9월까지 기술 수출 규모는 4235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기술 수출 규모는 1조2243억원이었다. 기술 수출 건수도 올해 상반기 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4건의 절반에 그친다.

이에 대안으로 글로벌 펀드를 만들어 제약사들이 유한책임투자자(LP)로 들어와 전략투자를 하는 방식이나 M&A를 하는 회사들이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공동연구펀드를 만드는 방안 등을 거론한다. 처음부터 기업공개(IPO)로 시작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가능성을 보이면 글로벌 빅파마나 국내의 주요 제약회사로의 M&A를 유도해야 하는데, 우선 상장하고 보자는 식의 디자인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유효상 원장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상장 후 그 자금으로 기술 개발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거꾸로 돼야 한다”며 “애초에 기술 개발을 하고 M&A를 통해 실력을 입증한 뒤 상장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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