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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주당의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 도 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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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의당마저 불참한 해임건의안 통과 강행

민생보다 정파적 이익에만 몰두…철회해야

더불어민주당이 29일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국회에서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전례는 1948년 국회 개원 이래 일곱 번뿐이며, 현행 87년 헌법 체제하에선 세 번에 불과하다. 국정을 책임지는 국무위원의 해임 건의는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만큼 중대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데 여야가 동의해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초당적으로 지켜져 온 원칙을 깨고, 민주당 단독으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해 통과시킨 점에서 유감을 금할 수 없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해임 건의의 표면적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 외교가 ‘참사’였으니 주무부처 장관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 차질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48초 환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30분 약식회담 및 비속어 파동 등을 민주당은 ‘참사’로 규정하고 있다. 야당으로서 비판할 수 있는 사안들이다. 특히 비속어 논란은 대통령실과 여당의 거친 대처 방식이 문제를 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외교부 장관의 해임을 건의할 만큼 큰 잘못이란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29일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비속어 논란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기시다 일본 총리도 “(윤 대통령을 만나 보니)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민주당 주장대로 윤 대통령 순방이 ‘참사’였다면 상대 국가 정상들 입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민주당은 정의당마저 해임건의안 표결에 불참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장혜영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외교참사는 대통령이 사과할 일인데 외교부 장관 해임을 건의한 건 왕자 대신 매 맞는 아이를 벌하는 것과 같다”고 불참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번 표결은 국회뿐 아니라 정치 그 자체를 올스톱시키는 나쁜 촌극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 상식에 정확히 부합하는 주장이 아닌가.

지금 나라는 누란의 위기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등 3고 악재가 국민의 삶을 옥죄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해임건의안을 밀어붙인 건 정파적 이익을 위해 민생을 팽개치고 외교를 정쟁 수단으로 이용한 거대 야당의 횡포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해임건의안이 통과되긴 했지만, 윤 대통령은 해임건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민주당의 해임 건의는 여야 간 대치만 심화할 뿐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민주당은 실익도, 명분도 없는 박 장관 해임 건의를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한다. 윤 대통령도 비속어 논란에 대한 유감을 표해 정쟁을 매듭짓고 국정에 매진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