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넘어선 개혁 신호탄…'MB 교육 황태자' 이주호의 귀환

중앙일보

입력 2022.09.29 18:15

업데이트 2022.09.30 04:19

신임 사회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29일 지명됐다. 이 후보자는 대학의 자율성, 수월성 교육(잠재력 있는 학생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교육), 학교 다양화 등을 강조하며 교육부의 기능 축소를 주장한 시장주의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그가 장관이 되면 이념 갈등을 넘어서 시대의 흐름에 맞는 교육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교육의 공공성·보편성보다 수월성이 지나치게 강조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을 지명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이주호 전 교육부 장관을 지명했다. 연합뉴스

이 후보자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교수를 지낸 경제학자다.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교육 공약을 설계했고 2010년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 올라 자율형사립고와 마이스터고를 만들었다. MB 정부에서는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교육과학기술부 1차관 등 요직을 거치며 ‘MB의 교육 황태자’로 불리기도 했다.

“대학 규제 없애야” 보고서 발행

이 후보자의 ‘귀환’은 교육부 개혁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그는 지난 3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민간 싱크탱크 ‘K정책플랫폼’에서 발행한 ‘대학 혁신을 위한 정부개혁 방안’ 보고서를 통해 교육부의 대학 관련 업무를 총리실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초·중·고 교육을 시·도교육청에, 중장기 교육 정책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넘긴 상태에서 대학 관련 업무에서도 손을 떼면 교육부는 폐지에 가까울 정도로 위축된다. 최근 교육부가 국장급 선호 보직인 국립대 사무총장 자리를 개방형으로 전환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후보자가 정식 임명되면 교육부의 권한과 인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조직 개편을 단행할 수 있다.

이 후보자가 교육부를 축소해 대학의 자율성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그는 K정책 플랫폼 보고서에서 임원 취임·재산 처분 등 사학의 보고 의무를 단계적으로 없애고 대학이 임대 수입을 확대할 수 있게 사립대 유휴 교육용 시설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MB형 교육정책에 ‘에듀테크’ 결합할까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MB표 교육정책’의 부활 여부다. 경제학자답게 교육 정책에서도 ‘자율과 경쟁’을 중요시하는 것이 이 후보자의 정책 방향이라고 교육계는 평가한다. 이 후보자는 MB 시절 자사고 100개 설립,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전수 실시와 결과 공개 등을 추진했다. 이 후보자가 장관 재직 시절 추진한 정책은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과 학력 신장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지난 2019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숭문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7월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숭문고등학교 학부모들이 자율형사립고등학교 재지정 취소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이 후보자가 6·1지방선거에서 서울 교육감 후보로서 내세운 공약을 통해서도 이런 방향성이 드러난다. 당시 이 후보자는 진보 교육감의 대표 정책인 혁신학교를 재평가해 일부 혁신학교는 지정을 폐지하는 한편 토론 중심 수업과 논·서술형 평가를 핵심으로 하는 바칼로레아 교육 과정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인공지능 보조교사’를 모든 초·중·고교에 도입해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고 유치원·초등학교의 돌봄 범위를 확대하겠다고도 했다. 그는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며 사퇴했다.

교육계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한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 폐지론자가 장관으로 돌아왔는데 좋아할 직원이 어디 있겠느냐”며 “다만 MB 때 경험을 쌓은 만큼 이번에는 직원들과 소통하고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길 바란다”고 했다. 박근병 서울교사노조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경제학적 마인드로 교육 정책을 설계했고 교육부 폐지, 과기부와 통합 등을 주장했던 분”이라며 “이념 갈등을 일으키는 정책보다 교육 복지 확대와 교육 불평등 해소, 공교육에 강화에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윤석열 정부의 협소한 인재 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얼마나 인재가 없으면 10년 전 장관을 다시 쓰겠냐”며 “교육 환경과 교육 수요자의 요구가 진화한 만큼 본인의 신념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대통령실도 교육 장관 인선이 어려웠음을 숨기지 않았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이 후보자 지명과 관련한 브리핑 자리에서 “새로운 인물을 모시려고 했지만, 청문회 과정에 부담을 느낀 분들이 고사하며 인선에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며 “진영에 따라 평이 갈리지만 교육 정책 경험이 많고 민간에서도 에듀테크 사업을 하며 교육 격차 해소에 헌신한 점을 고려했다”고 했다.

다음 달 4일 시작하는 교육부 국정감사는 장관 없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소속의 국회 교육위원회 관계자는 “여야 간사 협의를 거쳐야 구체적인 인사청문회 일정을 알 수 있다”면서 “일단은 국정감사 기간 중 인사청문회를 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교육부 국정감사는 10월 4일부터 21일까지 3주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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