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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는 100년 전에도 달렸다...외면 받은 엉뚱한 이유[BOOK]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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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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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여자들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
김하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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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소개하는 바에 따르면, 무려 100여년 전에도 전기차가 도로를 달렸다. 1900년 즈음에는 오히려 전기차가 휘발유차보다 더 빨리 달렸고 브레이크도 더 안전했다. 저자는 당시에도 전기차는 배터리를 60km마다 충전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여러 면에서 도시 주행에 더 이상적인 선택지였다고 설명한다.

다만 전기차는 남자들이 타기에 너무 조용하고 안정적이었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시끄럽고 거칠게 핸들을 돌리며 운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비논리적이고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당시만 해도 많은 이들의 신념이자 불문율이었다. ‘전기차는 여성적’이라는 인식 때문에 자동차를 살 때 일반적인 의사 결정권자인 남성은 휘발유차를 구매했고, 자동차 제조업체 역시 살아남기 위해 휘발유차를 만들어내야 했다. 이 논리는 한 세기 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를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 이어졌다.

흔히들 캐리어라고 부르는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이 등장한 건 1972년이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 하나로 여겨지는 바퀴가 세상에 등장한 게 5000년 전의 일인데, 무거운 여행 가방에 바퀴를 달겠다는 생각을 하는데도 5000년쯤 걸린 셈이다. 지금 돌아보면 이상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진정한 남자는 무거운 짐을 직접 든다’ ‘여자는 짐을 들어 줄 남자 없이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는 식의 성별 고정관념이 있었다. 바퀴 달린 쇼핑 카트를 도입하자 많은 남성이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단다.

비단 전기차와 바퀴 달린 가방만이 아니다. 이른바 ‘여성다움’이라는 성차별적 편견 때문에 사라지거나 늦춰진 기술과 발명품이 적지 않다. 스웨덴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기술 발전 역사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어떻게 수많은 아이디어를 배제하고 미래를 향한 혁신을 방해했는지 사례로 풀어냈다. 그는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을 구분해 무언가를 배제하는 식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여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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