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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전쟁과 노란봉투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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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김원배 경제산업디렉터

세계는 전쟁 중이다. 인명 피해가 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말고도 총성 없는 전쟁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역통화 전쟁’과 일자리 전쟁이다.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의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통화 전쟁’이라면 역통화전쟁은 수입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 자국 통화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다. 한편에선 기업을 자국에 유치해 좋은 일자리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본격화됐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엔 미국에서 생산하지 않는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지을 계획인 현대차그룹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국은 혜택 주며 자국 생산 유치
한국 야당은 불법 파업 면책 추진
투자 위축되면 노동계도 소탐대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오른쪽)이 14일 국회에서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오른쪽)이 14일 국회에서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를 담은 의견서를 전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 5월 방한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국내 기업인들을 만나며 미국에 투자를 유치했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가 미국에 생긴다는 의미다. 한국 기업들이 사업 기회를 찾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국내에서 생산해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것은 한편으론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은행의 경상수지 통계를 보면 중계무역 순수출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 기업의 해외 현지법인이 원자재를 조달해 만든 상품을 국내로 반입하지 않고 현지나 제3국에 파는 무역으로 얼마나 벌었느냐를 보는 것이다. 이 금액이 지난해는 221억 달러, 올해 상반기는 119억 달러에 달한다. 한국 기업의 해외 생산과 수출이 늘었다는 의미다. 국경을 넘는 통관 기준으로 파악한 무역수지가 적자임에도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요인 중 하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으로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강한 달러 시대가 오자 원화가치가 떨어지고 국내 주가도 하락세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한국도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원화가치를 유지하고 물가를 잡기 위해선 미국과 보조를 맞춰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빚이 많은 기업과 가계의 상환 부담을 가중하고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다. 한국은 과연 이번 위기를 헤쳐갈 수 있을까.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의 취약함에서 비롯됐다. 경쟁력 없이 대출로 연명하던 기업이 도산했고, 단기로 외자를 빌려와 장기로 대출하던 금융회사가 무너졌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었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교훈 삼아 비껴갈 수 있었다. 이번 위기 역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진짜 위기의 씨앗은 다른 곳에서 자라고 있다. 지금 국회에선 불법 파업의 경우에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이 논의되고 있다. 손배소에서 진 노조원들에게 성금을 전달하던 노란봉투를 따서 나온 말이다.

현행 노동조합법 3조는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합법적인 쟁의나 파업으로 회사가 손실을 봤다고 해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야당은 불법 파업까지 손배소를 제한하는 노란봉투법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법이 불법 행위에 대한 면책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문제가 있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고사하고 ‘파업하기 좋은 나라’로 갈 것이 자명하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14일 국회를 찾아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손 회장은 “불법 행위자가 피해를 배상하는 것은 법질서의 기본 원칙이다.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불법 행위자를 보호하고 피해자인 사용자에게만 피해를 감내하도록 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해 경제 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 국내 대기업이 약속한 투자 금액만 1000조원을 넘는다. 투자가 계획대로 실행돼야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노란봉투법처럼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법이 자꾸 만들어지면 어떤 기업이 국내에 마음 놓고 투자를 할 수 있겠는가. 있는 기업도 이런저런 이유로 나가려 할 판이다. 자칫하면 글로벌 일자리 경쟁에서 한국이 ‘레드카드(퇴장)’를 받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노동계 입장에서도 소탐대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