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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빛의 마술로 변신한 템즈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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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지난 주말 저녁 영국 런던 템즈강 위로 반짝이는 꼬마전구와 은은한 조명을 두른 선박 150여 척이 행렬을 이루는 광경이 펼쳐졌다. 지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기리고 찰스 3세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한 특별 행사였다. 수많은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서도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선박뿐 아니라 런던 도심을 관통하는 템즈강 9개 다리도 여왕이 생전에 즐겨 입었던 보라색으로 물들었다는 점이다. 은은하고도 채도 깊은 조명은 70년이라는 여왕의 기록적인 재위 기간을 기념하고, 또 앞으로 펼쳐질 날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였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한강이 흐르는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인지 런던이 어찌 이리 발 빠르게 도심 구조물을 활용한 행사를 만들어냈는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2016년부터 추진한 ‘일루미네이티드 리버(Illuminated River)’ 프로젝트 덕분이라고 한다. 런던 시내를 관통하는 개별 다리들을 비추는 조명을 하나의 통일된 예술작품으로 승화하고, 강과 강 주변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는 의도에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2016년 시작해 지난해 4월 완성된 런던 템즈강 ‘일루미네이티드 리버’ 프로젝트의 전경. [사진 일루미네이티드 리버 재단]

2016년 시작해 지난해 4월 완성된 런던 템즈강 ‘일루미네이티드 리버’ 프로젝트의 전경. [사진 일루미네이티드 리버 재단]

이 야심찬 기획을 위해 설립된  ‘일루미네이티드 리버 재단’은 국제공모를 통해 미국의 세계적인 예술가 리오 빌라레알(Leo Villareal)에게 조명 설계를 맡겼다. 빌라레알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베이브리지 조명을 획기적으로 설치해 도시 경관을 재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지역경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와 재단은 당시 끊임없는 인허가 과정과 여러 이익단체와의 협의 끝에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조명을 설치하고, 관련 시설을 제어할 수 있는 IT기반 시스템을 구축하여 주목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상시 가동되는 예술작품인 동시에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가 가능한 지속가능 모델로 인정받고 있다.

템즈강 ‘재조명’ 사업은 지난해 봄 완성됐다. 런던의 밤을 우아하면서도 동시에 역동적인 분위기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다. 예산 2000만 파운드(약 310억원)는 로스차일드재단과 블라바트닉가족재단 등 4개 민간단체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대형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하다. 동쪽의 타워 브리지에서 서쪽의 램버스 브리지까지 길이만 5.1㎞에 달한다.

템즈강의 평균 강폭은 약 265m다. 반면 한강은 평균 1㎞에 이른다. 88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달리며, 한강공원을 걸으며 절로 시선이 머무는 한강 다리들을 보며 세계 여느 도시 못지않은 광경이 펼쳐지는 한강을 기대해본다. 새로운 ‘한강의 탄생’으로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