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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매장지서 나온 치아와 단추…4600명 아동에 무슨일 있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동 인권유린이 벌어진 선감학원의 암매장지에서 희생자들의 유해와 유품이 처음 발견됐다. 사건을 조사하는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내달 진실 규명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은 1942년 5월 29일 선감학원 개원일 당시 아동들이 도착하는 모습.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사진은 1942년 5월 29일 선감학원 개원일 당시 아동들이 도착하는 모습.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본격적인 유해 발굴 필요해”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6~2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의 매장지에서 봉분 4기를 발굴한 결과 당시 선감학원 원생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 20개 이상과 단추 4개를 발견했다고 29일 밝혔다. 사진 진실화해위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6~2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의 매장지에서 봉분 4기를 발굴한 결과 당시 선감학원 원생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 20개 이상과 단추 4개를 발견했다고 29일 밝혔다. 사진 진실화해위

 진실화해위는 지난 26~2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도의 매장지에서 봉분 4기를 발굴한 결과 당시 선감학원 원생의 것으로 보이는 치아 20개 이상과 단추 4개를 발견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발굴은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유해 시험발굴(시굴)이다. 인권침해 사건 가운데 첫 유해 현장 조사인 이번 시굴은 26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30일까지 5일간의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이곳에는 유해 150여 구가 묻힌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에 발굴된 치아는 특징으로 미뤄볼 때 연령대는 10대로 추정된다. 발굴된 단추 역시 선감학원 피해자들이 확인한 결과 선감학원 수용 당시 입었던 원생들의 복장에 달린 단추인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유해와 유품에 대한 인류학적 감식을 거쳐 정확한 성별, 나이, 사망 시점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뼛조각도 발굴됐는데 희생자 유해인지 확인해봐야 한다”며 “구체적인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DNA 감식도 필요한데, 예산 문제로 어려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시굴 책임자인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원장은 “선감도 토양이 산성이어서 뼈가 삭는 속도가 빠르다”며 “암매장 신빙성을 뒷받침할 치아와 단추 등 유품이 발굴된 만큼 신속하게 본격적인 유해 발굴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 암매장 추정지 시굴 현장. 사진 진실화해위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유해 암매장 추정지 시굴 현장. 사진 진실화해위

강제노역과 폭력에 시달린 4600여명의 아동들

 선감학원은 일제가 1942년 부랑아 감화를 명분으로 안산시(당시 경기도 부천군 대부면) 선감도에 만든 수용시설이다. 해방 뒤에는 경기도가 1982년까지 ‘부랑아 수용시설’로 운영했다. 이곳에는 최소 4691명의 10대 아동들이 수용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연구원 조사 결과 13세 이하 아동이 수용자의 85.3%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8년 발간한 선감학원 아동인권침해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원생들은 강제노역, 폭력, 성폭력, 굶주림, 고문 등에 매일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아동들은 염전 노동, 농사, 축산, 양잠, 석화 양식 등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꽁보리밥, 강냉이밥과 소금, 간장, 젓갈 등이 식사로 나왔으나 이마저도 절대적으로 부족해 아동들이 열매, 들풀, 곤충, 뱀, 쥐 등을 잡아먹는 과정에서 불의한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영양실조로 사망해 암매장된 경우도 있었다. 선감학원은 사망한 아동들을 생존한 아동들이 직접 매장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1970년 선감학원 아동들.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사진은 1970년 선감학원 아동들. 사진 국가인권위원회

 1965년도에 선감학원으로 끌려간 피해자 안영화씨는 시굴 결과에 대해 “제가 묻은 친구도 있으니 그 중에 일부겠다 싶다”며 “나왔다고 하니 다행이다는 생각도 들고, 참담하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안씨는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고통스럽다”며 “진실규명이 되면 정부가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진실 규명 작업은 2020년 12월 190여명의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이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진실화해위는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선감학원 원생들이 구타와 영양실조로 사망하거나 섬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고, 시신이 6곳에 암매장됐다는 진술을 다수 확보했다.

 진실화해위는 시굴 결과를 반영해 오는 10월 진실 규명 결과를 발표하고 경기도에 전면적인 발굴을 권고할 예정이다. 경기도 측은 “본 발굴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감학원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이 이뤄질 경우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가 인정돼 정부의 손해 배·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같이 지난달 손해배상청구 소송 준비를 위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김영배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대표는 “진실화해위 광고나 언론 보도를 보고 아직도 피해 신고가 한 달에 한두 건씩 들어오고 있다”며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 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당시 경기도에서 선감학원을 운영했던 만큼 경기도나 대한민국 정부 상대로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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