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구
“연착륙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경기 침체를 빨리 강하게 겪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금리 인상 등 단호하게 대응해야 진짜 위기를 피할 수 있다.”
최종구(사진) 전 금융위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 활발했던 국제 공조는 현재 작동하지 않는다”고 지난 28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말했다. 다른 나라가 쓰러지든 말든 ‘나 홀로 생존’을 위해 각국이 분투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대응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전 위원장은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2009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일했다. 당시 외환정책 책임자로 환율전쟁 최전선에서 있었던 인물이다. 이후 2017~2019년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법무법인 화우 고문으로 있다. 13년 만에 미국 달러당 원화 값이 1400원대로 추락(환율 상승)하는 위기 상황을 맞으면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7일 그를 만나 조언을 듣기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해 지금이 더 심각한가.
- “어느 때가 더 심각한지 평가하는 것보다는 현 위기의 특성을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위기 타개를 위한 양자 및 다자 간 국제 공조가 활발했지만 지금은 국제 공조가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미·중 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사태를 악화시켰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섰지만 ‘미국 우선주의’는 그대로다.”
- 원화가치 하락이 유독 심해 보인다.
- “환율 상승(원화 값 하락)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만의 문제도 아닌 ‘뉴노멀’이 됐다. 선진국 중에선 무역 규모가 크고 개방도가 높은 국가가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데 바로 한국·일본·영국이다.”
- 한국은 위험한 상황인가.
- “원자재 수출국을 제외한 대부분 선진국 통화가 약세로 가고 있고, 잠재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같은 외화 유동성 위기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
- 현 위기를 완화할 우선적인 해법은.
- “한국의 경제위기는 대외 균형이 무너지고 외화 유동성이 부족할 때 닥쳤다. 대외 균형을 위해서라도, 물가 안정을 위해서라도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다.”
- 금리 상승에 따른 경제 충격이 클 텐데.
- “대외 상황을 보더라도 경기 침체는 피할 수 없다. 침체의 골이 깊고 짧아야 빨리 건널 수 있다. 침체를 완화해보려고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다 보면 환율도, 시장도 안정시키지 못하고 침체가 오래가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침체가 깊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물가 안정에 초점을 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 한계기업 등 타격이 예상된다.
- “금리 인상으로 타격을 받는 부문에 대한 구제책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 중소기업 대출 만기·상환 연장, 취약차주 채무 감면 등은 논란이 있지만 필요하다. ‘좀비 기업’을 정리하려다 자칫 괜찮은 기업까지 넘어갈 수 있다.”
- 가계부채, 부동산 경기에 대한 전망은.
-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 시장 충격은 거래 규제 완화 등 미시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 재정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 소비·투자·수출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재정까지 수축적으로 운영하면 경기 둔화 폭을 지나치게 키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