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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째 샤워를 하지 않았다...그리고 알게 된 미생물 생태계[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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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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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의 배신

제임스 햄블린 지음
이현숙 옮김

"샤워를 하지 않은 지 5년째다." 대뜸 첫 문장을 이렇게 적은 이 책의 저자는, 실은 의학을 전공했다. 병원 가운은 절대 이틀 연속 입지 않고, 손 씻을 땐 비누를 쓴다. 샴푸와 컨디셔너는 안 써도 머리는 감는다.

다만 비누나 세제로 몸 전체를 씻는 샤워를 하거나, 보습제나 체취방지제를 바르지는 않는다. 몸의 청결을 유지하고, 상대에 불쾌감을 주지 않고, 단정하지 못하단 인상 때문에 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요즘 도시인들이 흔히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더란다. 점차 피부 기름기도, 몸 냄새도 서서히 줄더란다.

비누방울. [중앙포토]

비누방울. [중앙포토]

이런 체험담을 프롤로그 삼아서 저자는 현대의 위생·청결 개념이 어떻게 정착됐는지를 살핀다. 동서양 목욕의 역사와 공중보건의 역사, 사치품에서 필수품이 된 비누 산업의 역사를 훑는다. 또 미국에서 K뷰티를 접목한 피부 관리를 직접 받아보고, 요즘 인기 높은 비누 회사와 화장품 매장을 찾아간다. 피부 때문에 지독히 고생하다 직접 제품을 만든 창업가들도 만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지금 시대의 불균형을, 즉 위생과 청결을 위한 노력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 과학적 근거는 피부의 미생물 생태계, 이른바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피부에 있는 미생물의 엄청난 규모와 다양성은 DNA 관련 신기술과 함께 10여년쯤 전에야 파악됐다. 관련 연구들은 무균·항균 대신 피부 미생물을 적절히 유지하고 때로는 더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롭고, 질병 치료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저자가 위생 개념의 혁명적 변화를 주장하는 배경이다.

비누 회사도 발 빠르게 움직인다. 알고 보면 비누 업계는 진작부터 마케팅에 원조 격인 일을 여럿 했다. 콘텐트로 재미를 주며 적당히 제품을 언급하는 것도 그렇다. 미국 라디오·TV 드라마를 '소프(soap, 비누) 오페라'로 부르는 것은 초창기부터 비누 회사가 협찬해 만들었기 때문인데, 이런 협찬은 2000년대까지 이어졌다. 과거 여러 비누 브랜드가 뭘 혁신으로 내세워 마케팅을 펼쳤는지 소개하는 대목은 아이보리·럭스·다이알 등 낯익은 제품 얘기이기도 해서 흥미롭게 읽힌다.
저자는 비누와 화장품이 의약품과 달리 규제가 매우 느슨하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창업가에겐 진입 장벽을 낮춰주지만, 소비자에겐 정보의 진위를 구분해야 하는 부담을 안긴다. 요즘 많이 나오는, 피부에 바르거나 마시는 콜라겐 제품들과 '프로바이오틱''프리바이오틱'을 동원한 피부 관련 제품들의 효능에 대해 저자는 여러 연구자의 말을 통해 그 허와 실을 지적한다.

올 여름 서울숲의 모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올 여름 서울숲의 모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책은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강한 호의를 드러내면서도, 일단 마이크로바이옴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부터 강조한다. 어린아이 때부터 반려동물을 비롯해 자연의 동식물과 접촉해 면역 체계의 적절한 반응을 훈련하라는 얘기다. 이는 산업화한 도시에서는, 피부에 좋다는 제품을 잔뜩 사는 것보다 훨씬 큰 사회적 노력과 비용이 필요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은 뉴욕 센트럴 파크가 언제 만들어졌고, 그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전한다. 1857년 맨해튼 폭동이 일어날 무렵, 뉴욕은 인구 과밀에다 주거 환경이 지독히 열악했다. 폭동 이후 뉴욕시는 대중을 위한 공원 만들기에 나섰다. 옴스테드는 남북전쟁 때 북군이 패전을 거듭하는 이유로 열악한 병영을 지목하고 개선에도 공을 세웠다.

참고로, 저자가 샤워를 그만둔 것은 고액 연봉의 의사 대신 기자가 되기 위해 뉴욕으로 이사한 뒤 생활비 및 시간 절감을 위해서였다. 일상의 경험부터 주제를 넓혀가는 시각과 이를 구체화하는 취재 방법 등 저널리즘의 관점에서도 흥미롭게 읽을 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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