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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선회가 고발한다

국교위 이념 논란? 진짜 문제 따로 있다…개혁 막는 이 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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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식 모습. 가운데가 이배용 위원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지난 27일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식 모습. 가운데가 이배용 위원장. 그래픽=차준홍 기자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이하 국교위)가 지난 27일 출범했다. 이배용 위원장을 비롯해 위원 19명이 위촉됐다(교원단체 몫 두 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 뒤 국교위와 관련한 우려가 터져 나왔다. 주로 위원들의 정치적 편향성이나 예산과 직원 부족으로 인한 역할 축소 문제 등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이번에 구성한 국교위와 관련한 가장 본질적 문제는 교육자 집단(전·현직 교사·교수·교육 관료)에 속하는 위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국교위 위원의 71%를 차지했으니 하는 말이다. 교육자 집단은 지난 여러 정권에서 교육개혁을 가로막아 온 장본인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초등생 돌봄 확대, 학업성취 진단, 교원의 교육 책무성 확보, 정시 수능 전형 확대에 대해서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교육자 개개인은 물론 생각이 다르겠으나 전반적 경향성은 분명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위원들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은 무의미하다. 국교위 소관 사무는 '교육비전, 중장기 정책 방향, 학제·교원정책·대입정책 등 중장기 교육 제도 등에 관한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국가교육과정 결정' '주요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 의견 수렴‧조정' 등이다. 교육정책의 결정, 다시 말해 정치 활동을 주요 임무로 하는 기관이라는 얘기다. 그러기에 대통령과 국회(여당과 야당)의 위원 추천·임명 과정에서 정치적 편향성이 드러나는 건 당연하다. 대선에서 표출된 국민의 요구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서라도 그것은 불가피하다.

또 일각에서 지적하는 국교위 예산과 직원 부족 문제 역시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혹자는 이번에 배정된 인원이 31명, 예산은 88억9100만원에 불과해 대통령 직속 합의제 행정위원회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거라 말한다. 그런데 국교위는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기에 교육부 또는 다른 집행을 담당하는 다른 위원회와 맞먹는 수준의 예산이나 직원이 필요한 건 아니다. 오히려 교육부의 조직과 기능 축소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교위에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라는 요구가 상식적이지 않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앞서 말했듯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교육자 집단이 국교위를 장악했다는 점이다. 위원 구성을 보면 야당 성향이 8명, 정부‧여당 성향이 13명이다. 대교협과 전문대교협 추천 위원도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단체 성격상 보수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얼추 균형이 잡혔다고, 혹은 이 정부가 구상하는 정책을 받을 인사가 다수라고도 말할 수 있다. 위원 구성을 좌우가 아닌 전문가 직군으로 나눠 보자. 국교위 위원 21명 중 전·현직 교사·교수·교육관료가 15명(교원단체 몫 포함)으로, 절반을 훌쩍 넘은 71%나 차지한다(전·현직 교사·교수는 67%). 한국 교육이 교직을 담당하는 특정 이해집단만을 위한 게 아니라면 대단한 편향적 구성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국교위와 유사한 핀란드 국가교육청 이사회나 프랑스 교육 최고위원회(자문기구)는 전체 구성원 중 교육자는 50% 미만이다. 중장기 교육 계획 수립과 주요 교육 정책 결정은 국가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대 사안이며, 전 사회의 역량을 총결집하여 해결해야 하는 과업이라는 컨센서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장의 교육자들 의견을 고려하는 건 필요하지만, 교육자 집단 요구대로 국가 백년지대계를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국교위 위원 중 기술 혁신과 산업구조의 변화, 국가의 장기적 발전 방향에 남다른 식견을 보여온 개혁적 인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대한민국 교육은 교육자를 위한 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국민을 위한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실패는 정책을 국민 요구가 아니라, 교사·교수 단체를 포함한 교육자 집단에 유리하게 추진한 데서 비롯됐다.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은 그들의 요구대로 절대평가를 통해 수능을 무력화하고 학생부종합전형 중심의 대입제도를 강행하려다 국민적 비판과 저항에 부닥쳤다. 문재인 정부는 전교조의 반대로 교원평가를 사실상 무력화했으며, 학교자치라는 미명 아래 학교운영에서조차 교원들의 영향력을 키웠다. 그 결과 학교 교육에서의 교육자들의 책무성은 사라지고, 정작 가장 중요한 학생들의 학력은 추락하고 있다. 학력 추락은 비단 코로나19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의 책무성 저하로 인한 결과다.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문 정부 초기 핵심 교육 정책 관여자들. 왼쪽부터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 신인령 전 국가교육희의 의장. 이재정 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두번째)과 문 정부 초기 핵심 교육 정책 관여자들. 왼쪽부터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 신인령 전 국가교육희의 의장. 이재정 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장. 청와대 사진기자단

지금까지의 경험상 교육자 집단에 휘둘리면, 교육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국교위는 당장 ‘2022개정 교육과정’을 올 연말까지 결정하고, ‘대입제도 개편’ 시안은 내년 상반기까지, 최종안은 2024년 2월까지 결정해야 한다. 교육자 집단 요구대로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선택권을 축소하고, 교사들의 교육권력을 확대하며, 정시 수능확대(윤석열 대통령의 약속)를 되돌리고, 교육자들의 교육 책무성 신장을 위한 정책을 포기한다면 우리 교육의 미래는 없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보수 진영으로 분류되는 대교협, 전문대교협, 한국교총 그리고 교육자 출신 위원 중 일부가 교육자 집단의 이해를 우선시하며 야당 추천 위원들과 결탁할 가능성도 있다. 교사·교수의 집단이기주의는 몹시 공고하다. 소위 교육진보세력은 대선에 패배했지만 국교위 법률에 근거하여 위원 21명 가운데 최소 8명(야당 추천 6명, 조희연 교육감, 전교조 또는 교사노조 연맹 추천)을 확보했다. 정부‧여당의 교육정책 추진에 시비를 걸고 분쟁을 조장하기에 충분한 인원이다. 이들은 갈등을 공식화하고 쟁점화하는 데 능하다. 또 교사·교수 집단 힘을 빌려 여권 측 위원들에게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자료=한국교육신문

자료=한국교육신문

국교위가 교육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방안 몇 가지를 제언한다. 첫째, 교육자 집단의 이기주의에 휘둘리지 말고 반드시 다수이자 실제 수요자인 학부모‧국민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자 집단의 갈등 유발 행위를 학부모‧국민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다. 둘째, 미래를 대비할 중장기 교육발전계획 수립을 위해서라도 위원들의 전문성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정책에 밝은 전문위원을 충분히 확보해 활용하고, 입장이 충돌할 경우 교육정책 공론화 과정에서 표출되는 국민 여론에 근거해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셋째, 교육과정 개정과 대입제도 개편 과정에서 학생 선택권 보장, 학업성취 진단, 교원의 교육 책무성 확보, 그리고 정시 수능전형 확대 공약을 반드시 관철하기 바란다.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은 결국 이런 정책 현안에서 성패가 갈릴 수밖에 없다. 민의를 따르는 민주주의가 대한민국 교육을 살리는 지름길이자 바른길이다. 교육개혁의 성공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