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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중앙일보 공동기획

팬데믹으로 취약고리 드러나…맞춤형 혁신정책 추진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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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코로나19와 대한민국: 성찰과 대안

이성주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이성주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한 이후, 고작 80~100 나노미터 크기에 불과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우리의 일상은 완전히 변해 버렸다. 다행히 최근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 수와 신규 확진자 수가 크게 줄며 팬데믹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는 전 세계적으로 6억 명 이상의 감염자와 65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

이 바이러스와의 공생을 선택한 여러 국가는 이미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태국은 10월 엔데믹을 선언할 예정이다. 우리도 팬데믹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자국중심주의 가속화, 공급망문제 대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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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정치적인 측면에서 세계는 자국 중심주의로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위기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더욱 복잡해졌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언제든 국가 간 인적·물적 자원의 교류가 제한될 수 있으며 그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 수 있는지 경험했다. 중간재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글로벌 공급망으로 인한 위험 발생 가능성은 더 크다. 무역협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수출 기업 중 85.5%가 공급망 문제를 경험했다고 한다. 이에 자국 내 생산을 강화하는 역 세계화 물결이 등장하고 있다. 반도체 과학법을 통해 약 28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지원하며 아시아에 편중된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이 대표적이다. 당분간은 효율성을 강조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보다 위기에도 강한 국가 동맹관계 구축이 강조될 것이다. 또한 공공의료와 감염확산 방지 등 위험에 대응하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팬데믹으로 인한 국내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영업자, 비정규직, 여성 등 취약계층에 심각한 영향
기후 위기 지속시 새로운 감염병 팬데믹 올 수도 있어
외부 충격에 신속 대응, 빠른 회복가능한 사회구조 절실
과학기술과 혁신이 격차 완화, 복지 확충에 활용돼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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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길어지며 세계 경제는 침체국면에 들어서고 있다. 경제성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장기 저성장 흐름이 지속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3.2%로, 2021년 5.9%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2023년 전망치도 올해와 비슷한 수준인 3.6%로 추정하고 있다. 20세기 최초의 팬데믹인 스페인 독감의 경우 이로 인한 사망률 증가가 1인당 실질소비액을 약 8% 감소시켰다고 한다. 팬데믹이 향후 세계 경제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코로나를 겪으며 업종별 고용의 양과 질의 격차가 커졌으며, 이로 인해 사회 양극화와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업제한 등으로 소규모 자영업자의 비중이 높은 대면 서비스업의 경영상황은 악화한 반면, IT와 운송업 등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비대면 업종은 오히려 크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실제 경영상황이 나빠진 업종을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직과 수익감소 또한 두드러졌으며 특히 여성의 고용환경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OECD 국가의 여성고용 성과를 분석한 PwC 보고서에 의하면 노동시장의 양성평등을 향한 움직임이 코로나로 인해 최소 2년 이상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세계 불평등보고서에 의하면 코로나를 겪는 동안 세계 억만장자의 재산 점유율이 역사상 가장 급속도로 증가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연간 국민소득에서 상위 10%가 차지하는 비중 또한 2016년 43.3%에서 2021년 46.5%로 증가하였다. 코로나 이후 노년층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하는 증오범죄의 공포가 커지고 있으며 이 현상은 당분간 지속할 것이다.

로코노미, 사이버보안기술 관심 커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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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비대면 사회가 일상화되며 팬데믹 이후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가 전망된다. 재택근무와 원격교육, 비대면 종교활동, 비대면 소비가 확대되면 공간에 대한 인식이 변화할 수 있다. 즉, 비대면 사회에서는 이동의 필요성이 감소하여 교통량이 줄고 주거지와 지역 중심의 삶이 확대될 것이다. 실제 팬데믹이 길어지며 가정 내 환경을 개선하고자 가구·가정용품·가전제품 등의 소비가 증가했다. 지역 내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지역 기반 상품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지역(local)과 경제(economy)의 합성어인 로코노미(loconomy) 현상이 재조명을 받으며 다양한 지역 사업이 시도되고 지역 내 주거·문화·녹지 기능이 강조된다.

한편 비대면 사회로 인해 삶의 방식이 세분화·개인화됨에 따라 외로움이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대면 소통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고 신뢰를 쌓는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대면 소통의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 타인에게 침해받고 싶지 않은 자기 주변의 일정한 공간의 크기를 의미하는 개인공간의 범위가 코로나 이후 넓어졌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외로움이 가지고 올 사회적 문제를 인지하고 영국에서는 2018년 1월 ‘외로움 장관(Loneliness Minister)’을 임명하기도 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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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측면에서 팬데믹은 디지털 전환을 한층 가속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봉쇄로 비대면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혁신적 기술의 상용화가 앞당겨지고 있다. 원격의료, 드론 택배, 디지털 금융 등이 대표적이다. 동시에 의료·교통·금융 서비스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방어·탐지하고 대응하고자 사이버 보안 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건강과 환경을 강조하는 그린기술 관련 정책 또한 확대될 것이다. 바이러스와 같은 생물학적 위험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친환경 소재 기술,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건강 모니터링 기술, 재활용 기술이나 친환경 제품 개발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나타내듯 환경을 보존하고 사회적 책임경영과 투명경영을 강조하는 ESG 경영이 조직 생존의 필수조건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정치·경제·사회·기술의 변화를 가져올 코로나 사태를 ‘블랙스완’으로 표현하곤 한다. 검은 백조를 발견한 것처럼 발생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일이 실제 일어났고 그 사건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게 됨을 의미한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블랙스완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팬데믹은 그렇지 않아야 한다.

“불평등 심화한 시장경제 시스템 교정 기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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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지금의 기후 위기가 지속하면 새로운 감염병으로 인한 팬데믹이 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팬데믹과 같은 외부충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팬데믹은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인구의 50%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지역간 의료 불균형이 심각하고 공공의료 인프라도 취약하다. KDI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를 겪는 동안 기혼 여성이 직장을 그만둘 확률이 기혼 남성에 비해 더 크게 증가하여 초등학생 자녀의 돌봄 공백 현상이 두드러졌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게 높은 영역도 확인되었다. 게다가 팬데믹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는 팬데믹을 통해 관찰된 약한 고리를 보완함으로써 위기를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실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발생한 공장의 노동력 부족 사태는 오히려 자본집약적 산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팬데믹 이후를 준비하며 디지털 산업,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친환경 에너지 산업 등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함과 동시에 과학기술과 혁신이 사회 격차 완화와 복지 확충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방안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 UCL대학의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는 팬데믹이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켜 온 시장 경제 시스템의 문제를 교정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가가 공공의 목적과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가는 사회적 도전과제를 찾아내고 도전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임무지향적 혁신정책’을 주장하였다. 팬데믹의 약한 고리는 우리나라가 어떠한 사회적 도전과제를 임무로 설정할 것인지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성주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